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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푸른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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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푸른 감옥
  • 충청리뷰
  • 승인 2020.04.2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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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벽’ 앞에서 사랑을 생각하다

 

‘사랑해 벽’은 몽마르트에 있다. 지하철을 타고 아바쎄 역에서 내려 그 뒤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작은 공원이 나타나는데, 그 공원의 한쪽에 자리 잡은 것이 바로 ‘사랑해 벽’이다.

‘몽마르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테르트르 광장과 사크레쾨르 대성당을 떠올리지만, ‘사랑해 벽’도 이젠 결코 빠트려서는 안 되는 새로운 명소이다. 그러나 아직은 다소 생소한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왜냐하면 ‘사랑해 벽’은 2001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되어 관광지로서의 역사가 비교적 짧기 때문이다.

‘사랑해 벽’은 총 511개의 작은 타일(29.7cm×21cm)로 만든 푸른 벽(10m×4m)으로 여기에 ‘사랑해’라는 의미의 글자가 하얗게 새겨져 있다. 무려 300개가 넘는 언어라고 한다. 푸른색 바탕에 하얀색 글자가 매우 선명하다. 외국 언어에 손방인 나로서는 그 언어들의 국적을 일일이 알 수는 없었지만, 언어는 달라도 사랑한다는 의미는 모두 같을 것이다.

물론 한국어도 있었다. 외국에서 보는 한국어는 더욱 반가웠다. “사랑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 너 사랑해”라는 세 개의 문장이었다. 그런데 제일 위에 쓰여 있는 ‘나는’이란 글자가 거꾸로 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공중제비를 한 것이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아니면 실수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일부러 그런 것이라면 참으로 절묘하다.

사랑해 벽
사랑해 벽
사랑해 벽
사랑해 벽

 

더도 덜도 말고 딱, 한마디 ‘사랑한다’라는 그 말. 그 말을 뱉는 순간 세상은 정말로 황홀한 공중제비를 한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모자를 쓰고 동터 오는 푸른 설렘이다. 그 설렘은 끝내 입술에서부터 불꽃을 일으키기 시작하여 온몸으로 번진다. 그 불꽃 꺼질세라 원앙금침 둘러치고 털실로 시계바늘을 꽁꽁 묶기도 한다. 영원하라고. 이 순간 그대로 영원하라고.

그러나 우린 어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모든 게 찰나의 푸른 감옥이라는 것을. 밤마다 쏟아져 내린 별똥별들이 실은 우리의 뼈를 뜨겁게 태운 하얀 숯이라는 것을.

사크레쾨르 대성당
사크레쾨르 대성당
테르트르 광장
테르트르 광장

 

푸른 감옥

-사랑해 벽

푸른 감옥이었어요 여자의 왼손과 사내의 오른손이 하나의 수갑에 묶여 있었어요 평생 한 몸처럼 지내야 한다며 서로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는 거예요 서로가 서로에게 담장이 되는 그런 감옥이었대요 그래도 여자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어요 어제는 구름 마차를 타고 양들의 나라에 가서 피리를 불었고 오늘은 은하로 날아가 밤새워 뱃놀이를 한다는데요

수갑은 유리로 만든 거라네요 아름답지만 쉬 깨진다는 거예요 유황으로 만든 거라는 이도 있어요 태생적인 불기운이 있어 자칫 화상을 입기 십상이라는 거예요 누군가는 다이아몬드로 만든 거라고도 하네요 사실, 그렇게라도 믿고 싶다는 건데요 그렇지 않다면 자진해서 감옥으로 들어갈 리 만무하다는 거지요

여인을 다시 만난 건 구월의 어느 강가에서였어요 어린애를 등에 업고 있어 자칫 몰라볼 뻔 했어요 손을 씻고 있었는데 수갑을 찼던 왼 손목에 하얀 자국이 선명했어요 씻을수록 더욱 하얗게 빛이 났어요 눈물도 얼비쳐 반짝였는데요 여자는 그렇게 푸른 강물을 따라 흘러갔어요 하얗게 흘러갔어요 등 뒤에서 어린애도 그걸 보고 있었어요

/장문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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