겨울바다에 가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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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다에 가보라
  • 충북인뉴스
  • 승인 2006.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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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진 관음사 주지
   
여행을 떠나면 나는 꼭 바다를 보고 온다. 일전에 다시 다녀 온 서산 간월암(看月庵) 또한 바다를 바라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머리 깎고 출가했던 그해던가. 만행하던 길에 간월암 법당에서 화려한 낙조를 맞이할 수 있었다. 그 장엄한 일몰을 통해 나는 수행자로서 걸어가야 할 어떤 가르침을 배웠다. 말하자면 세상의 빛으로 살다가 당당하게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이별의 아름다움 같은 것이었다.

자주 찾아가는 바닷가라 하더라도 바다는 그 앞에 설 때마다 그 모습이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폭풍우 내리치는 바닷가는 성난 얼굴처럼 무섭지만, 햇살 일렁이는 바다는 어머니의 품처럼 고요하다. 바다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표현에 따르면, 바다 역시 산처럼 계절마다 그 느낌과 변화가 다르다고 한다. 그 다양한 모습을 통해 바다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게 된다고 들었다.

때때로 산등성이에 앉아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줄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 바다의 덕을 배운다. 수많은 물줄기가 따로 흐르지만 바다에 닿으면 하나가 된다. 그 수용의 미덕은 시비분별과 주장을 내세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은 등대에 앉아 끊임없이 일어나는 파도를 보면서, 바다는 파도가 생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적이 있다.

강물이 흐르지 않으면 썩듯이 바다는 파도가 없으면 동맥경화나 마찬가지다. 파도가 없으면 산소도 만들어내지 못하며 바다를 정화시키지도 못한다. 한마디로 파도는 바다의 호흡작용인 셈이다. 그러므로 한 차례 거센 파도가 지나간 다음날의 바닷가는 얼마나 평온한가. 이처럼 바다는 파도를 통해 서로 뒤섞이면서 자신을 맑힌다. 바다의 입장에서 보면, 거센 풍랑과 폭풍우는 자신의 존재를 담금질하는 일종의 시련이다.

불교경전에서는 파도를 번뇌에 비유한다. 파도는 스스로 일지 않는다. 바람이라는 인연을 만나야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파도를 다스리는 지혜는 바다를 다독이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막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사의 번뇌도 들여다보면 이와 똑 같다. 번뇌는 스스로 일어나지 않고 마음 밖의 인연을 만나서 생기는 그림자일 뿐이다. 바람이 사라지면 파도 또한 쓰러지듯이 마음이 주인이 되면 번뇌의 바람을 일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는 바다에서 역경 공부의 미학을 배운다. 파도를 무서워하는 바다는 그 존재 의미가 없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밀려와도 바다는 파도에게 그 자리를 내놓거나 비굴한 처신을 하지 않는다. 당당하게 맞을 뿐이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의 중심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흔들릴 때는 알고 보면 생활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을 때가 더 많다는 점에서 바다가 보여주는 본연의 정신은 배울만하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힘들거나 지칠 때, 단조롭고 무료한 일상이 계속될 때 바닷가에 서보라.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가르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보조국사는 법어에서‘땅에서 넘어진 자는 다시 땅을 딛고 일어나야 한다’고 전했다. 인생이 힘들고 괴롭다고 살아가는 일을 포기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자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 인생사의 고통과 시련은 인생의 의미와 실존을 알아가는 하나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고통과 번민이 있기 때문에 인생은 더 값지고 소중한 것이 아닐까. 파릉선사는 ‘닭은 추우면 나무위로 올라가고 오리는 추우면 물 속으로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또한 현재의 역경과 고난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강조하신 것이다. 흔히 쓰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지금의 위기는 전부를 놓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을 놓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겨울바다로 떠나보라, 쫓기며 살아 온 자신과 마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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