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08-03 19:39 (월)
화분을 받아들고 한 생각
상태바
화분을 받아들고 한 생각
  • 충청리뷰
  • 승인 2020.06.10 0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승표 길동무작은도서관장
홍승표 길동무작은도서관장

 

지난 금요일, 6월5일은 세계환경의 날이었다. 이날 나는 작은 화분을 하나 받았다. 환경의 날을 맞이하여 한 생협이 주관한 행사에서 받은 화분이다. 이 화분은 회원들에게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고자 만든 것으로, 오늘날 심각한 환경 문제 가운데 하나인 플라스틱 쓰레기와 비닐 쓰레기를 모아서 혼합플라스틱 화분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쓰레기 320g이면 작은 화분 하나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것이 얼마나 환경에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얼마나 호응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꾸준히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는 폐비닐과 폐플라스틱을 가지고 화분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신선한 발상이었기에 그 화분을 받았을 때 나는 작은 설렘마저 느꼈다.

시골에서 살다가 청주로 이사를 나온 것이 14년 전이다. 시골 생활을 하다가 도시로 나오니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적응이 안 되는 일이 쓰레기 처리 문제였다. 일상에서 계속 쓰레기들이 나오는데 그걸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밖에 내 놓을 때마다 영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내가 내놓는 이 쓰레기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내 눈에서는 사라지지만 분명 이 땅 어딘가에다 묻어버리든지 태울 것이다. 그러면 땅을 오염시키거나 공기를 오염시키게 된다.

물론 시골살이라고 환경오염에서 자유로웠던 건 아니다. 어쩌면 더욱 무심하게 쓰고 버리고 태우면서 지구를 오염시켰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그 일을 내가 처리했다. 거름을 만들든지 아니면 땅에 묻든지 그도 아니면 태우든지 하는 일이 내 눈에 보인다는 말이다. 하지만 도시에 나와 살아보니 그렇지 않았다. 지자체가 인정한 봉투를 사서 거기에 쓰레기를 넣고 집밖에 내놓기만 하면 다음날 아침 깨끗하게 쓰레기가 처리되었다.

플라스틱이나 깡통, 빈병들은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돈도 들지 않는다. 그냥 분리해서 담아 내 놓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들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처리되는지 나는 과정을 보지 못한다. 일부는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다가 사용할 것이고 대부분은 어떤 청소 공무원이 가져갈 것이다. 그리고 끝이다. 바쁘고 복잡한 내 일상생활로 돌아오는 것이다.

사실 인류가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일 것이다. 1972년 6월 스웨덴에서 열린 유엔환경회의에서 고통 받는 지구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5일을 세계 환경의 날로 제정하였고 매해 새로운 주제를 정해 활동해 오고 있다. 이 흐름을 이어받아 1996년에는 우리나라도 이 날 6월 5일을 환경의 날로 정했다. 하지만 전문가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들이 대부분이었고 시민의 생활 속으로 파고드는 데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을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느낌들은 지구환경의 현실을 보여주는 결과를 통해서도 실제로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5월 6일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가 발표한 ‘지구평가보고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100만종에 가까운 동식물이 멸종해 가고 있으며, 육지자원의 3/4이 사라졌고, 바다환경의 2/3가 훼손됐다. 뿐만 아니라 담수자원의 3/4이 고갈되거나 더러워져서 사용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시민의 생활 영역으로 파고드는 환경운동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화분 하나 만드는 일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며 의미 없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 당장 좋은 결과가 아니라도 환경을 살리기 위해 시민들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을 시도해 보는 것은 국가의 정책이라는 부문과 함께 아주 중요한 영역이다.

나는 환경의 날에 받은 혼합 플라스틱 화분에 정성껏 물을 주며 그 속에서 씨앗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무작정 새로운 무엇을 너무 많이 만드는 데 힘을 쏟기보다는 오히려 필요 없는 것들을 덜어내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그것들을 정성껏 잘 가꾸는데서 희망을 찾아야 하리라. 동양의 성인 노자는 이미 21세기를 내다보셨던 것일까. 이렇게 말씀하신 걸 보면. 위도일손(爲道日損), 참된 길은 날마다 덜어내는 데 있다.

충청리뷰를 응원해주세요.
'올곧은 말 결고운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