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몰린 영세 식용란수집판매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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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몰린 영세 식용란수집판매업자
  • 권영석 기자
  • 승인 2020.03.3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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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생산,선별,유통기준 해썹, 4/25부터 수집업자도 의무화
사각지대 놓인 수집판매업자들 국민청원 준비

우리가 먹는 달걀은 양계농장에서 생산해서 가공처리한 후 수집·배달업자들을 거쳐 마트, 슈퍼, 음식점 등을 통해 식탁에 오른다. 식약처는 달걀유통과정을 투명하게 하겠다며 지난해 325가정용 달걀, 선별포장 제도의 해썹(HACCP) 의무화를 시행해 1년의 계도기간을 뒀다.

해썹은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에서 허가를 담당하는 위생관리 시스템으로 식품의 원재료 생산에서 최종소비자가 섭취하기 전까지 거치는 과정에 생물학적, 화학적, 물리적 위해요소가 식품에 첨가되거나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달걀생산에도 해썹이 적용된다. 살모넬라에 닭이 감염되지 않았는지, 사육 과정에서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등의 조건에 부합하면 인증을 해주고 농장 입구에 해썹마크를 붙인다.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사후 점검을 통해 농장들을 관리한다.

이제는 달걀생산뿐 아니라 유통에서도 해썹이 의무화된다. 달걀 유통에도 여러 단계가 있다. 보통 농장에서 식용란을 선별하고 위생처리를 거쳐 소포장한다. 이후 수집·판매 등으로 세분화된다. 문제는 이 기준이 수집·출하하는 업체들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달걀은 5번의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른다 /식약처 제공
달걀은 5번의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른다 /식약처 제공

 

대한양계협회는 지난주 식용란 선별포장업의 기반시설이 충분히 설치될 때까지 계도기간 연장과 수집·판매업자들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협회 관계자는 안전한 유통을 목적으로 1년의 계도기간을 줬고, 이를 대비해 EPC(Egg Procurement Center, 달걀유통센터)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완료되지 못한 지역이 많다고 말했다.

EPC는 일종의 달걀의 보관·유통기능을 갖는 물류집하장소다. 농장에서 EPC로 달걀을 옮기면 수집업자들이 각자 물량만큼 배포하는 유통방식으로 전환하는 거점이다. 지역마다 광역EPC를 두는 것으로 정부에서 추진했고, 양계협회에 따르면 2018년도부터 신·증축계획을 세워 경기도 5, 경북 1, 충남 2, 경남 1, 전북 1곳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신축을 완료한 곳은 경기도 한 곳 뿐이고 충북은 계획조차 없다.

 

영세업체에겐 그림의 떡

 

양계협회 관계자는 식용란 선별포장업 건립비용이 과다한 것도 문제다. 투자할 여력이 없는 곳들도 대다수다. 농장 당 15000만원에서 28000만원까지 비용이 소요된다최소 60%의 농가는 법이 시행될 경우 계란판매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해썹 기준을 받기 위해서는 파각기, 현발검출기등 기자재를 놓아야 하고, 기타 건축물도 보완해야 한다. 물론 의무화되기 전에 해썹을 받은 곳도 있다. 지역 농가수를 기준으로 경기도가 32%, 부산·울산·경남 21.2% 등이다. 충북은 8.1%74개 농가 중 선별포장업 허가를 받은 곳은 3곳에 불과하다.

결국 상당수 영세 농가들은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이에 식약처는 이미 시설이 완비된 선별포장업장에서 외부계란을 취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부분 선별포장업장이 양계농가에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AI등에 따른 방역문제로 외부계란의 반입·취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나마 농가들은 대안이라도 있지만 영세한 식용란 수집판매업자들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이들은 농장 등 선별포장이 완료된 달걀을 가져다가 달걀판에 뚜껑을 씌우고 유통기한, 생산지등을 표시해서 시중으로 유통하는 업자들이다. 쿠팡맨처럼 대형택배사가 집하장에 물건을 두면 각자 할당된 곳으로 물건을 배달하는 일을 한다.

쿠팡맨과 다른 점이 있다면 수집판매업자들의 경우에는 제품에 상표와 원산지를 표기한 다음 자신이 개척한 판로에 물품을 조달한다는 점이다. 양계협회 관계자는 농장에서 이미 해썹 인증을 받은 물건에 대해 재포장 배달만 하는 일에 식품에 준하는 해썹을 적용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고 지적했다.

청주시내의 한 달걀수집업장 /육성준 기자
청주시내의 한 달걀수집업장 /육성준 기자

 

수집업자 폐업하고 국민청원하겠다

 

식약처는 업계의 상황에 따라 세부기준을 만들어서 인증한다고 설명하지만 달걀유통에 제시된 기준은 잠깐이라도 달걀보관을 하면 10로 하라는 등의 식품에 준하는 것들이다. 대한양계협회, 달걀유통협회 등에서는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왔다.

이에 식약처 관계자는 식용란 선별포장을 하는 농장에서 포장한 것을 그대로 쓰거나, 재포장업을 등록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포장업체 기준안은 세척란은 저온창고에서 10, 비세척란은 25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세척란은 60의 수압으로 외부이물질을 제거한 것이고 비세척란은 닭이 알을 낳은 상태 그대로의 것이다.

청주의 한 달걀수집업자는 만약 기준에 맞춰도 마트 슈퍼 식당 등에 가면 달걀은 대부분 상온에서 보관한다저온에서 보관하다가 상온으로 가면 표면에 물이 생기는 결로현상이 발생한다. 현장에서는 전혀 실효성 없는 얘기들이다결국 대형회사만 살아남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현재 국내에는 영세한 식용란 수집판매업체가 약 2200곳 있다. 소규모 유통업자들은 기존에 자신의 노동력을 들여 포장해서 개별 거래처에 판매한다. 만약 제도가 시행되고 기준에 따라 농장에서 포장된 것을 가져다가 그대로 팔면 달걀 한 판당 원가가 늘어나게 된다.

한 수집업자는 거래하는 농장에서 완전히 포장해서 납품하면 한 판당 1000원씩 가격을 더 달라고 한다지금 상태로 영업을 하면 425일부터는 적발 시 허가취소, 벌금 등의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우리는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식약처 기준으로 해썹 인증을 받는 것은 전혀 실효성이 없는 탁상공론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폐업신고라도 한 뒤 국민청원을 통해 문제점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그를 중심으로 지역의 달걀유통업체들이 동참의 뜻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힘을 모아 문제점을 알리고 대책마련을 촉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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