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재산 기부했지만 돌아온 건 소송 뿐…홍익학원을 망신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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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재산 기부했지만 돌아온 건 소송 뿐…홍익학원을 망신주고 싶다”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0.01.17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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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청천면 도원리 대지, 임야 등 3만평과 건물 등 평생의 재산 기부
고승관 홍익대 전 교수의 한탄 “미술관 건립약속 끝내 안 지켜”

[충청리뷰=박소영 기자] “홍익학원을 아주 망신주면 좋겠어.”

올해 팔십이 된 고승관 전 홍익대 교수는 조용히 읊조렸다.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는 그는 거동이 불편해 과거 전시실로 쓰던 집을 개조해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침대도 없어 소파에서 일어나 눕고 자고를 반복한다. 휴대용 버너에 의지해 음식을 만들고 작은 선반엔 참치캔, 계란 등이 위태롭게 놓여 있다. 난방도 24시간 난로 버너 2대가 대신한다.

고승관 전 교수는 작은 소파에 겨우 앉았다. 소파에 누워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박소영 기자
고승관 전 교수는 작은 소파에 겨우 앉았다. 소파에 누워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박소영 기자

 

사실 그의 삶엔 우여곡절이 많았다. 88서울올림픽 때 백상크라운 상을 제작한 그는 공예가로서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홍익대 조형예술학과장을 역임한 그는 청주공예비엔날레 1회 기획위원장이기도 했다. 이후 심사위원장, 운영위원장을 맡으며 초기 청주공예비엔날레의 기틀을 짠 인물이다.

 

87년 도원리에 들어와

 

그는 괴산군 청천면 도원리에 87년 들어왔다. “이곳이 무릉리 도원리야. 정말 신기하지. 무릉도원이 이곳이라고 생각했어. 돌탑을 쌓은 것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지.” 그는 이곳에서 300여기가 넘는 돌탑을 쌓았다. 이즈음 도원성미술관도 지었다.

하지만 2011년 말 몸이 급격하게 안좋아졌고 그는 전 재산 및 작품 일체를 기부할 생각을 하게 된다. 평소에 맥주를 밥처럼 먹는 식습관도 그의 건강을 해쳤다. 지금은 하루에 맥주 한 캔 정도만 먹는다고 한다. 맥주를 자주 마시는 이유에 대해선 화가 나니까 취해야 그나마 좀 더 잘 수 있고, 누워만 있으니 음식 먹기도 힘들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 전 교수는 20121월 괴산군 청천면 도원리 일대의 대지, 임야, 전답 등 3만평을 학교법인 홍익학원에 기부했다. 작품 380여점도 포함돼 있었다. 심지어 당시 홍익학원과 고승관 교수가 작성한 기증문서(사진 참조)를 보면 비닐하우스 및 트랙터까지기부한다고 돼 있다. 고 교수는 트랙터는 내것이 아니라서 안 된다고 했는데 그게 문서로 기록돼 있어~”라고 화를 냈다.

기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 전 교수와 홍익학원의 갈등이 시작됐다. 고 전 교수는 자신의 전재산을 기부하면서 구두로 홍익학원과 약속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이 좋아하는 데 뭘 따지면서 주고 안 줄게 있나. 다 주려고 했지였다. 그러나 홍익학원에 재산을 기부하면서 적어도 자신이 외관을 꾸며놓은 도원성 미술관을 제대로 내용을 채워 그럴듯한 미술관으로 운영하기를 바랐다. 작품 일체를 기부한 것도 그 이유였다. 기증문서에는 고 전 교수의 작품을 산 컬렉터의 작품까지도 기부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홍익법인은 컬렉터의 작품까지 가져갔지만 이후 미술관 건립 및 운영은 이뤄지지 않았다.

 

2015년 홍익법인과 소송 시작

 

고 전 교수는 2015년 홍익학원에 소송을 한다. 억울한 마음에 기부한 재산 일체를 돌려달라고 홍익학원을 상대로 증여의무부존재확인 소송을 진행했지만 패소했다. 2012년 기부당시 증여목록을 작성하고 공증까지 받아놓았던 게 홍익법인 측에 유리하게 작동했다. 또 문서에는 일종의 고 전 교수가 원하는 조건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

이후 소송은 한 차례 또 이뤄졌다. 학교법인 홍익학원이 고 전 교수로부터 기부받은 대지, 임야 대부분은 바로 등기이전을 했지만 전답으로 있던 도원리 360-6번지부터 360-14번지까지 9필지에 대해서는 등기 이전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 전 교수는 2015년 증여 취소 소송을 진행하면서 홍익법인이 등기를 미처 하지 못한 9필지를 친조카 고00씨에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줬다.

그러자 홍익학원 측은 20169필지를 되찾는 소송을 고씨와 조카 고00씨에게 진행했다. 결국 대법원까지 갔고 홍익학원이 승소해 9필지마저 소유권이 넘어가게 된다.

고 전 교수는 너무 억울해 내가 지금이라고 말을 아꼈다. 홍익법인은 기부자인 고 전 교수를 전혀 돌보지 않고 있다. 그의 안타까운 사정을 들은 동네사람들 몇몇이 지금 그를 챙기고 했다. 고 전 교수가 살고 있는 집 또한 홍익법인 소유다. 벽에는 작품이 몇 점 전시돼 있다. 작품 옆에는 번호표가 새겨진 노란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다. 고 전 교수는 홍익법인이 미처 챙겨가지 못한 거다고 말했다.

그는 미술관이 만들어지면 죽어도 원이 없을 것 같아. 한국사람들은 한을 풀어줘야 떠날 수 있다고 하잖아. 다시 돌이킨다면 그러한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아라고 한탄했다. 서예가 김종칠 씨는 우연히 도원리에 강연을 하러 왔다가 고승관 전 교수를 만나 사연을 알게 됐다. 다른 건 다 떠나 적어도 홍익학원이 기부자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우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안타까워 했다.

 

 

홍익법인 최소한의 예우도 안 해

 

충북대의 경우 기부자에 대해 충북대병원 무료 진료 및 주택 제공, 기념물 제작 등의 예우를 하고 있다. 하지만 고 전 교수는 홍익학원에 기부를 했지만 돌려받는 건 하나도 없다. 기증식 조차 당시 고 전 교수가 반대해 열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홍익법인 관계자는 기부를 받고 나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아예 조건을 달지 않는 게 원칙이다. 증여 문서에는 조건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홍익법인은 병원이 없기 때문에 무료 진료 등의 혜택을 드리긴 힘들다. 소송이 진행되지 않았더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사이가 많이 갈라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인간적으로 홍익학원을 욕하는 건 이해되지만 담당자로선 학교 입장을 뭐라고 답하기가 힘들다고 덧붙였다.

2012년 기부이후 홍익법인은 고 전 교수의 집을 방문하진 않지만 외부에 CCTV를 설치해 놓고 틈틈이 지켜보았다. 13일 기자가 취재 간 날 갑자기 CCTV 보안업체에서 그의 집을 방문했다. 설비기사는 홍익법인에서 비밀번호를 잊어버렸다고 해서 왔다. 오늘 아침 화면 접속이 안 된다고 해서 고치러 왔다고 말했다. 고 전 교수는 이 집도 홍익법인 재산이니까 내가 사나 죽나 감시하려고 하는구나라고 씁쓸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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