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뽀] 때 아닌 ‘우한 태풍’에 지역민심 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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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뽀] 때 아닌 ‘우한 태풍’에 지역민심 돌풍
  • 김천수 기자
  • 승인 2020.02.0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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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우한 교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수용 논란
‘폐렴 공포’ 속…진천 주민들, 반대부터 찬성까지
중국 우한교민 수용을 반대하는 진천 주민들.
중국 우한교민 수용을 반대하는 진천 주민들.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앞에 진천 주민들이 게시한 우한 교민 수용 환영현수막.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앞에 진천 주민들이 게시한 우한 교민 수용 환영현수막.

[충청리뷰_김천수 기자] 수백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키며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2019-nCoV‧우한 폐렴)의 공포가 국내 지역까지 회오리를 일으켰다.

지난달 29일 오후 우한 교민 격리 수용지로 충북혁신도시 내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이 포함됐다는 소식에 지역의 반발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29일 낮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과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을 최종 수용지로 결정 발표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충남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과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 2곳에 수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아산과 진천으로 최종 결정되자 반발하는 천안의 대체지가 된 것 아니냐는 자존심 문제로 연결됐다. 게다가 지자체 등 관계 기관과 아무런 사전 협의나 통보도 없이 언론을 통해 수용지 결정이 발표됐다는 소식에 주민들까지 홀대론을 들고 나왔다.

특히 진천은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이 계획 신도시인 충북혁신도시에 속한 곳으로 평지 1㎞ 반경 내외에 아파트 단지와 학교들이 밀집해 만약의 경우 집단 감염의 위험성이 높다는 점이 반대의 근거가 됐다. 충북혁신도시는 진천군 덕산읍과 음성군 맹동면 지역에 연접해 조성됐다. 이에 음성지역도 이곳의 우한 교민 수용을 반대했다.

이날 오후 3시 음성군의원 8명과 맹동면 주민 일부는 충북혁신도시 맹동출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의 우한 교민 수용지 결정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이보다 앞서 경대수 국회의원(증평‧진천‧음성), 진천군의회, 진천 상신초 어머니회도 진천군청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강력 반발했다.

오후 5시께에는 송기섭 진천군수도 기자회견을 통해 유감 표명과 함께 재검토 요청 의사를 밝혔다. 송 군수는 “어떤 사전 협의도 없이 결정됐다”면서 “2만6000명이 밀집 거주하는 신도시 인근이 수용지로 결정된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비슷한 시각 임해종 더불어민주당 총선 예비후보와 이필용 자유한국당 예비후보도 보도자료를 내고 재검토를 주장했다. 경대수 의원은 5시 40분, 국회 정론관에서 우한 폐렴 수용시설 지정을 즉각 철회하라는 요지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기자회견과 성명서 발표가 숨 가쁘게 이어지는 동안 400여 명의 진천지역 주민들은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앞에 모여 당국의 결정을 성토했다. 다만 이들은 우한 교민의 국내 입국 및 격리 수용을 반대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주민들은 번갈아 마이크를 잡고 인구 밀집지역 인근 시설로 정해진 것은 잘못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다른 시설을 찾을 것을 요구했다.

이날 저녁 행정안전부와 보건복지부 해당 과장은 주민들 앞에 서려다가 마이크도 잡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주민들의 “우리를 설득하려 들지 말고 돌아가라!”는 격앙된 요구 때문이다. 대신 인근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주민대표 및 송 군수 등과 만났지만 권한의 한계로 실질적 대화는 갖지 못했다.

결국 밤 10시 반께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이 내려와 주민들과 마주하게 됐다. 그러나 “정부 방침을 이해해 달라”는 김 차관의 말에 주민들은 강경함을 늦추지 않고 물병과 종이컵 세례를 가했다. 김 차관은 뒷머리 채를 잡히기도 하다가 경찰의 도움으로 10분만에 돌아서야 했다.

진천‧아산 대승적 포용

주민들은 푯말과 촛불까지 들고 "혁신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몇 명인 줄 아냐", "수용을 결사 반대한다"며 격하게 항의했다. 주민 일부는 이날 밤샘 농성을 이어갔다. 다음날 저녁에는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이 내려왔다. 진 장관은 시위 중인 주민들 눈을 피해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 들어가 시설을 둘러본 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강당에서 주민대표들과 대화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이시종 충북지사와 양 군수, 경 의원 등 정치인들도 참석했다.

주민대표들은 선정 기준과 이곳 수용 시설의 입지가 맞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고 진 장관은 철저한 방역 관리 등을 설명하는 도돌이표 대화였다. 주민들은 합리적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면서 진 장관을 몰아붙였다. 대화가 1시간가량 지루한 공방으로 지속될 즈음인 7시 반경 주민 1명이 고성을 지르며 강당에 난입했다. 진 장관은 호위 속에 건물 밖으로 피신하듯 빠져나갔다. 참석자 대부분은 “제대로 된 답변 준비도 없이 왔다.”는 반응을 보이며 무너진 기대감에 허탈해했다.

그런데, 다음날인 31일 오전 대반전이 일어났다. 주민대표들이 대책회의를 통해 결정한 “수용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시위 장소에 있던 기자들 앞에서 발표했던 것. 이를 전혀 예상치 못한 기자들은 발표 현장 사진을 건지지도 못했다. 전날 강경했던 분위기와는 반대로 주민대표들은 반대현수막을 스스로 철거하고, 얼마 뒤 환영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지자체 및 국회의원 등도 같은 의미의 성명을 발표했다.

윤재선 비상대책위원장은 “어떤 계기로 찬성으로 돌아서게 됐느냐”는 질문에 “대승적인 차원에서 결정했다”면서 “(시위) 주민들과 사전 상의도 못하고 결정했지만 수락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주민대표들의 주장은 교민 수용 반대가 아니라 천안서 이 곳으로 변경한 이유, 합당한 선정 이유, 주민 밀집지역 감염 우려, 영유아 및 노년층 감염 우려 등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찬성으로 돌변하기까지는 여론의 향배가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반대 목소리가 극심했던 시간에도 인터넷 공간이나 SNS에서는 지역이기주의, 님비현상 등 비판적 댓글이 눈에 많이 띄었다. 주민들 사이의 단톡방에서도 논란이 목격되기도 했다.

이를 의식한 듯 주민대표들은 마이크를 잡을 때마다 서두에 “국내 교민 수용을 반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는 말을 먼저 붙였다. 결국 주민들은 교민을 태운 차량을 끝내 막아섰을 때 닥쳐올 비난을 의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론에 밀린 결정이라도 크게 환영받을 일이다.

“교민들이 차에서 내릴 때 바람이 도시 쪽으로 불면 눈앞이 캄캄하다”고 한 주민대표의 말이 귀에 생생하다. 당국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설명 부족과 지역 방역 대책 소홀, 국제적 공포 속에서 주민 불안감은 당연할 수 있다. 혼란의 책임은 중앙사고수습본부나 질병관리본부에 더 크다.

입국한 우한 교민 701명은 진천 173명, 아산 519명, 병원 9명으로 격리 수용돼 있다. 아산, 진천 주민들은 이들이 무탈하게 잠복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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