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페스토가 아니라 ‘공약확인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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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페스토가 아니라 ‘공약확인운동’이다
  • 충북인뉴스
  • 승인 2006.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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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지 성(문화사랑모임 사무처장)
   
1938년 일제는 조선의 모든 학교에서 조선어 수업을 폐지하고, 조선어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마침내는 학생들 간의 조선어 사용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운동까지 시행했다.

말하자면 몰래제보꾼(파파라치)들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이 직접 겪은 역사다. 이 과정에서 우리말과 문화는 더욱 일제에 복속되어 졌다. 해방 60년 우리는 우리의 언어 속에 일제잔재를 지우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우리 청주지역의 성안길과 방아다리 이름이다.

‘세계가 하나 된다’는 21세기에 외국어를 규제하려 한다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외국어를 바로 배워 의사소통하는 것과 외국어를 남발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이러한 남발은 백성=대중=보통사람들의 언어생활을 곤혹스럽게 한다.

그런데 사회생활에서도 영어 때문에 엄청난 눈치를 보고 사는 실정이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프라이드’가 구겨지고, ‘프라이버시’가 높아지고 어쩌구, 무슨 의미인가는 전달하는데 혼돈스럽기 짝이 없는 대화들이 난무한다. 이러한 일상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서양과 미국어에 대한 식민지적 사고 때문에 나온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더욱 기분 상하는 것은 이른바 지식인들이 TV에 나와 토론할 때 보면 발언의 6~70퍼센트가 영어 말을 하며, 잘난 척들을 한다. 자기가 똑똑하고, 공부 많이 했다는 표시를 그렇게 낸다. 이럴 때 일반 대중은 이런 말들을 다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한마디로 우리말을 하면서도 의사전달이 되지 않는 장애사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지식인들의 의식 문제다. 지식인들이 대중에 대한 봉사정신이 박약한 것이며, 식민적 사대주의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세계화, 세계화 하더니, 방송, 신문들도 난리가 아니다. 어젠다, 로드맵, 블로그…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는데 표시내면 창피당할까 봐 묻지도 못하고 끙끙거려야 했다. 일반 국민들을 장애에 빠지게 하는 그런 것들이다. 이것은 인터넷시대이기 때문이 아니다. 지식인들의 식민적 의식과 습관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그러한 대표적인 용어가 하나 더 생겼다. 지방자치 선거가 다가오면서 방송이다, 신문이다 죄다 매니페스토를 외친다. 어느 똑똑한 자가 한번 색다른 말로 잘난 척을 하려고 들고 나온 말이 소위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마치 새로운 것이 발견된 양, 온통 매니페스토다. 정말 가관이다.

엄격히 따져보자. 이 말을 대체할 말이 없어 외래어로 써야 하는가. 아니면 세계화시대라 그 말을 써야 하는가. 이 단어를 제대로 발음하려면 매니페스토가 아니라 ‘매너페스토우manifesto[m n festou]’다. 영어도 제대로 안쓰고, 뜻도 명확히 전달하지 못하면서 그 말을 쓰려고 한다. 지식인들이여, 잘 난척하지 말고 식민지적 사대주의에서 벗어나라. 매니페스토가 아니라 정책확인·공약확인운동 이라고 쓰면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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