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민주주의가 온다!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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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민주주의가 온다! 올까?
  • 충청리뷰
  • 승인 2020.03.2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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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상 청주대 법학과 교수
조한상 청주대 법학과 교수

 

“최신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혁신적 전자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놀랍게도 이 아이디어가 처음 주장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반세기 전, 그러니까 1970년대의 일이다. 디지털 직접민주주의로서 전자 투표, 디지털 대의민주주의로서 온라인 시민협의를 양대 축으로 논의가 진행되었지만, 기술과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했던 그 당시에는 막연한 환상에 불과했을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으면 1분 1초도 세상이 돌아갈 수 없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전자 민주주의는 전자 투표 시스템(이른바 누름단추식 민주주의)의 범주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정보 제공형, 대화형, 여론 형성형 등 민주주의를 둘러싼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는 프로젝트가 추진됐다. 그러나 그 어떤 사회영역보다도 스킨십이 강조되는 민주주의 정치 영역에서 전자 민주주의의 진전은 생각보다 빠르지 않았다.

그리고 2020년이 도래하고 말았다. 코로나19라는 보이지도 않고 정체도 알기 어려운 신종 바이러스가 우리나라를, 나아가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밀접 접촉을 통한 높은 감염력이라는 속성 때문에 우리는 자발적 격리와 거리 두기를 일상화하고 있다. 학교와 일터에서의 평범한 일상은 반쯤은 멈췄고 반쯤은 변했다. 대학교 수업은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강의로 임기응변 중이다. 직장생활 역시 재택근무와 화상회의라는 새로운 업무환경에 적응 중이다.

정치라고 예외는 아니다. 가장 큰 변화는 거리를 누비며 시민들과 손이 퉁퉁 붓도록 악수를 하는 정치인들이 사라진 것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활용이 어렵겠지만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투표 기술 개발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2020년의 4.15 국회의원 선거는 전자 민주주의의 도래를 앞당긴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세상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대체될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민주주의 영역은 더더욱 그러하다. 온라인 기사에 달린 댓글들의 ‘좋아요’, ‘싫어요’ 숫자 경쟁, 내가 쓴 글이 어디쯤 올라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실시간 채팅을 민주적 소통이라고 할 수 없다. 오프라인 투표소에서 느끼게 되는 기분 좋은 설렘을 집에서 하는 스마트폰 투표로는 느낄 수가 없다.

분명 전자 민주주의는 공식적인 민주주의 절차와 제도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없다. 시민들 사이의 동질감과 신뢰감, 눈빛과 표정을 확인하면서 주고받는 대화와 토론,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건 신념과 그에 대한 책임감. 이러한 것들이 만들어 내는 무형의 정치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치문화는 모니터 위 가상 경험이 아닌 실제적인 민주적 체험을 통해서만 형성되고 확인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그간의 우리의 민주적 정치문화는 충분했다고 말하기 곤란하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위기가 비대면 사회를 무차별적으로 촉진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면 가뜩이나 척박한 우리의 민주적 정치문화는 더더욱 불모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번 위기를 통해 온라인을 통해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영역, 반대로 온라인으로 대체될 수도 없고, 대체되어서도 안 되는 직접 소통의 영역을 냉철하게 분별하는 기회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대수롭지 않았던 봄철 꽃구경이 올해는 새삼 애틋해질 공산이 크다. 그처럼 이번 사태가 민주적 소통과 체험의 가치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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