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法)이 믿음을 주면 법대로가 좋다. 그리고 하이닉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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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이 믿음을 주면 법대로가 좋다. 그리고 하이닉스 …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6.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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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덕 현 편집국장
   
‘법대로 하자’는 물론 법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송사를 겪다 보면 이 ‘법대로’ 때문에 상처받는 경우도 더러 있다. 당사자들에겐 그야말로 사활이 걸린 소송인데도 막상 법정 안에서의 진실게임은 ‘반드시 진실만이 이긴다’를 꼭 담보하지는 못한다. 뻔한 거짓말도 종 종 완벽한 서류와 진술에 힘입어 진실로 선택될 수 있다는 개연성 때문이다.

지난 20일 서울에서 있은 제주 지법의 세화송당온천지구 뇌물사건 현장검증은 이런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이 사건은 충북을 대표하는 신라개발 이준용회장이 연루돼 그동안 많은 관심을 끌어 왔고, 그 귀결 또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이날 현장검증은 두 가지 측면에서 관심을 끌었다. 사건의 수사 단계가 아닌, 재판과정에서 법원이 이례적으로 현장검증을 택했다는 점과, 제주에서 서울까지 올라 오는 원정이라는 점이 이채로웠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시종일관 붙잡은 것은 재판장 등 법원 관계자들의 열정이었다. 이날 현장검증은 점심시간이 바로 지나 시작돼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물론 제주에서 올라 온 관계자들이 비행기표를 연장하면서까지 몰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려 여섯군데나 옮겨 다니며 진행된 이날 현장검증은 기자를 파김치로 만들 정도로 강행군이었지만 일일이 사진채록에다 녹취까지 하며 갖은 고생을 감수한 재판부는 신역(身役)보다는 되레 시간부족에만 아쉬움만을 토로했다.

중요한 것은 이날 현장검증에서 많은 부분이 확인됐고,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여기저기서 유레카적인 반응이 나타났고, 취재기자의 입장에서도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식의 기사를 당장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좁은 소견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현장검증이 없었다면 재판에서 많은 부분이 왜곡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간혹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지만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은 재판부에 큰 박수를 보냈다. 세화송당온천지구 뇌물사건은 당사자들의 진술이 상반되면서 그동안 6차례의 공판에도 불구, 말씨름만 난무해 왔다. 때문에 이날 현장검증은 거짓을 가려내는 결정적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한가지 눈길을 끄는 사례가 있다. 보존여부를 놓고 논란을 빚는 충주 쇠꼬지 재판을 맡은 서울 행정법원이 오는 31일 역시 현장검증을 벌인다는 것이다. 이 건 역시 지역에 오랫동안 파문을 안겼는데도 아직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재판부의 담당 판사가 쇠꼬지 동굴에까지 직접 들어 가 검증을 벌일 예정이다. 황금박쥐 서식지인 이곳 쇠꼬지는 폐갱도가 오랜 기간 방치된데다 인근 탄금호의 물이 안으로 다량 유입돼 있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직접 확인하겠다는 재판부의 의지가 오히려 살갑게 다가오는 것이다.

서민들에게 법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그러나 법원의 이런 변화는 분명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으로 반추되고 있고, 굳이 더 속내를 드러낸다면 감흥(感興)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20일 현장검증에서도 내내 이런 기분이었다.

하이닉스 사태가 1년을 훨씬 넘기고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의 직접고용이 법에 저촉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바람이 있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도 앞의 두 사례와 같은 ‘현장검증’의 절차가 있었으면 좋겠다. 1년이 넘도록 거리로 내몰린 비정규직들의 처절한 생존투쟁과 그들의 피눈물나는 삶의 조건들을 직접 목격한다면, 과연 법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금방 답이 나올 것이다. 법이 인간 위에 군림하면 약자들은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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