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개보다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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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개보다 못해
  • 충청리뷰
  • 승인 2020.01.0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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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성 현 농부 작가
최성현 농부 작가

전화가 왔다. 아는 형님이었다. 다짜고짜 물었다. “뭐해?” 그는 외지인이다. 서울에 집이 있다. 젊었을 때는 푸줏간을 하며 돈을 좀 벌었다 했다. 그는 우리 마을에 땅을 구했고, 그곳에 컨테이너를 가져다 놓고 가끔 온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집을 짓기 전에 컨테이너를 가져다 놓고, 그곳을 베이스캠프로 삼는다. 3년, 혹은 5년. 그는 올해로 15년째라고 했다.

나는 읽던 책을 덮었다. 바쁠 게 없었고, 사람 또한 내게는 한 권의 책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는 끌리는 책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는 너무 자기 자랑이 많았다. 관심사도 달랐다. 전체적으로 그는 수준이 낮았다.

그래도 나는 갔다. 책 읽기와 글쓰기로만 이루어지고 있는 내 겨울 생활에는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변함없이 내게 소주를 강권할 것이다. 자기 이야기만을 할 것이다. 내 이야기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전에도 들은 이야기를 몇 군데서 반복할 것이다. 안주는 또 고기겠지. 지난번에는 개고기였는데, 이번엔 뭘까? 아구였다. 그는 아구 찌개에 됫병 소주 한 병을 놓고 나를 맞았다. 조금 걱정이 됐다. 됫병은 내게 지나친 양이었다. 반씩 마셔도 오 홉이다. 사린다 해도 2홉 이상은 마셔야 한다.

역시 그 날도 소주잔이 아니었다. 물컵에 소주를 콸콸 따랐다. 가득 차게 따랐다. 그것을 그 형님은 단숨에 마셨다. 나는 반으로 나눠 마셨다. 절반도 나로서는 분발한 건데, 그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언제나 같다. 그럴 때면 그는 내 등을 후려치며 핀잔을 준다. “뭔 술을 그렇게 마시남. 남자답지 못하게.”

여러 번 그 말에 넘어갔다. 그런 날에는 말 그대로 개고생을 했다. 넘어지고 토했다. 어떤 날은 한 번이 아니었다. 밤새 잠을 못 잤다. 속이 가라앉지 않았다. 욕지기가 끝없이 이어졌다. 화장실과 방을 수도 없이 오가야 했다. 속이 뒤집어지는 것처럼 괴로웠다.

그런 그가 술만큼 좋아하는 게 있으니 그것은 산이었다. “나는 산이 좋아. 곧 아주 여기로 내려 올 거야. 내려와 산에 다니며 살 거야.” 그는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광주시가 됐지만 그가 태어났을 때는 광주읍이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보자면 한강 상류에 있는 마을이었다. 들로 산으로 강으로 다니며 놀았다. 그 때 배웠다고 했다. 먹을 수 있는 풀과 나무, 버섯, 물고기와 새……. 그는 수렵과 채취의 달인이다.

지금은 아내의 만류로 그만뒀지만 한 때는 총을 갖고 사냥도 많이 했다. “많이 다녔어. 사냥개도 여러 마리 갖고 있었어. 그런데 말이야, 개가 사람보다 나아.” 그는 그 말을 시작으로 내가 그 때까지 몰랐던 놀라운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개는 사냥감 하나를 잡으면 그것으로 끝이야. 옆에 새끼가 있어도 거들떠보지 않어. 응. 늘 그래. 사람보다 낫지." “정말 사람보다 낫네요!” “개는 사람과 다르더라고. 하나 잡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거지. 그래. 옆에 새끼가 있어도 관심이 없어. 그렇지. 잡으려 들면 쉽게 잡을 수 있는데도. 때려도 타일러도 안 돼. 꼼짝 안 해. 그럴 때는 차 안에 넣고 한 동안 쉬게 해야 돼. 그렇게 한참 지나야 다시 사냥을 하려 들어. 그 게 개야.”

진한 감동이 내 안을 훑고 지나갔다. “어떤 날에는 아침에 토끼 한 마리 잡으면 그것으로 끝이야. 그런 날은 하루 버리는 거지. 애써 먼 곳까지 갔는데.” 그는 잘라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그가 그 이야기에서 하고 싶었던 말인 듯 했다. “사람이 개보다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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