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작(酬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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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酬酌)
  • 충북인뉴스
  • 승인 2006.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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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태 재 직지포럼 대표
   
[속보]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 하청노조 박순호 수석부지회장 서문대교 조형물 위에서 고용보장요구 시위 중 3/21 오후…. 문자메시지에 이어 연신 휴대폰이 울린다. 그래, 알고 있어. 119는? 경찰은? 그래, 좀 더 지켜보자.

1월1일 우암산 해맞이 때 소지종이에 적어 사른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노조문제해결> 소원에 아직까지 답을 아니 주는 산신령을 찾아 산을 향한다. 청주향교 지붕 위로 하청지회 노동자들의 절규가 날아와 앉는다. 서문교 조형물 고공에서 박순호의 몸부림이 들려온다. 발걸음이 무겁다.

한 무리의 새마을 일꾼을 만난다. 나무를 심습니까? 평소 같으면 지나칠 것을 수작을 걸어 본다. 예, 이리 와서 막걸리 한 잔 하시죠. 술 마시면 산에 못 올라 갈 텐데…. 입보다 발걸음이 먼저 꺾여 진다. 그래, 무슨 나무를 심나요? 무궁화요. 나라꽃이란 말씀이지. 뜻은 가상하나 가꾸기가 여간 아닐 텐데.

요즘엔 약이 좋아서 진드기 같은 것은 쉽사리 퇴치할 수 있답니다. 약(藥)이라…. 꽃은 오래 피지만, 보기에는 좀 그렇든 데요. 그럼, 뭘 심으면 좋을까? 여기 산수유가 벌써 꽃망울을 터뜨렸네? 봄의 전령사 아닌감? 열매는 진짜 약(藥)으로 쓰고… 아, 저기 죽 심겨져 있는 것은 자귀나무 같은데, 부부 금슬(琴瑟)을 상징하는…. 에이, 우리는 그냥 무궁화 심을랴!

새마을 아저씨들과 수작을 건네다 보니, 대성전 지붕 넘어 확성기 구호가 가려지는 듯싶다. 다시 산을 오른다. 오른 편에 못 보던 플래카드 하나가 보인다. 계곡 아래 두꺼비 서식지를 알리며 시민의 자존심을 부추기며 청주의 상징 두꺼비를 보호하자는 환경연합의 캠페인이다. 인간과 자연은 상생(相生)인가, 상쟁(相爭)의 관계인가.

숨이 턱에 찰 무렵,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훌라후푸가 돌아가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저렇게 크고 굵은 훌라후푸는 처음 본다. 천연덕스레 훌라후푸를 돌리고 있는 훌라후푸보다 훨씬 작은 체구의 아줌마의 똥배가 안쓰럽다.

해지는 우암산 마루. 오늘 따라 한가롭기 그지없다. 모두들 어딜 갔을까. 날씨가 하도 좋아 봄나들이 간 게지. 나들이는커녕 가족해체의 위기에 몰린, 15개월째 투쟁 중인 하이닉스·매그나칩반도체 하청노동자문제를 어쩌다가 떠안게 되었는지, 내가 나를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서로간 한 치의 양보를 하지 않으니 용빼는 재주가 있다한들 중재도 별 수 없고, 한 치라도 밀리면 끝장이라는 양보할 수 없는 구조가 숨을 막히게 한다. 근본적으로 비정규직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어떠한 타협도 어려운 현실이 가슴 답답하게 한다.

애당초 허점투성이 허수룩한 법규가 오늘의 사태를 불러왔다면, 그 법을 고쳐야 되지 않겠는가. 법률 개정안을 두고 대치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상생의 방안을 찾아야 할 것 아닌가. 노·사·정이 함께 고민하고 함께 고통을 분담할 때, 왜 길이 없겠는가.

가령, 비정규직 관련법을 원점에서 논의하여 사유제한을 규정하되 시행시기를 일정기간 유보하는 한편 그 기간 동안 정규직은 임금을 동결하여 동결한 만큼 비정규직에게 더해 주고, 사용자도 그에 상응하는 만큼 비정규직의 임금을 상향조정해 나아간다면 3~5년, 혹은 7~10년 안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를 줄이게 될 것이고, 그리되면 자연히 정규·비정규 구분이 없어질 것 아닌가. 그 때에는 국어사전적 의미의 비정규직만 남을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정부는 사회안전망 구축, 양극화 해소에 전력투구하여,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면 노사정 모두가 상생, 윈윈하게 된다. 이제부터 정부와 국회, 노·사가 머리를 맞대어 대타협, 노사정합의를 도출해 내라.

하산 길. 푸드득, 장끼 한 마리가 솟아올라 일직선을 그으며 날아간다. 꿔억, 꿔억, 꿔억, 꿔꿔꿔, 컥…. 건너편 계곡에서 켁-, 까투리가 묻는다. 왜 그려? 꿔억, 꿔억, 별거 아녀. 켁, 어여 건너와. 꿔억, 꿔억, 켁….

장끼와 까투리가 수작 부리는 해거름. 아, 집 나간 하청지회 노동자의 아내, 한 달이 넘게 별거 중인 노동자 부부는 언제쯤이나 된장찌개 저녁밥상을 놓고 소주 한잔 수작을 건넬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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