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직불금, 시작부터 과제 산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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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직불금, 시작부터 과제 산더미
  • 권영석 기자
  • 승인 2020.05.2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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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농가 한정해 실제 농사짓고도 자격 안 되는 사례 속출
소규모 농가 반발 고조, 농민들 “탁상행정 바로잡자” 주장
모내기가 한창인 청주시 상당구 인근의 농지
모내기가 한창인 청주시 상당구 인근의 농지

청주시 상당구에서 약 3만평 규모의 벼농사를 짓는 이상철(69)씨는 가을걷이를 마치고 나면 수중에 약 8000만원 남짓의 목돈을 쥔다. 하지만 월급 로그아웃(통장에 들어온 월급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신조어처럼 그의 피땀 어린 목돈 중 약 5000만원은 함께 농사짓는 사람들과 공동으로 부담한 비료·농약값, 농기계 상환금, 토지대출 상환금 등으로 눈 깜짝할 새 빠져나간다. 또한 경작을 위해 사용한 유류비 등의 비용을 빼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은 2000만원 남짓으로 1년 생활비 마련하기에도 빠듯하다. 그래서 이 씨의 주변에는 아파도 목돈 들어갈까 두려워 병을 키우는 고령의 농부들이 많다.

젊은 인구의 유입이 적은 상황에서 현재 농촌을 지탱하고 있는 이들이 무너지면 곡물자급률은 22%(2019년 기준)보다 더 떨어질 게 자명하다. 그래서 정부는 다양한 농가 보전금제도를 마련해 농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비료를 일부 지원하는 비료지원사업’, 정부가 고시하는 쌀 목표가격보다 시장가격이 낮을 때 차액의 85%가량을 지원해주는 쌀 소득 변동 직불금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제도에는 늘 허점들이 있었다. 특히 직불금의 부정수급은 해묵은 논란거리였다.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정치인들이 직불금 문제로 곤욕을 치러 망신살을 당해도 뒤에서는 여전히 부정수급을 저지른다이는 혹여 적발돼도 강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최근엔 모 청주시의원이 직불금 부정수급 의혹에 휩싸여 청주시의회 윤리위원회에 회부됐다. 부정수급 논란의 핵심은 부재지주 문제다. 부재지주는 토지의 소유자가 스스로 토지를 사용·수익하지 않고 타인에게 임대를 주는 지주를 의미한다.

정치인들에게 관련 논란은 치명적이다. 그럼에도 잊을만 하면 한 번씩 언론에 보도되는 끊을 수 없는 마약과도 같다. 부재지주가 실경작자로 둔갑하면 토지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이 크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실경작자가 농사를 짓기 위해 토지를 구입해서 8년 이상 경작하면 양도소득세 등을 감면해준다.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는 중·소규모 농업인들의 소득을 높여주겠다며 그간의 직불제도를 통·폐합한 공익형 직불제(이하 공익직불제)를 신설했다.

 

 

일선에선 대혼란

 

5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공익직불제의 핵심은 실제로 경작하는 농부들에게 지원금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기존에 쌀·밭농업 직불금, 조건불리직불금 등을 통합해 소농 직불금과 면적 직불금으로 구분했다.

소농 직불금은 농지면적 0.5ha(5000,1500) 이하, 농가 내 소유농지 1.55미만, 농촌지역 거주 및 영농종사 기간 각각 3년 이상, 농가 내 모든 구성원(비농업인 포함)의 농업 외 소득 4500만원 미만 등의 요건을 갖춘 소규모 농가에게 면적에 관계없이 연간 120만원을 지원하는 제도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0.5ha 이상을 경작하는 농민들에게는 면적 구간별로 기준 면적이 커질수록 지급 단가를 낮춰 ha100~205만원의 면적 직불금을 지급한다.

정부는 직불금 지급제한 및 등록제한 등에 대한 기준도 세웠다. 하지만 시행 전부터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지적됐다. 이무진 정책위원장은 공익직불제는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예를 들어 농민이 지켜야할 사항 중 화학비료 사용량이 기준을 초과할 경우 직불금의 10%를 감액하겠다는 내용이 있는데, 문제는 사용량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고 꼬집었다.

직불금 지급 대상 농지선정도 문제가 됐다. 결국 제도가 시행되자마자 일선 현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청주시 한 관계자는 현재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도 이번 공익직불제에 해당하지 않는 농가들이 적잖아서 민원이 증가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정부가 공익직불제의 지급대상이 되는 농지를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 동안 1회 이상 기존 직불금을 받은 농지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령 액수가 적어 직불금을 신청하지 않은 농가들도 여럿이라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예산이 한정된 상황에서 부정수급을 막고, 직불제 개편에 따라 대상 농지가 급격히 느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해명하며 전국적으로 민원이 이어지는 상황이어서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답했다.

 

의무조항 317, 불만고조

 

공익직불제는 그동안 면적중심의 직불제 방식이 전체 농민의 70~80%를 차지하는 소작농을 위한 기본소득 개념으로 추진하는 정책이다. 하지만 시행초기부터 여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면에는 농민들과의 소통부족이 원인으로 꼽힌다. 또한 논란에 대한 해명으로 재원이 부족하다는 답변들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성명을 통해 이번 조치는 사실상 기존 직불금을 통폐합한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예산 24000억원에 맞춰 소농 직불금 대상을 제약해 공익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농민들 사이에서는 실경작자들의 참여 유도와 공익성 확보를 위해 설정한 의무사항이 과도하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정부는 의무사항으로 환경보호, 생태보전, 공동체 활동, 먹거리 안전, 경영체 역량 강화의 5개 분야에서 17개의 내용을 설정했다. 이는 기존 의무사항 3개에서 대폭 늘어난 것으로 이번 조치에서는 조항을 지키지 않을 시에 직불금을 10% 감액하겠다는 의무사항도 포함됐다.

김희상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북지부 관계자는 직불금 중심의 농정 개혁의 핵심은 기존 토건업자나 농기자재업자에게 돌아가던 예산을 농민에게 직접 지급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하지만 농부의 대다수가 고령인 점을 간과했다. 현행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각종 증빙을 하려면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차라리 유럽처럼 일정면적의 농경 자격이 주어지면 행정적 절차는 생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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