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 기자의 '무엇'] 가난을 전시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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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기자의 '무엇'] 가난을 전시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0.02.19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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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사회문화부장

영화 <기생충>의 촬영장소인 서울 아현동 일대가 신 관광코스로 떠오른다고 한다. 서울시가 영화 속 배경이 됐던 장소들을 로드로 엮어 관광상품으로 내놓을 예정이란다. 영화 속 피자가게였던 돼지슈퍼또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알음알음 찾고 있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시아영화 최초로 오스카 4관왕을 달성한 이후 생겨난 풍경이다. 돼지슈퍼에서는 극중 기우(최우식)가 박 사장(이선균)네 가정 교사 제의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서울시와 주민 등에 따르면 시는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서 돼지슈퍼를 포함한 기생충 촬영지를 서울의 주요 관광 코스로 소개할 예정이다. 인근 상권과 촬영지를 엮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이에 대한 주변 상인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가난을 전시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내비치기도 하고, 아현동이 재개발 대상지인데 이 일로 계획이 수정될까봐 전전긍긍한다는 것이다.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관광이라는 것이 결국 일상의 모든 것을 대상화하는 속성이 있다. 그저 사람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 어느 날 갑자기 관광지가 돼버리면 더욱 그렇다.

서울시의 이러한 발상을 지켜보면서 청주시 수암골이 떠올랐다. 몇 편의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됐고, 소위 뜨면서 덩달아 삶의 공간은 졸지에 관광지가 돼버렸다.

우리는 가난을 전시하고, 팔아먹고 있지만 누구도 이에 대해 문제제기하지 않았다. 이곳에 살고 있는 몇몇 원주민들만이 목소리를 냈지만 지금은 이들도 하나둘 집을 팔고 떠나고 있다. 관광지가 돼버린 공간에서 사는 건 불편하다. 처음 수암골이 부각될 때는 관광객들이 수시로 남의 집 담을 엿봤으며 화장실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고 한다. 마치 동물원에 갇힌 원숭이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기분이나 감정보다는 그저 수암골이 청주의 그나마 있는 유일한 관광코스로서 성공할지 말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타지인의 시선으로 봤을 땐 소소한 일상의 모든 것들이 빛나고 신기해보일 수 있다. 가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관광을 한다고 하지만 무엇을 보고 좋아하는 것일까.

수년 전 베네치아에 간 적이 있다. 첫 번째 방문했을 땐 베네치아의 멋진 건축물만 눈에 들어왔다. 그저 파도위에 스치는 바람과 물빛 곤돌라의 풍경만을 마음에 담고 왔다. 두 번째 갔을 때는 갑자기 작은 골목에 호기심이 생겼다. 미로처럼 헤매다 보니, 그 곳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만났고 삶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멋지게만 보이던 창문이 없던 집들은 거주하기엔 너무나도 불편하고 척박해보였다.

알고보니 베네치아에 살고 있는 이들은 가난한 노동자들이었다. 관광지에서 하루의 삶을 파는 이들은 결국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을 결국 타인으로서 소비하는 것뿐이었다. 가난을 전시하는 것도 마찬가지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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