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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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힘
  • 충청리뷰
  • 승인 2020.02.2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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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표 길동무작은도서관장
홍승표 길동무작은도서관장

 

최근에 감탄하며 읽은 책은 김민웅의 <동화독법>이다. 이 책은 2012년에 처음 나왔는데 꾸준히 사람들에게 읽혔던 듯하다. 몇 번의 인쇄를 거치더니 2017년에 개정판을 펴냈다. 구판에는 저자가 미운 오리 새끼, 신데렐라, 솔로몬의 지혜, 인어공주, 토끼전 등 10개의 동화 민담을 읽으며 느꼈던 생각들을 담았는데 이번 책에는 일본의 민담 ‘모모타로’ 이야기를 보태서 열 한 개의 이야기를 담았다.

책 제목이 동화독법, 즉 ‘동화 읽는 법’이다. 동화도 읽는 법이 따로 있나 싶고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교훈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그렇지가 않다. “고정관념은 때로 세상을 공평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일을 가로막는 장애가 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나 민담에서 고정관념을 걷어내고, 새로운 생각의 단서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이야기를 독자들께 건네는 이유입니다.”

그러니까 저자는 동화나 민담을 이렇게 읽었지만 거기에 묶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눈으로 찬찬히 읽고 자신의 머리로 사고하여 좀 더 당당한 자신과 풍요로운 사회를 만드는 생각의 실마리를 찾아내기 바란다는 것이다. 열 사람이 읽으면 열 사람이 나름 다른 생각이 떠오르고 다른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얘기다.

홍세화 선생은 오래전 자신이 쓴 책에서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을까?” 이 물음은 내가 성찰해서 얻은 생각이 아닌 경우 그것은 내 생각이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누군가 주입한 생각일 수 있다는 걸 깨우쳐준다. 독서의 경우에도 그렇다. 특히 동화나 민담은 꼭 책을 읽지 않았어도 어디선가 한두 번쯤 내용에 대해 들어보았기에 이미 읽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나아가 그 이야기의 교훈도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한 마디로 고정관념이다. 그렇게 되면 상상력도 소통도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고정관념의 폐해가 곳곳에 얼마나 많은가.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이 한 가지 진리뿐이라는 말도 있는데 세상은 이 진리에 잘 귀 기울이지 않는 편이다.

내가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 후원자들에게 일 년에 한 번 붓글씨를 써서 선물한다. 어설픈 글씨지만 마음이 담긴 후원금을 내 주신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올해는 어떤 글귀를 선물할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글귀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많은 이에게 아주 익숙한 글귀인데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나 너는 너 그러나 사이좋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자꾸 혼란스러워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나’와 ‘너’가 개념 없이 섞이기 때문이다. 너를 나처럼 만들려고 하거나 나를 포기하고 너만 따려가려다 보니 쓸 데 없이 힘들고, 오해하고 마침내 다투게 된다. 올 4월에는 민의를 대변할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가 있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19 사태로 온 나라가 건강의 위협을 느끼고 아울러 경제 또한 침체되는 면을 보이고 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모두가 힘을 모아 이 국면을 슬기롭게 잘 극복해야 하리라.

그러고 나면 이제 곧 전국이 선거열풍에 휩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뜨거운 바람이 거셀수록 중심을 잡는 일이 더욱 중요하리라. 나는 어떤 세상을 원하는지, 내가 행복을 느낄 때는 언제인지 차분하게 생각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 아니면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쪽으로 나도 모르게 휩쓸려 갈 수 있다.

<동화독법>을 다 읽고 책을 덮고서는 표지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거기 이런 부제가 붙어있다. ‘유쾌하고 섬세하게 삶을 통찰하는 법.’ 동화나 민담을 꼼꼼하게만 읽어도 삶이 유쾌해지고, 섬세하게 읽기만 해도 삶을 성찰하는 힘을 키울 수 있다는 뜻이겠다. 그러니 삶이 혼란스럽고 세상살이의 답을 잘 모르겠거든 동화나 민담 같은 이야기를 찬찬히 읽어보시길 권해 드린다. 읽기의 힘을 느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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