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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과 시원한 공기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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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과 시원한 공기의 대가
  • 충청리뷰
  • 승인 2020.05.1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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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활동 급격히 축소되면 온실가스 배출량 줄어

 

코로나로 인해 갖가지 이례적인 일들이 튀어나오는 2020년, 한국인들이 가장 쉽게 체감할 수 있는 ‘뉴노멀’은 우리 머리 위를 덮고 있는 하늘이었다. 평소라면 미세먼지 때문에 답답한 회색의 장막만 보였던 하늘이 어느새 필터를 걷어낸 것처럼 맑고 깨끗한 파란색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이뿐이 아니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올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8% 감소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지구 기온을 섭씨 1.5도 높이지 않기 위해 10년간 매년 7.6%씩 감축해야 하는 목표는 이렇게 ‘어이없이’ 초과달성 되었다. 무수히 많은 기후협약과 시민운동, 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줄어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던 온실가스 배출이 생각지도 못하게 순식간에 줄어든 것이다.

인간활동 축소로 얻은 부산물
미세먼지가 걷힌 하늘이나 갑작스럽게 줄어든 온실가스는 모두 판데믹의 부산물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판데믹으로 급격하게 인간 활동이 축소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하늘을 덮는 미세먼지의 근원인 중국 공장들이 바이러스로 인해 조업을 중단하게 되자 우리는 봄철의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마침내 세계적으로 바이러스가 퍼져나가자 제조업은 물론이고 자동차와 항공기를 비롯한 교통과 운송까지 모조리 급감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마저도 이례적 수준으로 줄었다.

사실 이 같은 온실가스 배출의 대대적 감소는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굳이 판데믹이 아니더라도 어떠한 이유에서건 인간 활동이 급격히 축소되었던 때 온실가스 배출은 줄어들었다. 2008년과 2009년 세계 금융위기가 닥쳐 경제 활동이 위축되었을 때, 1970년대 석유파동으로 불황이 서방 세계를 강타했을 때, 1940년대의 제2차세계대전 같은 사건들이 대표적인 예다. 심지어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소련이 갖고 있던 거대한 제조업 기반이 총체적으로 붕괴했을 때도 탄소 배출량은 감소했다.

여기에 더해 몇몇 학자들은 인간 활동의 축소와 온실가스 배출량의 상관관계가 산업혁명 이전에도 이미 성립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국내에 저서가 소개된 바 있는 버지니아대학교 환경과학부의 윌리엄 러디먼 교수는 수천년 전 농업이 지구적으로 채택되며 늘어난 온실가스가 지구 기온을 ‘인위적으로’ 따뜻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농민들이 숲을 태우고 개간을 하면서 탄소가 배출되고, 동아시아권은 여기에 더해 수답(논)에서 메탄까지 배출했다.

그 결과 지구가 다시 차가워져야 할 빙기 주기가 도래했는데도 지구 기온은 계속 따뜻한 간빙기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오래 지속된 따뜻한 기후는 다시 농업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해 인류 문명의 번성을 이끌었다. 인류가 지구 시스템 전반에 강하게 개입하기 시작한 게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이전부터였다는 이 가설은 ‘초기 인류세(Early anthropocene)’ 가설로도 알려져 있다.

인류사회 진퇴양난에 빠진 것 인식해야
인류 문명의 확장이 따뜻한 기후를 만들어냈다는 가설이 참이라면 당연히 반대의 사례도 있어야 한다. 러디먼 교수는 모종의 이유로 제국이 붕괴하고 인구가 급감했을 때 온실가스 배출량 역시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러디먼은 인구가 급감하면서 농경지가 버려지고, 그 자리에 다시 삼림이 조성되기 시작하면 대기중 탄소가 나무에 흡수되어 대기 중 탄소 농도가 낮아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즉, 초기 인류세 가설에 따르면 과거 한제국과 로마제국이 붕괴했을 때, 송제국과 중세 유럽이 붕괴했을 때, 유럽인이 아메리카에 도래하면서 원주민 문명이 파괴되었을 때 소빙기(Little Ice Age)가 찾아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물론 전근대 시대 지구 기온은 인간 활동의 증감만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 태양 활동의 주기와 화산 활동의 증감같이 역사 시대의 기후변화를 잘 설명해주는 기존의 지표들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전부터 인간 활동이 지구 시스템에 강력하게 개입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의 온실가스 배출과 기후변화 문제는 단순히 산업혁명으로 갑작스럽게 촉발된 최근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우리 인간이라는 종의 생물학적 속성, 그리고 우리가 쌓아 올린 문명이 지구 환경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오늘날의 기후변화라는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 것에 가깝다. 문명은 언제나 성장과 확장을 지향하고, 수축되었을 때는 개개인에게 엄청난 고통이 다가온다.

이번 판데믹은 그렇기에 ‘파란 하늘과 시원한 지구’를 위해서 지불해야 할 대가가 그간 상상해오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잘 알려준 사건이 아닐까 싶다. 방역을 위한 봉쇄가 장기화되면서 경제적 곤궁에 생존을 위협받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 누가 미래 환경에 대한 위협이 가시화되고 있으니 취약한 이들에게 지금의 고통을 십 년은 감내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인간 활동의 감축’을 편하게 이야기했지만, 그 감축이 진짜로 실현되었을 때 벌어질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제대로 성찰하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지구환경을 위한 정의로운 연설에 감동하기 전에 인류사회가 진퇴양난에 빠져있음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인간 활동의 기하급수적 팽창이 계속되었을 때 확실하게 다가올 환경적 재앙의 위협과 인간 활동의 급격한 축소가 가져올 각지의 인간 사회에 대한 치명적 타격. 그 사이 덫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것이 지금 인류 문명의 형세가 아닐까.

/ 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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