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교사’낙인, 법정에서 진실 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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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교사’낙인, 법정에서 진실 가려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0.02.05 09: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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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호 교사 31년 만에 국보법 위반 유죄판결 재심 첫 재판 현장취재
과거 강 교사 지지했던 제자들 “재판 끝까지 선생님과 동행하겠다” 밝혀
1989년 전교조 해직교사의 명예회복과 강성호 교사의 진실·승리를 기원하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교육민주화동지회는 재심 재판이 열리는 청주지법 앞에서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1989년 전교조 해직교사의 명예회복과 강성호 교사의 진실·승리를 기원하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교육민주화동지회는 재심 재판이 열리는 청주지법 앞에서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충청리뷰_박소영 기자] '진실승리’.

강성호 교사(58청주 상당고)와 그의 아내 서유나 교사의 외투에는 작은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 강성호 교사의 국가보안법 위반 유죄판결을 바로 잡는 재심 첫 재판이 30년 만에 지난 130일 청주지방법원 621호에서 열렸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전교조 전 해직교사들이 법정 앞에 모였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31년 동안 상처를 오롯이 안고 살아온 강 교사를 위로하며 재판부를 향해 이번에 꼭 진실을 밝혀줄 것을 요청했다.

31년 전인 19895월 당시 노태우 정권은 전교조 결성 자체를 체제 도전이라고 규정하고 공안 차원에서 국가권력을 총동원했다. 노태우 정권은 89522일 서울 인덕고 조태훈 교사, 524일 충북 제원고 강성호 교사, 526일 경북 영주 동산여중 이수찬 교사가 각각 북침설을 교육하고 북한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수업도중 영문도 모른 채 경찰에 의해 끌려갔던 강 교사는 하루아침에 북침설 교사’, ‘빨갱이 교사로 둔갑해있었다.

 

초임교사에게 벌어진 일

 

두 달 전 갓 부임한 스물여덟 초임교사에게 이 같은 일이 왜 벌어졌을까. 강 교사는 학교장의 독단적인 학교운영에 문제를 제기하고 자율학습비와 각종 성금 내역을 공개하라는 등 투명하고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한 실천에 나서면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이러한 갈등 상황은 교원노조 추진위원회 활동과 맞물려 심화됐고, 학교장은 나의 교내외 활동을 계속 감시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학교장은 학급 반장들에게 강 교사의 수업내용을 보고하라고까지 했다. 결국 교사가 수업시간에 수업한 내용을 학교장이 문제 삼아 교사를 고발하고 제자와 스승을 한 법정에 세우는 일이 벌어졌다.

전교조 결성을 앞둔 1989524일 학교장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강 교사를 고발했고, 강 교사는 수업 도중 불법 연행을 당해 구속됐다. 강 교사의 구속 사유는 수업 중 북침설을 가르치고 북한체제를 찬양하였다는 것이었다. 경찰이 강 교사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로 내세운 것은 학생 6명의 증언이었다.

하지만 증언을 한 6명의 학생들 중 2명은 문제가 된 수업시간에 결석한 사실이 이미 그 당시에 밝혀졌다. 6명의 학생들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수업을 들었던 같은 반 학생들은 물론 전교생 300여 명은 자신들은 북침설 수업내용을 듣지 못했다며 당시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선생님을 돌려달라고 호소했다.

30년 전 기억을 복기하는 강성호 교사의 모두 발언 모습.
30년 전 기억을 복기하는 강성호 교사의 모두 발언 모습.

 

교단에 서기까진 10년도 더 걸려

 

하지만 강 교사가 다시 교단에 서기까진 긴 세월이 걸렸다. 그는 8개월간 수감생활을 한 뒤 10년 넘게 이어진 해직 생활을 견뎠다. 이 같은 상황을 지켜보던 남동생과 부친은 먼저 유명을 달리하는 등 가족의 고통도 끊이지 않았다.

강 교사는 999, 교단을 떠난 지 104개월 만에야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그는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재심 소송을 준비했다. 강 교사는 지난 30여 년간 개인뿐만 아니라 민족 민주 인간화교육에 나섰던 수많은 선생님들이 고통을 받았다. 이제라도 우리들에게 가해진 국가폭력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진실승리’피켓을 든 서유나 교사와 강성호 교사 모습.
‘진실승리’피켓을 든 서유나 교사와 강성호 교사 모습.
법정에 들어가기 전 제자들과 만난 강성호 교사 모습.
법정에 들어가기 전 제자들과 만난 강성호 교사 모습.

법정에는 31년 전 교단을 강제로 떠났을 때 선생님을 다시 돌려달라며 외쳤던 제자들이 배석했다.

이복순 씨는 선생님이 그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다고만 알았다. 30년 넘게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연락이 닿아 동창회에서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됐고, 그간의 사정을 알게 됐다. 너무 놀라고 마음이 아팠다. 당시 선생님을 위해 탄원서도 쓰고, 운동장에서 데모도 했는데 그 이후 어떻게 됐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고 말했다.

제자 김성규 씨는 지난해 연말 동창회 상조회 모임에서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먼저 관련 자료를 다 보내달라고 했다. 친구들에게도 진실을 알렸다. 많은 친구들이 놀라고, 미안해했다. 거짓증언을 했던 6명의 친구들 중 몇몇 연락이 되는 친구들에게도 사실을 알렸다. 이들도 30년 간 응어리를 안고 살았다며 미안해했지만 법정에 설 지는 미지수다라고 말했다. 이복순 씨와 김성규 씨는 제천에서 청주 법정을 보러왔고, 권병미 씨는 서울에서 왔다. 이들은 선생님의 재판이 끝나는 날까지 함께하겠다. 증언대에 서겠다고 결의했다.

강 교사의 쌍둥이 누나인 강성숙 씨는 열정이 참 많은 친구였다. 나도 교사로 일했지만 아마 해직의 아픔이 없었다면 정말 큰 일을 했을 동생이다. 한 가족이 국보법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어머니는 고향인 진주에서 매일 청주로 기차를 타고 와 1인 시위를 하셨다. 재심 재판으로 진실이 밝혀지는 게 우리 가족의 마지막 소원이다고 답했다.

페이스북에서는 강 교사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진실을 알리는 온라인 1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다음 재판은 312일로 잡혔다. 같이 근무했던 김성장 교사와 제자들이 증언대에 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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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욱 2020-02-05 17:22:22
선생님의 진실을 향한 투쟁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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