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칠선계곡
상태바
지리산 칠선계곡
  • 한덕현
  • 승인 2020.05.07 09: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지리산 칠선계곡은 설악산 천불동계곡, 한라산 탐라계곡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꼽힌다. 그 중에서도 자연의 조화와 그 장쾌함으로는 칠선계곡이 단연 으뜸이다.

지난 4일 이 계곡의 전 구간을 탐방하는 기회를 얻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운영하는 ‘탐방예약 가이드제’에 운좋게 접수됐기 때문이다. 등산인들 사이에선 이런 기회를 얻은 것 자체가 큰 행운으로 통한다. 쉽지가 않아서다.

칠선계곡은 1999년부터 출입이 통제된 후 2008년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지리산에서도 아주 성지같은 곳이다. 이후 10여년간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되며 간헐적으로 한시적 개방을 통해서만 모습을 보여 왔다. 최근 국립공원측이 연중 4,5월과 9,10월 두 시즌에 걸쳐 매주 월·목요일에 탐방예약제를 실시해 극히 일부만이 계곡의 전 구간을 등반하는 기회를 얻는다. 그 외는 입구에서 4km쯤 떨어진 중간(비선담)에서 되돌아오는 산행만 허용된다. 지리산의 그 많은 등산코스 가운데서도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의 가이드를 앞뒤로 받으며 오르는 유일한 코스가 칠선계곡 전 구간이다. 그만큼 난이도가 높다.

4일, 일행 4명이 함께 한 칠선계곡 등반은 어쩔 수 없이 강행군으로 이어졌다. 대개는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휴식하며 1박2일 일정으로 진행하게 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대피소가 폐쇄되고 또 며칠전 발생한 헬기추락사고로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에서 곧바로 하산하는 등산로조차 통제되는 바람에 돌아서 내려와야 했기 때문이다. 계곡에서 천왕봉까지 오르는 9.7km를 포함해 약 17km의 난코스를 당일에 주파해야 하는 고된 신역(身役)이 수반됐다. 결국 아침 7시에 시작된 등반은 저녁 7시 하산으로 마무리 됐다.

역시 칠선계곡은 머릿속의 상상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 또는 대한민국의 허파라는 닉네임답게 발길 닿는 곳마다 울울창창한 수림이 일행을 반겼다. 수백 혹은 천년도 넘었을 거대한 주목들과 고사목, 그리고 그것들이 등산로 곳곳에 넘어진 채 떡하니 버티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과연 우리나라에도 이런 밀림이 있었나?를 연신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공식 확인된 7개 폭포와 33개 소의 수려함은 차치하고라도 도저히 접근이 어려워 수풀 사이로만 가뭇가뭇 보이는 계곡의 장대함이란, 가히 ‘전율’이라는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칠선계곡 상류쪽은 극심했던 빨치산 토벌에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워낙 산세가 험해서 정예화된 정부군조차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일까. 중간 중간 물이 많은 계곡에서 휴식을 취할 때마다 가족과 생이별하고 당시 이 험난한 산림을 오르내리며 시련과 인고의 시간을 보냈을 빨치산들의 움직임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폭이 넓은 계곡 자체가 주는 포용감 때문에도 더 그런 것같았다. 계곡 끝 지점에서 천왕봉 입구까지 약 두 시간 동안 경사 60, 70도의 가파른 오르막을 내쳐 올라타는 구간은 압권 중에 압권이었다.

국내에 잘 알려진 각종 종주산행과 난코스를 두루 경험한 나로서도 이번 지리산 칠선계곡 등반은 끝내고 난 뒤의 감흥이 특별했다. 그 성취감과 포만감이 더없이 컸던 것이다. 산행을 같이한 일행중 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재정립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지리산을 안방 드나들 듯하는 명실상부한 산꾼이다. 그렇다! 칠선계곡은 그 태고적 모습으로 우리에게, 아니 인간들에게 각별한 깨우침을 안기고 있다. 기본과 초심의 회복 말이다.

칠성계곡.  /뉴시스
칠성계곡. /뉴시스

 

산행 다음날 우리나라에선 사회적 거리두기가 종료되고 대신 생활속 거리두기가 시행됐다. 코로나는 지구인의 삶에 참으로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세계화와 시장주의, 신자유주의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고도 하고 세계질서의 재정비가 시급하다고도 한다. 우리나라 또한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달라지는 사회’를 의제로 다양한 논의와 논쟁을 벌이고 있다.

결국 이 것들의 귀착점은 팽창의 가식을 벗고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허위의 문명, 기망의 역사, 거짓의 세계화, 낭비와 오만의 물적성장을 코로나19는 가차없이 응징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를 좌지우지하고 호령하던 유럽과 미국이 한 순간에 허우적거리면서 코로나로 무너지는 것을 세계인들은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그 치졸함과 허술함 때문에도 인간사회와 문명이라는 것에조차 한없는 자괴감이 들었다.

코로나 확진판정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은 후 간신히(?) 퇴원한 존슨 영국 총리가 “죽다 살아났다(rose from death)”고 심경을 토로했다. 코로나로 인해 죽다 살아난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그들이 만들고 또 그들이 지키려 했던 모든 것들이 죽어 나자빠지려다가 이제 겨우 기력을 회복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집착해 왔던 것이 바뀌지 않는다면, 다시 인간의 본령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이 지구는 조만간 닥쳐올 코로나의 제2 기습을 막을 수 없다며 외신들이 연일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럴 때 지리산 칠선계곡 탐방은 일행에게 소중한 기운과 아주 값진 힐링을 안겼다.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오히려 마음의 카타르시스는 더 커지는, 그런 순간의 경험이 또 그리워질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