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04-02 17:32 (목)
[김천수 기자의 '메아리'] 자니윤과 윤종승 그리고 돌모루
상태바
[김천수 기자의 '메아리'] 자니윤과 윤종승 그리고 돌모루
  • 김천수 기자
  • 승인 2020.03.25 22: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천수 취재국장
김천수 취재국장

[충청리뷰_김천수 기자] 유명 연예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정치인 등 일반적인 유명인이 아닌 연예인으로서 국제적인 불세출의 인물로 등극하기란 극히 드문 일이다.

국내 토크쇼의 선구자 코미디언 자니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을까.

1936년생인 자니윤이 지난 884세를 일기로 미국 LA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충북 음성군 금왕읍 금석리 돌모루가 고향인 그는 음성고 학생시절 서울 성동고로 전학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졸업 뒤 미국 현지에서 영화배우, 코미디언 등으로 활동하던 그는 자니 카슨 더 투나잇 쇼에 출연한 계기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민자의 난관을 극복하면서 노래가 아닌 언어와 위트로 코미디계에서 웃음을 던지기란 쉽지 않았겠지만 그는 이 쇼에 30회 이상 출연하며 큰 웃음을 선사했다. 1973년 뉴욕 최고 연예인상을 받았고, 1978NBC방송에서 쟈니 윤 스페셜쇼메인 MC를 맡아 유명해졌다. 영화를 직접 제작·출연해 더욱 유명세를 탔다.

미국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1989년 한국 KBS에서 자니윤 쇼’, 1991SBS ‘자니윤 이야기쇼등 메인 MC로 활약해 국내 토크쇼의 새 장을 열었다.

필자는 자니윤 선생이 80세 때인 2016년 단독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다. 그가 상임 감사로 있던 강원도 원주 소재 한국관광공사를 찾아가 대담을 진행했다.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과 미국에서 성공을 위해 노력하던 시기를 이야기 하던 그의 인상적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한국관광 진흥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상임 감사에 대한 대담이었지만 인간 자니윤에 대한 정담으로 자연스럽게 많은 시간이 할애됐다.

한국전쟁 때 음성 감우재 전투 당시 고개 쪽에서 돌모루 마을로 흘러내려오던 많은 핏물을 본 목격담 등 그의 이야기는 수구초심 후회막급이었다. 그러면서 향후 고향인 음성지역에 기여할 어떤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기도 했다.

미국에서 대학시절 세탁소에서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던 이야기도 들려줬다. 짜투리 시간에 성악 연습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 무대를 연결해 줬는데 그가 백만장자였다는 인연의 중요함도 일깨워줬다. 또 하나는 자신의 시나리오가 완성단계인데 남북평화에 기여하는 내용의 영화를 직접 제작할 구상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동향인으로서 후배인 기자에게 정감어린 마음을 전해준 그는 인간 윤종승이다. 상임감사 명패에도 자니윤이 아닌 윤종승으로 새겨져 있었다. 행운이었는지 사진 상태가 좋지 않아 재촬영을 위해 다시한번 방문해 만났다. 그는 외부 식당으로 직접 필자를 안내해 오찬을 권유해 식사도 함께 했다. 앞서 음성군청에서 만나 명함을 교환한 이후 3번 째 만남이었다. 그는 2015년 주민 강좌를 위해 음성을 찾았다.

음성에서 다시 만나 좋은 이야기를 다시 나누자고 약속했던 자니 윤종승을 잊지 못한다. 필자를 만난 그해 연말께 뇌출혈 발병으로 도미해 치료하던 중 치매와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장기 기증 후 한 줌 흙으로 돌아갔다. 특유의 그 웃음을 지으며 갔을까.

충청리뷰를 응원해주세요.
'올곧은 말 결고운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