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은 터져죽고, 지역은 말라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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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은 터져죽고, 지역은 말라죽어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0.01.0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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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 진입하면 수도권에 왔음을 새삼 실감한다. 갑자기 고속도로 차선이 많아지고 쭉 뻗은 도로가 나타난다. 도로 양 옆으로는 한껏 멋을 낸 높은 빌딩과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다. 옛날에 작은 도시였던 곳들은 환골탈태해 아주 큰 도시가 됐다. 영호남이나 충청권도 아닌 유일하게 수도권에서만 도시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받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균형발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수도권 주민들, 특히 서울 기득권층의 반대 속에서 세종시를 건설하고 혁신도시, 기업도시를 세웠다. 노 전 대통령이 당시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서울중심주의는 지금보다 더 심했을 것이다.

국가균형발전정책을 구체적으로 실천한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3월 대통령선거 충청지역 경선 현장에서 “이제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옛말은 없어질 것이다. 지역으로 사람이 모이고, 지역으로 기업이 몰리는 국가균형발전의 새 시대를 반드시 열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돼야 한다. 지역으로 사람과 돈과 기업이 모여야 한다. 서울소재 대학에 가기 위해 안간힘을 쓸 필요가 없어야 하고, 지역에도 일자리가 많아 걱정없이 살 수 있어야 한다. 고향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하며 지역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정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아이들은 ‘인 서울’ 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야 하고, 고향에 남아 있으면 패배자처럼 인식된다. 서울에서 일자리를 얻어야 결혼하기도 수월하다. 아이들을 낳아도 공부시키기 좋은 서울에서 키우려고 한다. 이런 현상이 좀처럼 바뀌지 않고 오히려 더 공고해지고 있다.

균형발전지방분권충북본부는 지난 5일 “마침내 국토면적의 11.8%에 불과한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의 인구가 지난해 말로 전체인구의 50%를 초과했다”고 지적했다. 세 곳에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한다는 얘기다. 이어 “문 정부는 초심으로 돌아가 범정부차원의 비상대책기구를 신속히 출범시켜 망국적 수도권 일극체제를 타파하고 국가균형발전, 지방분권, 국민주권을 실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7일 문 대통령의 신년사에 이런 내용을 반영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신년사에는 ‘함께 잘사는 나라’, ‘혁신적 포용국가’라는 단어는 있으나 국가균형발전 의지는 찾아볼 수 없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그렇다치고 최소한 문 정부는 참여정부의 국가균형발전 기조를 이어갈 줄 알았다. 서울로 가지 않아도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기반을 놓을 것이라 기대했으나 헛물만 켜고 말았다.

지금은 수도권과 멀수록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서울과 얼마나 가까우냐가 중요한 입사 조건이 된다. 그래서 지방 인구는 계속 줄고 빈집은 늘어나 도심공동화가 가속화된다. 문 정부는 참여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의지를 이어받아 세종시, 혁신도시, 기업도시를 한층 발전시키는 동시에 이를 뛰어넘는 정책을 단행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서울은 팽창해 터져 죽고, 지역은 말라 죽을 것이다. 저출산으로 인한 재앙은 소멸도시를 탄생시켰지만 수도권 일극체제가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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