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 여 ·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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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여 · 정
  • 한덕현
  • 승인 2020.06.1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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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김여정이 남한과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막말을 퍼부었다는 뉴스가 전해질 때마다 정작 궁금한 것은 그의 실제 육성이다. 이런 험한 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의 그 표정과 분위기를 직접 보고싶은 것이다. 한 사람의 이미지가 역할과 상황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나를 직접 목격하고 싶은 욕심에서다.

사실 김여정의 목소리가 우리 언론에 제대로 보도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남북관계가 가장 훈풍을 타던 평창동계올림픽과 남북정상회담 때도 그의 말은 묵음으로 처리되기 일쑤였다. 그러니 나름 신비주의를 활용한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한 케이스다.

남한에서 김여정 팬클럽이 생기니 마니 하는 말들이 나돌 때만 해도 그의 인상은 묘한 매력(?)을 발산했다. 미모가 뛰어나지도, 그렇다고 이목구비가 균형잡힌 것도 아닌데 말이다. 북한 노동신문 등을 통해 간접 전해지는 그의 담화가 아닌 실제 육성이 궁금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남쪽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적 남북관계의 양념역할로 인식된 그의 ‘실체’가 과연 어떤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김정은 김여정 남매가 똑같이 30세를 전후로 정치적 두각을 나타냈다는 점에서도 참 흥미롭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여정이 갑자기 ‘쎈 여자’로 돌변한 것에 분명한 까닭을 달고 있다. 건강 악화설에 시달리는 김정은이 후계체제 구축에 가속도를 붙였다는 얘기부터 철의 여인 이미지를 부각시켜 명실상부한 제2인자임을 대내외에 알리려 한다는 설까지 다양하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 김여정의 잦은 쇳소리에 장단을 맞춰 우리나라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내보내는 그의 사진, 눈꼬리를 위로 치켜세운 모습은 충분히 이런 이미지를 부각시키고도 남는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오빠 김정은에 바짝 붙어 잔일을 수발하던 지금까지의 외양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이유야 어떻든 김여정이 남한인들에게 호감을 줬던 것은 그가 경직된 북한 인사들한테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인간적인’ 면을 우리에게 어필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론이다. 이를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의 페르소나(persona) 이론으로 굳이 해석한다면 김정은은 국가와 사회에서 요구하는 덕목, 의무로 인해 자신의 본성 위에 덧씌워져 다른 사람에게 투사되는 ‘외적 인격’ 또는 ‘가면 인격’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면 김여정은 그러한 오빠를 오로지 혈육이라는 정성으로 보살피는 인간의 본연 즉 ‘본성의 인격’으로 행동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어쨌든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27세 어린 나이에 권좌에 오름으로써 이후 그의 행동(말투, 걸음걸이, 표정 등이 모두 해당)은 늘 과장되고 어느 땐 극히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을 수가 없었다. 세계의 패권구조와 북한 내부의 정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조바심의 발로였겠지만 이러한 오빠를 지근거리에서 보필하고 챙겨주는 김여정은 우리에게 권력의 살벌함보다는 인간적인 감성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최근 일련의 김여정 강경발언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을 종합하면 그가 남쪽을 상대하는 과업의 중심에 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앞으로 대남사업의 전권을 쥐었다고도 한다. 그 것이 김정은과의 내치, 외치 역할분담이든 혹은 후계자가 되기 위한 사전포석이든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좀 더 진전된 남북대화의 가능성 여부다. 김여정을 네 번이나 만났다는 박지원은 그녀에 대해 자기말을 분명히 하는 똑순이, 머리가 영민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웠다.

현재의 북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런 바람은 있다. 우선 북한이 절대로 군사적, 공격적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과거처럼 군사적 도발을 감행한다면 우리로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응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뉴시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뉴시스

 

지금 국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어떻게든 남북관계를 회복하려고 북한에 저자세로 나오는 문재인 정부의 좌고우면이 아니라, 북한의 도발에는 몇배로 응징하겠다고 기껏 호언장담고선 막상 연평도 포격을 당하자 확전을 두려워 하며 전전긍긍 말폭탄만 쏘아댄 굴욕적인 MB의 데자뷰다. 강토가 침공당한 그런 상황이라면 앞뒤를 따질 게 아니라 가차없이 보복의 응징을 가해야 대한민국이 진정 주권국가로서 인정받는다. 전쟁의 억제는 우리의 힘에서만 가능한 것이지 누구의 선처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문재인 정권은 꼭 이랬으면 한다.

남과 북의 체제가 워낙 상극인데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남북, 북미간 정상회담에도 좀처럼 돌파구가 열리지 않자 최근 회자되는 말중에 ‘어물어물 통일론’이라는 게 있다. 백낙청이 처음 주창한 것으로, 어차피 남북이 체제단일화나 상호흡수의 통일을 하기가 쉽지 않다면 서로 실질적인 교류를 통해 신리를 쌓고 이를 토대로 통일 전과 통일 후의 경계가 불분명한 어물어물 통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상생이 가능한 정서적 통합을 이루는 게 바람직하다는 논리다.

어떤 계기가 되든 상호 교류만큼 남북한의 간극을 가시적으로 줄여주는 건 없다. 지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년동안 금강산에서 통일마라톤을 개최한 충청리뷰 직원들과 참가자들이 뼈저리게 절감한 것도 바로 이거다. 대회 첫 회와 마지막 5회 째를 비교하면 남한에 대한 북한인들의 인식변화는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다. 오랜 시간 갈라져 있었기에 한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기란 결코 어려운 게 아니라 한 순간에도 가능하다는 확신이 섰다. 남북관계의 가장 효과적 숨통을 틔운 DJ의 햇볕정책을 실체적 사실로써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의 경험을 살려 2018년 문재인-김정은의 정상회담에 고무되어 금강산 통일마라톤의 재개를 준비했지만 아직 성사시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하여, 비록 귀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거친 말로써 남쪽에 대해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는 김여정의 갑작스런 변신이 한 때 좋았던 그의 이미지와 맞물려 다시 남북관계를 회복시키는 터닝포인트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북한의 구호처럼 “우리끼리 잘 살자”를 같이 외치자는 것이다. 더 이상 미국의 눈치를 보는 건 이젠 지겹다.

분명한 사실은 북한의 세습권력은 절대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 이를 안다면 유럽에서 유학한 김정은 김여정은 필연적으로 자기세대에서 한반도의 통일 내지 분단 종식에 대한 답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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