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보은군수를 저격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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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보은군수를 저격했는가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0.06.03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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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발언+무리한 스포츠타운 건립 등 정상혁 군수의 독단행정 견제
주민소환운동 30표 차로 실패…“군수 갖가지 방해 공작했다"
4월 28일 충북도선관위 정보공개결정 항의방문 기자회견 사진.
4월 28일 충북도선관위 정보공개결정 항의방문 기자회견 사진.

[충청리뷰_박소영 기자] 정상혁 보은군수가 20198월 이장단협의회 워크숍에서 친일옹호망언을 했다. 동영상은 전국 뉴스를 탔다. 이 사건은 주민소환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주민들은 군수 퇴진운동 본부를 9월에 발족하고, 10월 대추축제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본격적인 퇴진운동은 1216일부터 시작됐다.

올해 214일부터 두 달 동안 수임인이 가가호호 방문해 주민소환운동 서명을 받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발품을 팔며 주민소환운동의 취지를 주민들에게 일일이 설명했다. 그렇게 총 4691부의 소환 찬성 서명을 받았다.

이후 515일 보은군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공개열람을 7일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서명을 한 해당당사자들의 이의신청을 받기 위해 열람신청을 한다고 공지했다.

하지만 열람방식은 황당했다. 서명을 한 사람들이 아니라 서명하지 않는 이들이 이른바 확인을 하기 위해 사무실을 찾았다.

이른 아침부터 선관위 사무실엔 보은군 직능단체장 및 사회단체 협의회장, 이장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찬성자 명단은 마을 별로 정리가 돼 있었고, 참석자들은 30분 동안 서명부를 열람했다. 사실상 동네에서 누가 사인을 했는지 솎아내는 작업이었다.

이에 대해 보은군 주민 A씨는 당일 지인들로부터 왜 서명을 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시골에서 살면 이름만 대면 누군지 다 안다. 선관위에서 개인정보를 전혀 보호하지 않았다. 서명을 하고 난 뒤 일터에서 많이 곤란해졌다고 말했다.

당일 주민소환운동 본부 사무실엔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소환운동에 찬성사인을 한 이들이 낙인찍히기를 두려워한 것이다.

김선봉 주민소환운동 집행위원은 “7일간 열람하다보면 개인정보가 다 털리게 된다. 억울했지만 그날 즉시 소환운동을 멈췄다. 힘들게 서명을 해 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내린 조처였다고 설명했다. 또 서명은 30부가 모자라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주민소환운동본부는 아쉽게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들은 군수퇴진운동본부를 꾸리고 새로운 주민운동을 시작하려고 한다.

 

5월 18일 보은군청 기자회견장에서 주민소환 철회 기자회견 사진.
5월 18일 보은군청 기자회견장에서 주민소환 철회 기자회견 사진.

 

군수가 서명인 정보공개 청구를?

 

서명명부공개를 두고도 논란이 일었다. 정상혁 군수가 직접 서명명부를 보겠다고 달려들었다.

정 군수는 올해 2월 선관위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심지어 선관위는 57일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복사해서 주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주민소환운동 본부 측은 법원에 정보공개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주민소환운동본부는 즉각 선관위에 문제제기를 했지만 돌아온 답은 미천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은 군수가 자신을 반대해 서명한 이들을 일일이 확인하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 결국 행정소송을 걸어 정보공개 요구는 중단됐지만 사실상 선관위를 통해 정보가 다 제출된 거와 다를 바 없다. 현 주민소환법에서 열람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서명을 한 당사자가 열람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민소환운동을 하면서 왜 주민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현수막 하나 걸지 못했다

 

주민소환운동을 시작하면서 수임인(서명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70명이었지만 나중엔 10명으로 줄었다. 작은 시골지역인지라 수임인에게 갖가지 압력이 들어왔다. 박옥길 집행위원은 우리나라에서 주민소환이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는 수임인에 대한 법적인 보호장치가 전혀없다는 점이다. 서명을 받으러 다니면서 말도 못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조직적으로 쫓아와 욕을 하거나 큰 소리로 떠들었다. 갖가지 음해를 당했지만 이에 대한 보호조치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힘들게 주민소환운동을 벌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김 위원은 정 군수의 독단행정, 불통행정 때문이다. 친일망언이 있었지만 그동안 3선을 하면서 군수는 가용예산의 일정액을 스포츠 시설을 짓는데 썼다. 보은에 야구장이 2, 축구장이 3개이고 씨름연습장, 야구연습장이 따로 있다. 속리산 꼬부랑 마라톤길, 훈민정음 마당 등을 조성하는 데 막대한 돈이 들어갔다. 보은군을 스포츠 테마 파크로 만들겠다고 하는 데 주민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막대한 스포츠 토목 예산이 집행되는 것을 보고 브레이크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주민소환운동을 하면서 사실 그들은 많이 지쳤다고 고백한다.

군내 현수막 업체가 몇 군데 있다. 주민소환운동을 알리는 현수막 하나를 제작하려고 해도 군수에게 찍힐까봐 해주지 않았다. 청주에 나가 플래카드를 제작했다. 힘들게 제작한 플래카드를 내걸어도 바로 철거됐다. 주민소환운동을 법적으로 알릴 의무가 있다고 했더니 담당 공무원이 군수는 개인에 불과하다며 명예훼손에 해당된다고 했다. 군수가 개인이냐고 따져 물어도 답은 같았다.”

김 위원은 주민소환운동을 하면서 전국의 사례를 참조하고 싶었지만 백서하나 남긴 곳이 없었다. 기운을 차리고 백서를 통해 기록을 남기려고 한다. 소환운동을 하기 전 몇 달을 할지 말지를 두고 토론했다. 살아있는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절감했지만 더 이상 묵인할 수는 없었다. 일단 이 같은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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