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인문학
상태바
코로나 인문학
  • 한덕현
  • 승인 2020.03.25 0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지난 휴일, 전남 구례의 산수유마을은 역시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록 매년 열리는 산수유축제는 최소됐지만 봄맞이를 하려고 몰려드는 인파와 차량은 어쩔 수가 없었다. 입구 쪽에서 올려다 보거나 혹은 이 동네 꼭대기까지 올라가 산수유꽃이 만개한 마을 전체를 바라보는 건 그 자체로도 힐링이다. 여기저기서 감탄사들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돌연 SNS를 통해 며칠전 이 마을에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분위기는 급반전한다. 부딪치는 사람마다 감탄사 보다는 서로 걱정들을 주고받았고 더러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방금 전만 해도 그저 화사하기만 하던 산수유꽃도 돌연 어딘지 모르게 색깔이 어두워 보이는 게 아닌가. 현지인에게 이유를 물으니 겨울이 아주 추워야 색이 곱게 나오는데 이번 겨울은 눈도 없고 춥지도 않아 그렇다고 한다. 피차 전문가가 아니어서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분명한 것은 똑같은 꽃을 보고도 확진자 방문 얘기로 순식간에 느낌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거기를 떠나면서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떠올렸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는 뜻으로 흔히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의미를 얘기할 때 자주 인용한다. 요즘 명상에 빠져 툭하면 스마트폰까지 끄고 잠적하는 한 지인이 기회 때마다 강조하는 것이 있다. 생각이 느낌을 만들고, 생각이 삶을 지배하고, 생각이 곧 존재라는 것이다. 비록 그의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어도 꽃구경 갔다가 엉겁결에 코로나로 인해 나름의 깨우침을 얻게 됐다.

실은 코로나 때문에 모든 일상이 불안, 초조, 침체로 점철되고 있는 요즘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 가지, 그 것도 평소 몰랐던 아주 소중한 교훈들을 만나고 있다. 나로선 코로나 인문학이 되는 셈이다. 우선 가장 큰 것은 중국이나 우리보다도 한참이나 뒤늦게 코로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미국과 유럽 등 이른바 서양인들의 혼비백산이다. 처음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가 발견되어 한국과 일본 등으로 퍼질 때만해도 서양의 반응은 동양에 대한 멸시와 비아냥이었다. 아직 규명이 안된 박쥐 숙주설까지 퍼지면서 음식과 위생은 물론이고 총체적인 동양문화를 폄훼하는데 열을 올렸고 트럼프같은 경우는 자기들한테 코로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식으로 만용을 부리다가 대처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결국 재선까지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그런데 지금 현실은 어떤가. 그 잘난 서양인들이 졸지에 ‘동양바라기’가 되어 난리도 아니다. 특히 한국에 대해선 의료체계, 의료기술, 국가적 대처 등이 서양의 롤모델로 둔갑해 연일 외신을 장식한다. 과거 동양에 대한 서양의 식민통치가 낳은 편견인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 코로나 한 방으로 산산이 유린되고 있는 것이다. 서양은 합리적, 과학적이고 동양은 미개, 반문명적이라는 등식이 서양인 스스로에 의해 지금 신랄하게 깨지고 있다. 동양의 입장에서 보면 800여년 전 징기스칸이 유럽을 집어삼킨 이후로 이보다 더 통쾌한 적이 없었다. 하여 코로나 이전의 지구촌과 코로나 이후의 지구촌의 극명한 달라짐이 벌써부터 기대되고 있는 것이다. 인류문명은 서양이 아니라 동양에 의해 견인되고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시대의 도래 말이다.

두 번째로 코로나가 깨우치는 교훈은 언론과 직결된다. 코로나가 미주와 유럽으로 확산되고 끝내 팬데믹 선언으로 귀결되자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우리나라 보수 언론들이다. 초장부터 방역실패라는 딱지를 붙여 문재인 정권의 좌절을 끈질기게 충동질하던 이들 언론에 갑작스런 복병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나라 방역체계에 대해 세계언론의 극찬이 쏟아지면서 보수언론들은 동시에 방향을 잃게 된다.

근자만 하더라도 “한국의 검사 능률은 미국과 유럽의 느린 작업과 대비된다. 방심하고 있다가 급속히 퍼져나가는 코로나19에 허가 찔린 다른 나라들에 비해 200명당 1명꼴로 검사를 진행한 한국이 앞선 모델이 되고 있다"(월스트리트저널), “코로나19 발생 초창기에 가장 타격을 입은 국가 중 하나인 한국은 공격적 대응으로 팬데믹 가운데 하나의 모범을 세웠다"(워싱턴포스트), "한국은 전염병 통제의 모범이다. 대규모 셧다운 없이도 확진자 수를 극적으로 줄이는데 성공했다"(스페인 최대일간지 엘파이스), "누구나 쉽게 검사를 받지 못하는 다른 나라의 상황은 바이러스 전파 규모를 가리고 바이러스 진행 방향을 통제하는 데 있어서도 제약을 준다. 바로 이런 차이가 한국과 이탈리아의 치사율 격차가 나타나게 된 원인이다"(CNN)등 등 낯이 뜨거울 정도의 호평이 이어졌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은 생중계된 코로나19 대응 회의에서 "우리는 한국의 몇몇 경험을 철저히 연구했다"고 말했고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일본 야마나카 신야는 “한국에 머리를 숙여서라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정보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나라 보수언론들은 외국에서 인정하는 성공적인 방역체계는 정부가 아니라 시민과 민간차원의 산물이고 대구의 성공사례 역시 정부가 아닌 대구시민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인데도 정부가 그 공을 가로채고 있다고 별 희한한 논리를 들이댄다. 고작 마스크문제를 가지고 대통령 탄핵을 부추긴 우리나라 언론이다.

 

이같은 언론들의 작태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많은 이들은 코로나 뉴스와 관련정보를 국내 언론보다도 외신을 통해 습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실제로 외신에선 국가 책임자들의 코로나 언급시 한국의 성공사례가 수시로 거론되고 기자들도 끈질기게 한국을 적시하며 자국의 방역실패를 따지기 일쑤지만 국내에는 이같은 소식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국가경영의 투명성과 극도의 민주화, 위기에선 국민 모두가 발벗고 나서는 공동체의식, 그리고 국민들이 알아야할 정보는 실낱 하나도 숨기지 않는 선진 시스템을 그들은 부러워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다시 한번 절감하는 것은 사회와 국가운영에 있어서의 언론 본연의 역할과 소명으로, 많은 국민들은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수구언론의 반역사성을 또 한번 실체적 사실로써 경험하고 있다.

이번 코로나가 깨우치는 또 한가지 인문학적 요소는 종교에 대한 뜻밖의 성찰이다. 이만희의 신천지, 전광훈의 사랑제일교회를 목격한 국민들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런 질문들을 던질 것이다. 인류에게 종교는 무엇이고, 우리에게 신앙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지. 그리하여 그들의 광기(狂氣)를 과연 어떻게 종교라는 신념으로, 또 어떻게 믿음이라는 요체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놓고도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할 것이다. 혹여 그 것들이 이단이라면 왜 이러한 종교가 우리 옆에 존재하는지, 또한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을 전제한다면 왜 그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지도 스스로에게 물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