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갯불에 콩 볶는 ‘우리동네 뉴딜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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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갯불에 콩 볶는 ‘우리동네 뉴딜사업’
  • 권영석 기자
  • 승인 2020.05.2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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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 없던 2억 원짜리 ‘우리동네 뉴딜사업’에 동분서주하는 동네 행정
예산불용=낙오자 분위기, 보도블럭 교체 같은 사업만 반복

지금은 뉴딜사업 전성시대

과부하 걸린 행정복지센터들

도로정비사업을 벌이고 있는 청주시 흥덕구의 한 동네 /육성준 기자
도로정비사업을 벌이고 있는 청주시 흥덕구의 한 동네 /육성준 기자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한창 바쁜 각 동의 행정복지센터(이하 센터)가 때 아닌 2000만원짜리 사업을 찾느라 업무 과부하에 걸렸다. 충북도에서 다급하게 우리마을 뉴딜사업을 하기로 결정해 동마다 예산을 배정하면서 관련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각 동의 센터는 전시상황으로 운영되고 있다. 518일 재난지원금 신청이 시작되고 온라인 신청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일단 센터로 방문하기 때문이다.

상당구의 한 센터 관계자 A씨는 “9, 17시에 사람들이 몰린다. 이 시간에는 늘 돌발 상황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기본 업무를 처리하지 못한다. 결국 내 업무는 18시에 문을 닫고 나서야 처리할 수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A씨를 비롯한 동료 직원들은 최근 2주간 자정이 가까워서야 퇴근했다.

그럼에도 현장의 분위기는 좋은 편이다. 재난지원금 신청은 꼭 필요한 긴급 상황이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최대한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자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우리마을 뉴딜사업으로 인해 센터는 혼란에 빠졌다.

충북도는 514일과 15일 각 주민센터 관계자들에게 우리마을 뉴딜사업에 대한 내용, 예산설정 방법 등을 설명하며 일주일 안에 사업안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내용은 생활밀착형 사업 발굴, 고용창출이 많은 주민숙원사업을 발굴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A씨는 사업계획을 짜려면 우선 수요 파악부터 해야 하는데 우리마을 뉴딜사업은 사전에 논의된 게 아니기에 준비된 내용이 거의 없다. 2억 원이라는 예산 때문에 우리뿐 아니라 주변 동에서도 우왕좌왕하고 있다. 15일 금요일 저녁에 긴급하게 주민자치 임원들에게 연락을 돌려 회의를 소집했다고 말했다.

 

거꾸로 업자에게 물어봐야할 판

 

사업을 찾아야하는 주민들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흥덕구의 한 주민자치위원장은 “2억원을 2000만원 규모의 사업 10개로 쪼개라는데, 예산을 딱 맞추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사업의 취지인 고용창출이 많은 주민숙원사업이란게 도깨비 방망이 두드리듯 뚝딱하고 나오지 않는다. 주민들과 의견을 나누면 우리집 앞에 무언가를 해달라는 내용의 환경개선에 얘기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엔 시간이 촉박하다고 전했다. 주민들의 민원이 폭주하자 충북도는 기한을 6월 중순까지로 연장했다.

그래도 시간은 부족하다. 결국 센터 직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취합된 주민의견을 놓고 현장실사를 벌이고 있다. 흥덕구의 한 센터 관계자는 가뜩이나 재난지원금으로 바쁜데 하루에 2~3곳 실사를 나가야 하니 기본 업무는 아예 마비됐다준비논의가 전혀 안 돼 있어 대상지를 특정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위에서) 돈을 빨리 집행할 수 있는 사업 위주로 선정해달라고 요청해서, 현실적으로는 건설·토목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뭐를 해야 할 지 거꾸로 묻는 실정이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청주시 곳곳에서는 센터 직원, 주민, 업자들이 함께 대상지를 돌며 2000만 원짜리 규모를 맞추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결국 우리동네 뉴딜사업의 이름은 거창하지만 또 그 나물에 그 밥이 될 공산이 크다는 우려들이 쏟아진다. 몇 개 동은 발굴된 안건도 비슷하다. 보행환경정비, 가로등설치, 마을벽화사업은 빠질 수 없는 단골 메뉴들이다.

대표 마을사업이라고 불리는 보행환경정비는 보도블럭을 교체하는 사업이다. 2km정도의 구간에 보도블럭을 들어내고 경계석을 깔면 2000만원에 딱 맞게 예산을 쓸 수 있다. 주민들은 철새처럼 돌아오는 이런 사업을 또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불만이 많다. 청주시의회 감사에서도 매번 관련 내용들에 대한 질타가 계속됐다. 그럼에도 이 사업은 성행할 것이라고 업자들은 전망한다.

 

큰 사업은 그림의 떡

 

흥덕구에 위치한 C건설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동네에 배정하는 가장 손쉬운 예산규모가 2000만원이다. 2000만원 이하면 수의계약 형태로 빠르게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인데 거기에 최적화된 사업이 보도블럭 교체사업이다고 귀띔했다. 그는 최근에는 주민민원으로 가로등 설치, 화단설치, CCTV설치 등도 많이 거론되지만 2000만원 규모에 맞추려면 설치 구간이 짧거나 보이는 효과가 미비하기 때문에 적당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각 동의 센터에서는 2억원을 차라리 한 번에 쓸 수 있게 해달라는 민원도 제기된다. 서원구의 한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우리 관내에는 오래된 공원들이 있어서 개선사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청주시 전체에 소규모 공원개선사업으로 책정된 예산이 2억 남짓이다 보니 매번 뒤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이번 기회에 뉴딜사업 예산을 공원개선 등의 좀 더 큰 규모로 사용할 수 있다면 좀 더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에 청주시의 한 관계자는 민원이 빗발쳐서 관련 논의를 거쳤지만 마땅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오히려 좀 더 작은 규모로 예산을 쓰는 것이 좋겠다는 얘기들도 오갔다고 전했다.

우리마을 뉴딜사업은 당초 지역이 주도해서 도시 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만든다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일환으로 논의됐지만 불과 며칠 사이에 취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처음 계획된 사업방향도 수정이 어려워 보인다.

당장 6월 중순까지 주민들에게 사업을 추천받고 실사를 통해 견적을 내어 담당 구청·시청에 보고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더구나 구·시청에서도 사업을 선정하기에 앞서 실사를 벌이는 등의 조사가 필요하다. 이에 청주시 한 관계자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지 의문이다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사업으로 결국 아까운 세금만 낭비하는 꼴이 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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