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 &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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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 이용수
  • 한덕현
  • 승인 2020.05.2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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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우선,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편견은 확실히 불식된 것 같다. 윤미향과 정의기억연대측이 할머니의 기억력을 문제삼은 발언 때문에도 사실 개인적으론 신천지 이만희 회견의 재판이 되지나 않을까 우려했다. 하지만 괜한 기우였다. 88세 이만희가 횡설수설했다면 92세 이용수 할머니의 메시지는 정말 정확했고 또 분명했다.

굳이 두 사람을 비교한 것은 그들 기자회견의 사회적 성격이나 가치를 의식해서가 아니다. 극도로 노령인 그들이 마이크를 잡고 또 잡을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기가 막혀서다. 이만희와 관련해선 아무리 종교라고는 하지만 그러한 신앙행태가 우리사회에 뿌리깊게 박혀있다는 사실로 인해 기가막혔고,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선 지금까지 알려진 위안부 명예회복운동이 오히려 당사자들을 그토록 서럽고 힘들게 했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기가 막혔다. 할머니 발언의 진위를 떠나 이날 기자회견은 그야말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가슴아픈 순간이었다.

할머니의 발언 중에서도 특히 귀를 자극하는 것들이 있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윤미향은 사리사욕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용만 했다” “한국과 일본은 어차피 이웃이다” “미래의 주인공은 학생들이고 일본과 아베가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어 한국과 일본의 학생들에게 우리들의 역사를 바로 알리고자 내가 나섰다” “일본은 천년이 가든 만년이 가든 위안부 만행에 대해 반드시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 “수요집회를 그만 두자는게 아니라 데모(운동) 방법을 바꾸자는 것이다” “용서라는 것도 무슨 근거와 이유가 있어야지 그냥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기자들은 없는 말 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써달라” “나는 결국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말들을 들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헷갈리게도 윤미향이 아니라 일본과 아베였다. 이날 기자회견에 그들도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고 하는데 할머니의 이런 발언은 구구절절 일본과 아베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고도 남을 만하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진심이 이번처럼 미래지향적인 훈계와 설득으로 표현된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그저 적대적 관점에서만 이 문제가 다뤄져 왔다. 92세 할머니가 부르짖고자 하는 '진실‘과 ‘정의’는 이래서 모골이 송연해진다.

할머니는 끝내 윤미향을 용서하지 않았다. 오히려 검찰수사를 언급하며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고 했다.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윤미향이 반드시 들어야 할 것이 있다. 결국 할머니의 말에선 성금이라는 ‘돈 문제와 국회의원으로 변신하는 인간적 ‘배신’에 대한 감정이 다분히 묻어났다. 기본과 원칙만 지켰으면 아무런 시비가 안 되었을 사안인데도 본인으로 인해 일본에게까지 국가적 체면을 구기게 된 지금의 현실은 어떤 이유에서도 면피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국민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못할 얘기들이 여럿 나왔다. 이날 기자회견 분위기로만 보면 할머니가 진정 윤미향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양의 탈을 쓴 늑대”쯤이 아닐까 생각됐다.

할머니는 이번 사안이 진영논리에 갇히는 걸 경계하며 언론을 향해 진실만을 보도할 것을 여러 차례 주문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참 복잡한 상념들이 떠올랐다. 윤미향은 할머니들을 이용하고 언론은 이에 부화뇌동했다는 것인가? 인간 윤미향의 ‘이중성’이 공공연하게 제기된 만큼 당사자의 분명한 대응이 있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근로 정신대와 위안부를 구분하며 정신대 운동을 하던 사람이 위안부까지 싸잡아서 이용했다는 말에선 많이 당혹스러웠다. 사실 두 단어는 엄밀히 구분되지만 이제까지 국민들은 거의 같은 의미로 받아들였다. 할머니가 한 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이 부분을 지적한 것은 정부나 운동 당사자들도 크게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은 위안부에 대해 끊임없이 자발적인 의사에 따른 것이라고 강변해 왔는데 혹여 이같은 용어의 혼선을 악용한 처사는 아닐까 하는 의문에서다. 할머니는 자신의 경험담을 세세하게 들려주며 두 가지 용어가 섞이는 바람에 생계가 아닌 ‘생명’이 수난당한 자신들의 증언이 지금까지 운동에 제대로 청취되고 반영되지 않았다고도 질타했다.

 

윤미향 파문은 이제 8부 능선을 넘어섰다. 앞으로 남은 건 윤미향 당사자와 정의연대 책임자들이 국민을 이해시키고 해명·설득하는 일밖에 없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시민운동에 대한 국민들의 온정적 감성에 더 이상 기대하지 말기를 바란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들로부터 가장 안타까운 불출마자로 평가받은 표창원은 자신의 불출마 이유에 대해 “의혹을 받는 정부 인사(조국)를 옹호하는 상황이 힘들었다. 어떤 여건에서도 조 전 장관을 지지하고, 논리와 말빨로 지켜주는 도구가 된 느낌이 드니 ‘내 역할은 여기까지’란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진보와 시민운동이라고 해서 인식의 상대적 우위와 도덕성을 인정받는 시대는 지났다. 이미 국민들의 생각은 이런 범주를 벗어나 있다. 차제에 이번 일이 앞으로 시민운동의 기부금 및 성금 처리와 회계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타산지석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아울러 위안부 인권운동같은 시민운동은 피해자 중심주의가 더 존중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윤미향이 과연 이용수 할머니의 주장처럼 이중적인 인간이고 그토록 영악하게 서럽고 불쌍한 위안부 피해자들을 이용했느냐 여부는 분명히 가려져야 할 것이다.

기자회견후 SNS엔 “차라리 윤미향이 아닌 이용수를 국회에 보내자”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그만큼 국민들은 진실을 듣고 싶고 또어떠한 위기에도 자신을 합리화하거나 피하지 않는 용기를 보고 싶은 것이다. 누가 뭐라도 이용수 할머니는 결정적일 때 자신의 안위를 고민하지 않고 용기를 낸 시대의 양심이다.

그 어떤 이유로도 지금까지의 위안부 인권운동이 폄훼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그 과정에는 역사와 정의를 곧추세우려는 수많은 이들의 헌신과 노력이 배어 있다. 이를 안다면 윤미향의 선택은 분명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30년을 같이 해온 피해자 할머니의 절규를 초래했다면 이 것만으로도 그는 이 분야에서 더 이상 설 땅을 잃게 됐다. 이용수 할머니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줄 사람은 첫째가 윤미향이고 두번째가 국민들이다. 누가 이 할머니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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