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지속가능성은 왜 아무도 고민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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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지속가능성은 왜 아무도 고민하지 않는가”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0.02.13 10: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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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일하고 떠나는 최윤정 충북청주경실련 사무처장
“매 순간 경실련을 생각하며 살아” 이젠 자연인으로..
최윤정 충북청주경실련 전 사무처장. /사진=육성준 기자
최윤정 충북청주경실련 전 사무처장. /사진=육성준 기자

 

최윤정 충북청주경실련 사무처장이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2006, 41살 늦깎이 시민단체 활동가로 첫 발을 내디딘 뒤 그는 14년간 쉼 없이 달려왔다. 늘 자신감 있고 당당한 어조로 기자회견을 열던 그의 모습은 아쉽게도 이제 볼 수 없다. 때로는 외골수’ ‘완벽주의자라는 평을 들어왔던 최 처장.

그는 후배들을 위해 선배는 어느 시점이 되면 물러나야 한다. 그 사이 젊은 신입 활동가들이 들어왔고, 경실련도 어느 정도 세대교체를 이뤘다고 본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화여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잠시 야학을 했다. 이후 플러스인테리어디자인이라는 건축관련 잡지사에서 2년 정도 일했다. 서울여자인 그는 남편과 탈서울을 하기 위해 청주로 내려왔다. 남매를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경력단절 여성이 됐고 그러다가 우연히 경실련 활동가 모집 공고를 보게 됐다.

사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로 살 것이라고 계획하지 않았다. 언젠간 일을 다시 하기 위해 웹디자인을 따로 배우기도 했다. 틈틈이 글을 쓰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 즈음 경실련이 진행한 아파트 분양가 거품빼기 운동을 접하게 됐다. 마침 신입간사 모집 공고를 봤고, 마흔이 넘어 수습간사가 됐다. 당시 이두영 처장이 면접 때 나랑 동갑이네요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중소상인 살리기운동 기억에 남아

 

2006년은 선거가 있던 해였다. 덜컥 충북시민사회연대회의 간사를 맡았다. 전문가 집단과 공약을 만들고 점검하면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사실 수습간사 3개월만 하고 그만두려고 했다. 그런데 해결해야 할 사건들이 눈앞에 줄줄이 나타났다.

2008년엔 중소상인 살리기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엔 홈플러스 청주점이 24시간 영업을 하겠다고 발표한 게 발단이 돼 다른 마트들도 24시간 영업을 시도했다. SSM(대형슈퍼마켓)들도 청주에 진입하려고 했다.

상인들은 천막농성을 시작했고, 경실련은 이들과 연대했다. 결국 이 싸움으로 유통법과 상생법이 개정되는 결과를 낳았다. 지역상권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를 확보한 셈이다. 이 일로 그는 2011년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주는 상인 동범상을 수상한다.

2010년엔 사직 4구역 재개발사업이 도마 위에 올랐다. 시행사가 이미 원주민의 토지와 주택을 60%이상 사들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최 처장은 당시 250여 가구 등기부등본을 일일이 떼고 소유주가 누군지 파악했다. 소문이 왕왕 돌 때 그가 내뱉은 말은 파보겠다는 것이었고, 그는 실제로 팠다.’

엑셀도 잘 못하는 데 밤을 새며 정리했던 기억이 난다. 며칠 전 경실련에서 짐을 정리하다가 그 엑셀파일이 나와서 좀 기분이 묘했다.”

 

누군간 균열을 내야 했다

 

2014년 그는 경실련 사무처장이 됐고, 연초제조창 개발을 둘러싼 총체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이 일은 결국 2019년 열린도서관 문제로 또다시 불거졌고, 현재 경실련은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한 상태다.

이밖에도 청주고속버스터미널 현대화사업, 청주테크노폴리스 개발 사업, 신청사 공모 등 청주시가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사업들의 문제들에 대해 줄곧 까칠한목소리를 내왔다.

뜨겁게 달려온 지난 시간. 그는 이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과연 누가 고민하고 있나라고 되묻는다.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데 정작 이 지역엔 고민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절차의 문제가 많았는데 지금은 절차는 합법적인 듯 보여도 결과를 보면 특정집단이 이익을 가져간다. 처음 시민단체 활동을 시작했던 2006년보다 지금의 공무원 사회는 더 고착화된 느낌이다. 누군가는 균열을 내야 한다. 하지만 비판을 듣지 않는 사회가 돼버린 건 나 역시 슬프다.”

 

나의 시민운동은 여기까지

 

경실련과 연을 맺은 이후로 그의 삶은 경실련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는 경실련 활동에 필요한 책을 읽었고, 고민을 했고 실천했다. 201620주년을 맞이한 경실련을 지금의 중앙동으로 옮겨올 때도 결단이 필요했다. 경실련은 독립건물을 갖고 있는 청주지역의 유일한 시민단체다.

남에게 부탁하는 걸 진짜 못하는 데 막상 눈앞에 닥치니 하게 됐다. 모금 관련 책을 읽고 매뉴얼대로 실행하다보니 또 되더라.”

온 에너지를 쏟은 후 그는 이제 지역에서 시민운동은 여기까지라고 말한다. 3년 임기의 사무처장을 두 번 연임하고 그는 떠난다. 이병관 정책국장이 이어 사무처장을 맡기로 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의 시민운동을 늘 의식적으로 생각했다. 현수막 하나를 만들어도, 의제를 설정하는 것도, 보도자료를 쓰는 것도 그랬다. 14년 동안 달려오니 이제 55세가 됐고, 멈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장을 연임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경실련을 그만두며 그는 개인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남겼다.

이제 내일은 시민사회 활동가가 아니다. 여러 불안감이 있다. 14년간 동안 내가 무얼 하고 싶은 건지 원하는 건 뭔지 생각하고 살지 않았다. 모든 생활이 경실련 중심으로 돌아갔다. 늘 원칙적이고 주변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활동가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제 좀 경쾌한 글을 쓰고 싶다. 인생이 길다고 하니까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다시 생각해보고 다른 일을 시작해 봐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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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0-02-13 20:50:55
청주 사람들 중에 경실련 안싫어하는 사람 못 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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