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부러운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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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부러운 요즘
  • 한덕현
  • 승인 2020.04.29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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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1992년 미 대선에서 클린턴에게 극적인 승리를 안긴 슬로건은 지난 총선에서도 자주 출몰했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 is the economy, stupid)’. 선거 중반까지만 해도 패색이 짙던 클린턴은 걸프전 승리와 구 소련 붕괴에 따른 냉전종식등 군사, 외교의 성공으로 지지도가 90%까지 치솟던 조지 부시를 이 말 한마디로 좌절시키고 막판 역전승한다. 당시 미국은 대외적인 엄청난 성과에도 불구하고 안으로는 경기침체와 만성적인 재정적자로 국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우리의 사정이 지금 꼭 이렇다.

요즘 어느 사석을 가더라도 좌중을 휘어잡는 건 코로나와 경제 얘기다. 이미 어려워질대로 어려워진 경제현실만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앞으로를 더 두려워하는 것이다. 코로나 방역성공과 이로 인한 해외로부터의 찬사가 여당의 총선 압승으로 이어졌지만 이 것도 잠시, ‘경제’가 모든 걸 압도할 조짐이다. 가장 걱정되는 건 부익부 빈익빈과 빈부격차가 더 심해진다는 암울한 진단이다.

이미 주변에선 이런 추이들이 쉽게 목격된다. 서민과 소상공인들은 죽기 일보직전이라고 아우성이지만 골프장과 고급음식점은 사람들이 넘쳐난다. 골목 식당은 하루일당 벌기도 급급한데 자금 사정이 넉넉한 규모화된 맛집들은 흔들리지 않고 문전성시다. 현금을 많이 보유한 사람들은 마땅한 투자처를 찾느라 요즘 특히 혈안이 되었다는 말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코로나가 부추기는 양극화의 심화를 해소하기 위한 해법을 놓고 사회적 격론만 난무하지 속시원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본격 위세를 떨치기 시작한 지난 3월, 국내 5대 은행에서 개인 고객들이 중도 해지한 예·적금은 7조원이 넘었다. 1년 전 같은 달보다 2조5000억원이나 늘어난 액수다. 예·적금을 깨면 이자가 형편없겠지만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이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근데 이 와중에서도 같은 시기 은행들이 확보한 개인 고객 예·적금은 11조원 넘게 늘어났다고 한다. 누구는 먹고살기가 힘들어 예금과 적금을 깨는 사이 또 누군가는 돈을 차곡차곡 넣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상황이 불안하면 가진 사람들은 은행의 예·적금을 선호하게 되는데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신한은행이 발표한 ‘2020년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를 보면 실상은 더 구체적이다. 소득별 부동산 자산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고 소득 상위 20% 가구와 하위 20% 가구의 부동산 자산 격차가 12.3배까지 벌어졌다. 또 소득 상위 20% 가구는 약 1억2500만원의 부채를 갖고 있었는데, 대다수가 부동산 자금 마련을 위한 빚으로 이를 레버리지로 활용해 자산 증식에 나선 것으로 풀이됐다.

반면 소득 하위 20% 가구의 지난해 평균 부채 잔액은 3646만원이었고 소득 상위 20%에 비해 신용도가 떨어지다 보니 카드사(16.8%), 저축은행(8.4%), 대부업체(2.8%) 등 제2·3금융권 대출 상품 이용률이 상대적으로 높아 상당한 이자 부담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의 대부분은 생계를 위한 급전으로 사용됐다. 다시 말해 가구 소득이 높을수록 총부채 잔액에서 차지하는 부동산 관련 대출 비중이 컸던데 비해 가구 소득이 낮을수록 일반 신용대출과 현금서비스 비중이 높아 자산의 증식 보다는 생활비를 마련하는 데 급급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흥미로운 것은 코로나 여파가 우리나라 국민들의 '부'를 향한 열망을 더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서점가의 경제·경영분야 베스트셀러 중엔 '부' 혹은 '부자'를 키워드로 한 책이 상위 목록을 장식한다. 단연 스테디셀러는 '존리의 부자되기 습관'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선 장기적 안목의 재테크가 중요하고 수입의 10%는 노후준비에 투자해야 한다는 내용을 다룬 책이다.

이 밖에도 ‘내일의 부’ ‘부의 추월차선’ ‘가장 빠른 부자의 길’ ‘부자들이 말해주지 않는 진정한 부를 얻는 방법’ 등 부자들의 성공담이 시선을 끈다. 1997년 출간돼 이 분야의 고전으로 통하는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의 20주년 기념판도 나와 있고 인문학을 통해 경제 흐름과 투자의 방향성을 예측하는 '부의 인문학'도 눈에 띈다. 부자되는 방법을 다룬 도서는 올해 1월 말쯤부터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하니 결국 코로나와 주기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현재를 기준할 때 ‘부자’를 키워드로 한 제목의책만 약 1000종에 달하고 구매자는 30대(39%)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다음으로 40대(26%), 20대와 50대(각 15%), 60대 이상(5%) 순으로 나타났다. 코로나를 계기로 젊은층들이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어느덧 몰려오는 불안감과 점차 심해지는 빈부격차에 따른 두려움이 부자에 대한 열망을 키웠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은 부자가 부럽고,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선 특히 앞으로가 더 걱정된다. 이미 코로나 여파로 인한 매출감소가 예사롭지 않으니 말이다. 과연 불황의 쓰나미가 어떻게 닥치고 그 시기는 언제부터가 될 것인지, 또한 대책은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등을 떠올리게 되면 잠자리마저 불편해진다. 위기를 예측하고도 이를 극복하지 못하거나 끝내 더 난국으로 몰린다면....이런 생각들이 수시로 엄습하는 요즈음이다.

정치권은 다시 2년후 대선과 지방선거에 올인할 태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가 어느 때보다도 다음 선거를 100% 가름한다는 사실, 때문에 여당이 이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또 야당이 지금처럼 발목만 잡고 국민들을 피곤하게 한다면 2년후엔 가차없이 심판받게 된다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는 정치가 이렇게 어려울까? 지난 총선에서 꼭 떨어져야 할 사람들이(이들은 하나같이 인상부터 불편함을 준다) 다시 살아나 설치는 모습은 이젠 정말 바라보는 것조차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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