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심천 로맨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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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무심천 로맨스(2)
  • 충청리뷰
  • 승인 2020.06.0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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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용 저조한 무심천, 아침부터 밤까지 북적이게 하는 방법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는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의 저서이다. 그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사회적 인프라’에서 찾는다. 사회적 인프라는 사람을 모이게 하고, 안전하게 하며, 함께 배우고 경험하게 함으로써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는 공동의 발판이 된다. 그리고 자연재해나 전염병 같은 실존적 위협에서 삶을 지탱하는 데도 필요하다.

# 친밀한 공간의 친밀한 시간
도시의 불평등과 고립에 대한 ‘사회적 접착제(social glue)’로서 사회적 인프라는 사람들이 마치 집처럼 편안해하는 안락하고 친밀한 공공장소다. 도시의 많은 곳이 친밀한 공공장소가 된다. 도서관, 학교, 놀이터, 공원, 체육시설, 수영장, 보도, 쉼터, 텃밭. 이 뿐 아니라 시장, 카페, 식당, 서점 등 편하게 들러 시간을 보내는 상업 시설도 좋은 예다.

 

다시 무심천으로 가보자. 무심천은 사람들을 초대한다. 광고 없이도 사람들이 모인다. 나와 당신이 그 곳에서 단지 마주친다고 지속적인 관계로 발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서로의 차이와 다양성을 경험하고, 다른 이들의 필요에 대처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울고 있는 꼬마 아이를 일으켜 주는 사람은 나 일수도 있고, 당신일 수도 있다.

이것이 제인 제이콥스가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말한 ‘길 위의 눈(eyes on the street)’이다. 범죄나 위험을 감시하는 눈인 CCTV와 달리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에는 타인의 위험에 직접 손을 내밀거나 구조 요청을 대신 해주는 응시와 친밀의 시선이 교차함으로써 더 안전하고, 더 오래 머무르게 만드는 활력소가 있다. 그렇다면 무심천이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더 다양한 활동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코로나 이후 이동성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해외여행은 물론이며, 장거리 여행도 쉽지 않다. 집 외에 안심하고 갈 수 있는 곳은 공원이다. 거의 유일하다. 그러나 사회적 계층에 따라 자연과 놀이공간 접근성에서 상당한 격차가 발생한다. 저소득층 가구는 인근에 공원이나 놀이터가 없는 지역에 거주한다.

# 코로나 시대, 무심천 로망
무심천은 남에서 북으로 흐르며 여러 지역을 관통한다. 녹지에 대한 평등한 접근권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공간이다. 그러나 활용이 저조하다. 주변 공간과 연계도 미흡하다. 커다란 나무 그늘이 없는 낮의 무심천엔 햇빛만 고인다. 해가 저물 즈음에야 산책하거나, 운동하거나, 잠시 쉬려는 사람들이 모인다.

무심천을 아침부터 밤까지 사람들로 북적이게 하기 위한 답은 이미 위에 있다. 우선은 커다란 나무 그늘을 만들자. 도시숲이면 어떨까. 그리고 친밀한 공공공간인 도서관, (학교는 이미 있다) 놀이터, 공원, 체육시설, 수영장, 쉼터, 텃밭, 시장, 카페, 식당, 서점 등을 무심천 주변에 만들면 된다. 아침에는 학교 가는 학생들, 도시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 수영장에 가려는 사람들이 무심천에서 마주치고 카페, 서점에 가는 사람들이 한가로운 정오의 시간을, 그리고 레스토랑, 체육시설, 도서관, 시장에 가는 사람들이 저녁의 무심천에 활기를 넣을 것이다.

오사카의 덴노지 공원은 공원 재생의 좋은 사례다. 1909년 개관한 유서 깊은 이 공원은 2015년 근린시설 도입을 시도했다. 지하철과 연결되는 공원 입구에 카페, 레스토랑, 유스호스텔과 인포메이션 센터, 풋살 코트, 애완샵, 야구장, 슈퍼 등을 조성했다. 공원 옆에는 덴노지 동물원, 오사카시립미술관 등이 있다. 덕분에 어린 아이부터 노인과 관광객까지 다양한 계층과 연령의 사람들을 불러 모으며, 하루종일 북적인다.

공원 옆의 높이 300m(60층) 초고층의 아베노 하루카스는 덴노지 공원과 조화롭게 대비되며 랜드마크가 되었다. 역세권 주변의 상권 재활성화 사업을 추진한 아베노 하루카스는 덴노지 역세권과 결합한 마천루로 주거 기능 외에 백화점, 오피스, 미술관, 호텔, 전망대 시설 등을 도입했다.

# 마지막 보루
청주시는 무심천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해왔기 때문에 무심천을 둘러싼 원도심의 거의 모든 지역이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에 재개발 붐이 거칠게 일던 시절의 일이다. 2011년 정비구역 지정 이후 진척이 잘 안되고 사직4구역, 정비예정구역이 해제된 서문, 남주·남문구역이 무심천의 마지막 보루다. 정부와 지자체는 사업이 보류중이거나 해제된 지역에 대해 소규모 사업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용적률·주차장 확보 기준·공원 및 녹지 설치기준 등을 완화하고 있다.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일까?

사직4구역은 상업지역으로 건폐율 80%, 720%의 용적률을 보장받는다. 초고층을 피할 수 없다면 무심천과 이어지는 거대한 공원과 함께 다양한 녹지공간으로 옥상정원까지 연결하어 공공에 개방하는 건 어떨까? 풍부한 녹지는 초고층의 위화감을 완화하고, 공간의 매력도를 높일 것이다. 공원 부지는 기부채납하는 대신 시민이 직접 조성하면 어떨까?

시민이 직접 만드는 ‘시민의 숲’. 내가 기부한 나무를 직접 심고, 내 이름이 달린 나무 명패를 달고, 나무 아래 벤치를 놓아 모두를 초대할 수 있다면. 초고층 아파트 단지 대신 주거기능과 함께 오피스, 근사한 부티끄 호텔, 리테일샵, 어린이 미술관 등의 문화시설이 복합적으로 도입될 수 있다면. 사람이 북적이면 임차료가 오를 테지만 그것만으로 정비사업을 추진했던 시행사를 솔깃하게 만들 수는 없겠지. 로망을 이루기 위해, 나는 당신과 당신의 로망이 필요하다.

/ 이정민 청주시 도시계획상임기획단 주무관

*이 글은 청주시의 입장과 무관한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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