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댓말이 어쩌다 이렇게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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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댓말이 어쩌다 이렇게 됐나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0.05.2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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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강희 편집국장

 

요즘 코로나19, 학생들 등교 개학, 정의기억연대와 나눔의 집 등 후원금에 얽힌 문제, 20대 국회 마감과 21대 국회 개원 등 굵직굵직한 일들이 많다. 그런데 이번에는 평소 귀에 거슬리던 것을 지적하려 한다.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1만5000원 나오셨습니다. 주문하신 상품은 품절이십니다. 55사이즈는 없으세요. 네, 맞으세요.”

요즘 사물을 높여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아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카페에 가면 아메리카노가 나오시고, 상점에서는 물건들이 품절되신다. 손님에게 존댓말을 쓴다는 게 그만 사물까지 높여 부른 것이다. 몇 년전 한 프랜차이즈 커피업체는 종이컵 뒷면에 “저희는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넣은 적이 있다. 적절한 지적이라고 생각했다.

한 백화점 직원은 “자켓 55사이즈는 없으시다”고 하더니 손님이 말할 때마다 “네, 맞으세요”라며 맞장구를 쳤다. 듣고 있는 내내 얼마나 불편했는지 모른다. 자켓은 없는 것이고 손님 말이 맞는 것임에도 그렇게 쓸데없이 높여 말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집집마다 방송을 하면서 말미에 “이상 관리사무소에서 안내방송 드렸습니다”라고 한다. 안내방송까지 드린다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안내방송을 하면 했지 그것도 드려야 하나? 이 단어가 귀에 거슬리기 시작하더니 요즘에는 방송 나올 때마다 귀에 콕 박힌다. 과공비례다.

‘전화드리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말씀 주신대로’ 같은 표현도 지나치다. ‘전화하겠습니다’ ‘축하합니다’ ‘말씀 하신대로’라고 쓰면 될 일이다. 또 어떤 사람은 꼭 ‘제가 아시는 분’이라고 한다. 그가 아는 사람을 높이다 못해 나를 높이는 우스운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가하면 ‘당부드린다’와 ‘수고하세요’도 지적하고 싶다. 둘 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써야 적당한 말이지만 요즘에는 위, 아래가 없다. 당부(當付)는 사전에 말로 단단히 부탁함, 또는 그런 부탁이라고 나온다. 단단히 부탁하는 것은 어른이 아이들에게 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그런데 행정기관에서 내놓는 보도자료에는 ‘당부드린다’는 말이 숱하게 나오고, 장관이 국가방침을 발표할 때도 이 표현을 쓴다. ‘당부’라는 단어에 존댓말인 ‘드린다’를 붙이는 것도 참으로 어색하다. 유은혜 교육부장관은 고등학교 3학년 등교수업 발표를 하면서 국민들에게 당부드린다는 표현을 여러 번 썼다. 또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과 이시종 충북도지사도 코로나19 관련 발표를 하면서 국민과 도민들에게 각각 당부를 드린다고 했다.

부하직원이 퇴근하면서 일하고 있는 상사한테 ‘그럼 수고하세요’라고 말한다. 어른이 아랫사람에게 부탁을 한 뒤 ‘그럼 당부하네’ 하는 것이고,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수고하게’라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다. 뭘 이런 것까지 따지느냐고 하겠지만 상당히 거슬린다. 아무데나 높임말을 쓰지 말고 어색한 표현은 삼가는 게 좋지 않겠는가. 국립국어원에서는 온라인상담을 하고 있다. 미심쩍은 단어나 표현이 있으면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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