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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3세, 피에르 리시앙 감독의 아내, 도예작가 송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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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3세, 피에르 리시앙 감독의 아내, 도예작가 송영희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0.01.22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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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증만 무려 3개…파리, 오사카, 진천 세 도시에서 살다
김장의 선생 만난 인연으로 진천살이…남은 삶 도예가로 살고파

[충청리뷰_박소영 기자] 재일교포 3. 세계적인 영화감독 피에르 리시앙의 아내. 그리고 지금은 진천에 거주하고 있는 도예작가 송영희(55).

그녀 이름 앞에 붙어있는 수식어는 무엇 하나 가볍지 않다. 주민등록증만 무려 3개를 가지고 있다. 일본, 프랑스, 한국. 어쩌다 그녀는 진천에 왔을까.

송영희 씨는 지금 진천공예마을에서 도예작업을 하고 있다. 파리, 오사카, 진천 등 세 도시에 살았던, 살고 있는 그녀의 특별한 삶을 취재했다. /사진=박소영 기자
송영희 씨는 지금 진천공예마을에서 도예작업을 하고 있다. 파리, 오사카, 진천 등 세 도시에 살았던, 살고 있는 그녀의 특별한 삶을 취재했다. /사진=박소영 기자

지난 2011년 마산아트센터 전시를 열면서 진천공예마을에서 작업을 하는 김장의 선생님을 알게 됐어요. 작업에 대한 도움을 많이 받았고, 이후 인연이 이어지게 됐죠. 적어도 1년에 한번 정도 시간을 내 진천에 와서 작업을 했어요.”

2015년 일본에서 생애 첫 개인전이 잡혔을 때 그는 파리보다는 일본과 가까운 진천을 작업지로 택했다. 파리에서 만든 작품을 일본까지 옮기느니, 진천이 훨씬 물리적·정서적으로 가까웠다. 진천공예마을에서 작업을 마친 후 완성품을 가지고 일본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화랑에서 작품 70%가 팔리는 등 성공을 거뒀다.

진천공예마을에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어요. 정말 내 일처럼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서 이 곳 분들에게 감사했죠. 세관 통과부터 전시 디스플레이까지 진천에 있는 공예가분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어요. 심지어 제 전시회를 보러 청주에서 나고야까지 오신 분들도 있었어요.”

하나의 축제처럼 그녀의 전시는 끝났다. 도예가 김장의 씨는 송영희 선생은 그만큼 우리 마을(진천공예마을)에 특별한 존재라고 말했다.

 

13년 간 미술교사로 일해

 

그녀는 일본 오사카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조총련계 중학교에서 13년간 미술을 가르쳤다. 방학도 없이 365일 아이들을 지도했다. 그러다가 97년 유럽으로 미술여행을 떠났고, 한 달간 체류하면서 처음 창작의 싹을 품었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따로 일본인 이름을 만들어주지 않았고, 집에서는 한국말만을 사용하도록 했다.

2001년 그녀는 학교를 그만두고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 잠시 머물렀던 유럽으로 다시 떠난다. 마침 2001년 도빌아시아영화제가 만들어졌는데, 우리나라에선 신상옥, 이창동 감독 등이 참여했다. 그녀의 남편인 피에르 리시앙 감독도 그 자리에 있었다.

피에르 리시앙 감독은 평론가이자 자타공인의 영화애호가였다.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1984년 이두용 감독의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가 칸영화제에서 소개된 이후 한국 영화를 지속적으로 칸영화제에 소개하며, 전 세계적으로 한국 영화를 알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

마침 송 씨의 지인이 영화제에서 통역일을 하게 됐고, 그 자리에서 처음 피에르 리시앙 감독을 만났다. 그 후 결혼하기까진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세월이 지나 부모님은 세상을 다 떠났지만 큰 오빠가 가장을 자처하며 프랑스 감독과의 결혼을 끝내 반대했다고 한다. 외국인인데다 28살이라는 나이차도 걸림돌이었다.

막상 오빠는 피에르를 보자마자 바로 승낙을 했어요. 아이러니죠. 경험해보니 일본 내 교포사회가 더 가부장적인 것 같아요. 재일교포들의 가정은 대부분 상당히 엄격해요.”

 

한국을 좋아한 감독 남편

 

피에르 리시앙 감독은 20185월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그녀는 파리에서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남편이 남긴 수많은 자료 등은 리옹영화박물관에 기부할 예정이다. 세계적인 영화감독과 살다보니 그는 수많은 한국감독들을 만났다. 그 중 이창동 감독은 따로 진천 작업장까지 다녀갈 만큼 친분이 두텁다.

송영희 씨의 남편인 故 피에르 리시앙 감독은 한국영화를 칸에 소개한 한국영화계의 은인이다.  /사진 다음 제공
송영희 씨의 남편인 故 피에르 리시앙 감독은 한국영화를 칸에 소개한 한국영화계의 은인이다. /사진 다음 제공

“1970년대 신상옥 감독이 평양에 있을 때 피에르가 만난 적이 있대요. 피에르는 한국 음식을 자주 찾을 정도로 한국을 아주 좋아했죠. 아쉽게도 일정이 맞지 않아 진천에는 오지 못했어요.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적도 있고요. 그는 한국과 북한, 재일교포 사이의 행간을 설명하지 않아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어요.”

그녀는 지난해 11월 제1회 강릉국제영화제에서 피에르 리시앙 감독 추모전이 열릴 때 다시 한국에 왔다. 그녀를 비롯한 벤자민 이요스 칸영화제 감독주간 프로그래머, 인도네시아 국민배우인 크리스틴 하킴, 이창동, 양익준 감독, 이준동 제작자, 전도연 배우, 임권택 감독이 추모제에 참석했다. 특히 지난 해는 전세계에서 감독의 추모제가 열렸고, 그 또한 아내로서 여러행사에 초대됐다. 세계 각국의 추모제 일정을 마치고 그는 다시 진천에 온 것이다.

마지막 삶은 도예가로서 살고 싶어요. 각기 다른 나라에서 살아봤지만 어디가 제일 좋으냐고 물으면 솔직히 답을 못하겠어요. 파리와 오사카, 진천은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다름이 있어요.”

세 도시에서 살았던 그에게 어디가 제일 좋으냐고 묻자 설명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 살면서 가장 놀라운 건 택배시스템이에요. 택배가 하루 만에 오잖아요. 프랑스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죠. 택배분실 사고도 많고, 이를 따져 물어도 별로 개의치 않거든요. 한국택배는 진짜 놀라운 일 중에 하나예요라며 웃었다.

그는 진천공예마을 인근에 산다. 지난해 진천 군민으로 주민등록증이 나온 것도 그 이유다. 김장의 씨는 송선생은 친화력이 엄청나요. 진천 사석리에 사는 일명 사석언니가 있는 데 친해져서 밥도 반찬도 챙겨줘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죠라고 말했다.

송 씨는 진천공예마을 분들이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마음이 다들 부자세요. 서로 돕고 협조하는 마음이 남아있어요.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해요. 도예가로서 더 열심히 작업하고 싶고, 제가 부족한 부분들은 주변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채우려고요라고 말했다.

이제 100% 창작자의 삶을 살고 싶다는 송 씨. 그녀의 꿈이 이곳 진천에서 이뤄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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