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의 시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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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의 시대를 생각한다
  • 충청리뷰
  • 승인 2020.05.0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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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표 길동무작은도서관장
홍승표 길동무작은도서관장

 

며칠 전 내가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으로 택배가 하나 왔다. 우리 도서관을 후원하는 김 아무개가 자신이 번역한 책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를 보내온 것이다. 빨리 번역해달라고 해서 급하게 했다는 번역자의 소감문과 함께 세 권을 보내왔다. 아마도 도서관에 기증해서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번역자의 바람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저자는 파올로 조르다노, 물리학자이며 소설가다. 그냥 소설가가 아니라 <소수의 고독>이라는 소설을 써서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을 두 개나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고 42개국에 번역 출판되어 수백만 부가 팔려나간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런 유명인도 코로나19 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이탈리아 안에 있는 자기 집에 갇히다시피 하고 지내면서 2020년 2월 29일부터 3월20일까지 스무날 동안 일기를 쓰듯 짧은 생각들을 기록했고 그것은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이 책에는 스물아홉 개의 글이 들어 있다. 대부분 아주 짧은 글이고 책의 전체 분량도 100쪽이 채 안 되었기에 금방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금 곰곰이 새겨 볼 생각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으며 그 글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코로나19사태라는 현재와 미래의 우리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규정하는 현 세계는 ‘전염의 시대’이다. 이 전염의 시대가 어떻게 닥치게 되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를 전염의 시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중국 우한에서 처음 누군가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전 세계의 사람들은 대부분 전염의 시대가 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전 세계로 확산되지 않았기에 중국의 문제, 그 가운데서도 우한이라는 한 도시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웃 나라로 번지자 그래도 유럽은 문제가 없겠지, 서양은 문제가 없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전 세계로 전염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 이 시대를 전염의 시대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시대는 금방 지나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전염의 시대를 받아들여야 한다. “더 이상 국경도, 지역도, 구역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정체성과 문화를 초월하는 것이다. 전염의 급속한 확산은 우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범세계화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사회는 우리 동네나 도시가 아니다. 우리 지역도 아니다. 전염의 시대에서 ‘우리 사회’는 ‘인류 사회 전체’이다.”

전염의 시대를 이겨낸다거나 극복한다가 아니라 생각한다. 이것이 저자의 자세이다. 극복하거나 이겨내려면 그 싸우는 대상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정확하게 그 실상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새로운 전염병은 어쩌면 지금 꼭 필요한 ‘생각으로의 초대’일지도 모른다. 유예된 활동, 격리된 시간들은 그 초대에 응할 기회이다. 무엇을 생각해야 하느냐고? 우리는 단지 인간 공동체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 섬세하고 숭고한 생태계에서 우리야말로 가장 침략적인 종이라는 것.”

저자 조르다노는 이런 말도 한다. “항공 교통은 바이러스의 운명을 바꾸었다. 아주 먼 땅을 더 빨리 침범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비행기만 일조한 건 아니다. 현대인은 기차와 버스, 자동차, 그리고 지금은 전동 스쿠터도 이용한다. 75억 명의 인간이 동시에 돌아다닌다. 이들 모두 빠르고 편안하고 효율적인(우리가 딱 좋아하는 그대로) 바이러스 수송망이다. 전염의 시대에 우리의 능력은 자신에게 가하는 형벌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언제부턴가 생각하기를 귀찮아하고 싫어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래서는 사람답게 살 수가 없다. 전염의 시대는 이제 시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낭떠러지 앞에 선 인간과 세계에 대하여.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함석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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