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장군의 공기돌 바위가 왜 여기에?
상태바
온달장군의 공기돌 바위가 왜 여기에?
  • 충청리뷰
  • 승인 2020.03.11 09: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주 미륵대원사 터에 있는 이유 무엇일까
측은지심, 향수, 아니면 잘못된 표현 등 유추 가능

 

충주에는 온달장군이 가지고 놀던 공기돌 바위가 있다. 하늘재 북사면에 위치한 미륵대원사지의 중심축에서 오른쪽 큰 암반 위에 설악산 흔들바위의 축소판처럼 생긴 공기돌 바위가 있다. 이 공기돌 바위는 지름 1m 정도 되는 크기인데, 아주 둥글어서 보름달 같이 보인다. 힘센 장정이 들면 움직일 것 같으나, 마을 어귀에 있던 들돌보다는 커서 감히 엄두내기는 어렵다.

그런데 온달장군의 공기돌 바위가 왜 충주 미륵대원사 터에 있을까 의문이다. 온달은 우리가 어릴 때 할머니에게 듣던 전래동화의 주인공인 그 바보 온달일 것이다. 울보 평강공주와 결혼한 평원왕의 사위로, 많은 남성들에게 평강공주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던...

바보온달 이야기는 온달이 울보 평강공주와 결혼하고 잘 살았다는 것이 결말이 아니다. 결혼 후 열심히 공부하고 무술을 연마하여 과거시험에 당당히 합격해 대장군이 되었다는 것까지가 마무리이다.

여기에 《삼국사기》 온달전의 이야기가 더해져 있다. 온달이 대장군이 된 후 고구려 고토회복작전을 수행하며, “죽령과 계립령 이서의 땅은 고구려의 옛 영토이므로 이 땅을 회복하지 않으면 결코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며 출전했다는 기록이다. 죽령, 계립령 근방의 영토를 회복하지 못하였으니 온달장군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전사한 것이다. 온달장군의 주검을 넣었던 관이 움직이지 않아 공주가 와서 최선을 다했노라고 위로해 주고 나서야 비로소 운구를 했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미륵대원사지 5층석탑(보물95호)
미륵대원사지 5층석탑(보물95호)

 

공기돌에 얽힌 얘기 세 가지
죽령은 지금의 단양에서 경북 영주(풍기)로 넘어가는 고개이고, 계립령은 충주와 문경을 연결하는 옛길로 지금의 하늘재로 여겨진다. 온달은 충주가 신라 진흥왕대 이후 신라 땅이 된 뒤에 고구려의 고토회복을 위해 활약했던 인물이다. 역사 속에서 충주가 신라 땅에서 다시 고구려 땅이 되지는 않았다. 《삼국사기》에 언급된 계립령이 지금의 ‘하늘재’라면 온달은 이곳까지 오지도 못하였고, 이 공기돌을 가지고 놀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이야기가 생겨났을까? 생각되는 가정은 한 세 가지 정도이다. 첫째는 민중지향적 측은지심(惻隱之心)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온달은 바보이지만 울보 평강공주와의 결혼으로 일약 장군이 된 인물이다. 당시의 민초들은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하층민의 대표로 성장한 온달장군이 큰 뜻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비록 고토회복작전은 실패하였지만 성공을 바랐던 아쉬움에 측은지심이 발동한 민중의 바람을 공기돌 바위에 불어넣은 것은 아닐지...

두 번째는 고구려에 대한 이 지역사람들의 향수가 반영된 것이라는 견해이다. 고구려가 중원에 들어와 지배한 것은 장수왕의 남하정책부터라고 보면 550년에 신라의 진흥왕이 중원에 들어오고 있으므로 불과 75년에 지나지 않는다. 광개토대왕비에 보이는 신라원정군의 파견부터로 보아도 150년간의 경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지역 사람들은 고구려에 대한 인상이 좋았던 것 같다. 고구려의 아차산 보루성 발굴지에서 확인하듯 물자의 풍성함이 중원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은 것으로 여겨진다. 후삼국이 쟁패를 벌일 때 이 지역사람들은 일찍부터 후고구려(고려)를 지지하고 있다.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태조 왕건의 막강한 처가가 충주였음이 이를 증명한다.

세 번째는 온달과 보름달의 음 차용일 것이라는 해석이다. 둥근 보름달을 온달이라고도 하니까 둥그런 바위를 보름달, 또는 온달처럼 생겼다고 한 것이 온달설화와 혼용되어 자리 잡았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미륵대원사지에는 온달장군의 공기돌 바위가 있다. 이 공기돌의 존재는 충주지역 사람들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온달장군에 대한 측은지심의 표현이든, 향수이든, 아니면 잘못된 것이든 중요한 것은 이 공기돌 바위에 대한 깊은 정이다. 그 정에는 중원인들의 고구려에 대한 향수가 깔려있다.

미륵대원사지 귀부
미륵대원사지 귀부
온달장군 공기돌바위
온달장군 공기돌바위

 

고구려로 특화된 국립충주박물관 기대
최근 국립충주박물관의 건립이 가시화되며 전시 주제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중원문화를 대표하는 국립청주박물관이 있기에 이와 차별화된 전시 주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가장 강력한 대안이 바로 고구려를 테마로 하는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집안박물관 입구에 전시한 집안고구려비를 촬영조차 못하게 철저히 통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미 고구려도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시점에 남한에서 고구려를 말 할 수 있는 곳은 충주뿐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고구려의 생활유적, 성곽, 무덤과 더불어 국보 205호인 충주고구려비를 보유한 충주에 고구려를 전시주제로 하는 국립박물관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온달장군의 공기돌 바위에 보이는 충주 사람들의 마음이 고구려 문화에 대한 향수와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여 고구려로 특화된 국립충주박물관 전시실을 갖기를 희망해 본다.

길경택 사단법인 예성문화연구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