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生)과 멸(滅)의 수레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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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과 멸(滅)의 수레바퀴
  • 충청리뷰
  • 승인 2020.05.2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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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天文)의속삭임을 듣다

 

천문(天文)이란 우주와 천체에서 일어나는 온갖 현상이나 그에 내재된 법칙성을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예로부터 인간은 늘 천문을 경외하면서도 그 신비의 법칙을 알아내고자 노력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워낙 광대무변한 경지라서 그 이치를 다 알아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조금이나마 엿본 것이 있다면 삼라만상의 생(生)과 멸(滅)이 모두 영겁(永劫)의 흐름 속에 있다는 것뿐, 그러나 그마저도 아직은 대부분이 물음표이다.

인간은 그 영겁의 질서를 이해하기 위하여 시간의 개념을 만들어냈고, 그것을 분절시켜 시각화하고자 시계를 발명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인간은 시계의 발명으로 어느 정도 시간을 계량화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고는 거기에 생과 멸을 대입시켜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과거를 통하여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가늠하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누가 더 정교하고 정확한 시계를 만드느냐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국가적인 차원으로도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 시계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체코 프라하의 구시가지에 있는 천문시계탑이다. 이 시계는 1490년 하누슈라는 시계공이 제작했다는 것인데, 현재까지 작동하는 시계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정각((09:00~21:00)이 되면 오른쪽(관람자 입장)에 있는 해골이 오른손으로 줄을 당기면서 동시에 왼손으로 모래시계를 뒤집는다. 그러면 두 개의 문이 열리고 각각 6명씩 12사도들이 줄줄이 지나간다. 그리고 황금닭이 한 번 울면 끝이 난다. 채 1분도 안 된다. 실제로 보고 들으니 조금은 허무했다. 어쩜 삶 자체가 그런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게 있었다. 바로 시간의 줄을 당기는 해골이었다. 해골은 죽음이다. 그러니까 시간을 끌고 가는 존재가 다름 아닌 죽음이라는 얘기다. 자못 의미심장한 구성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지극히도 당연한 천문의 이치일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짐짓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깨우치고자 저런 시계탑을 세운 것은 아닐까?

때마침 아침 9시의 황금닭이 운 직후였다. 아침을 먹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배가 고팠다. 멀리 굴뚝빵(굴뚝처럼 생긴 체코의 전통빵. 원명은 뜨르들로)을 파는 상점이 보였다. 굴뚝빵 두 개를 샀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이 굴뚝빵을 먹으며 이승의 굴뚝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 것일까?

뜨르들로(굴뚝빵)
뜨르들로(굴뚝빵)

 

천문(天文)

-천문시계탑

째깍째깍,
예전엔 잘 들리지 않던 소리였다
아니, 애써 외면하던 소리였다
애초부터 달팽이관에 뿌리를 내리고
조금씩, 조금씩 싹을 키워오던
천문(天文)의 속삭임이었다
그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한때 질주의 대명사였던
초원의 치타가 바로 그였다
적도의 태양은 뜨거웠고
사바나의 바람은 비릿했다
그는 빠르고 날렵했다
백 리 지평선을 단숨에 치달아
바위너설에 오줌을 내갈기고는
오늘부터 내 영역의 경계는
여기가 되리라, 송곳니 드러내던
검은 얼룩무늬 전사이기도 했고
배고픈 암컷들이여
내게로 오라, 치기를 부리던
당대 최고의 수컷이기도 했다
그런데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살기 위해 물어뜯었던
그 수많은 생명들이
다름 아닌 자신의 생명이었다는 것
그 나직한 속삭임이 문득 가까워진 것이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이었다 초원의 고요가
날카로운 섬광으로 번뜩인 것은
무지개 비끼는 초원 저 멀리
한 떼의 임팔라가 지나고 있었다
째깍째깍,
도망쳐서 될 일이 아니었다.

/장문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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