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척하는 놈’은 사실 우리들의 모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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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센 척하는 놈’은 사실 우리들의 모습이에요”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0.06.17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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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읍 진천소방서 맞은편 쇼핑몰에 세워진 4m 조형물
이재룡 건물주, 김원근 작가 작품 보고 반해 설치…관광 명소돼
작품 앞에 선 이재룡 대표(왼쪽)와 김원근 작가.
작품 앞에 선 이재룡 대표(왼쪽)와 김원근 작가.

 

충북 진천군 진천읍 진천소방서 맞은편 쇼핑몰 앞길에 세워진 조형물 ‘힘센 척하는 놈’은 사람들의 눈을 단박에 사로잡는다. 꽃무늬 팬티를 입은 살집이 많은 아저씨 모습의 대형 조형물은 파란색 글러브를 단정히 끼고 있다. “한 판 붙자”고 말을 건네는 것 같은데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오히려 동네아저씨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진천 쇼핑몰 ‘주로’의 대표이자 주식회사 고인돌을 운영하고 있는 이재룡 씨(59)는 지난해 5월 5일 이 작품을 우연히 만났다. 김원근 작가의 이 작품은 경기도 양평군 37번 국도변 작업장에 세워져 있었다.

이 대표는 “자동차로 경기도 양평에서 여주 사이 남한강변을 따라 가는 데 우연히 맞은편 차량의 운전자들이 특정한 사물을 보는 게 느껴졌다. 알고 보니 김원근 작가의 커다란 조형물을 보고 다들 신기해 하는 것이었다. 바로 차를 돌리니 작가는 없고 개인작업장에 오래된 우편물만 놓여 있었다”고 말했다.

작가 직접 수소문해
“꽂히면 무조건 해야 하는 성격”이라는 이 대표는 그 날부터 작가를 수소문했다. “당장 양평군청에 전화를 해보니 잘 모른다고 했다. 겨우 서울 종로구 팔판동 ‘갤러리 진선’의 소속작가라는 것을 알아냈다. 작가를 직접 만나기 위해 얼마 후 열린 코엑스 전시회를 일부러 찾아갔다.”

양평 작업실에 세워진 작품 ‘복서’는 얼마 전 진천으로 이동했다. 트럭을 타고 작품이 이동하는 장면.
양평 작업실에 세워진 작품 ‘복서’는 얼마 전 진천으로 이동했다. 트럭을 타고 작품이 이동하는 장면.

 

이후 작가의 작품을 산 이 대표는 6월 8일 자신의 건물 앞에 조형물을 설치했다. 원래 작품 제목은 ‘복서’였지만 작가에게 양해를 구해 ‘힘센 척하는 놈’으로 바꾸었다. 높이가 3.8m에 달하는 조형물 때문에 벌써부터 진천 시내가 들썩거린다. 특수콘크리트 재질의 작품 무게는 자그마치 4톤이나 된다.

작품은 포토존으로 인기만점이다. 이 대표는 “앞으로 소셜마케팅을 벌여 더 많은 이들에게 작품을 알릴 계획이다. 진천에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지 않나. 진천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고 함께 누리면 좋겠다”고 설치의도를 밝혔다.

작품이 설치된 진천군 진천읍 진천소방서 맞은편 쇼핑몰 앞길 모습.
작품이 설치된 진천군 진천읍 진천소방서 맞은편 쇼핑몰 앞길 모습.

 

김원근 작가(50)는 충북 보은이 고향이다. 원광대를 졸업한 그는 사실 충북에서는 작품활동을 하지 않아 그의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김 작가는 “고향 근처에 작품을 전시할 수 있다는 게 정말 기쁘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그냥 좀 못생겨도, 못나도 괜찮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화려하고 빛나는 복서가 아니라 뭔가 부족한 모습의 인물이다. 나 자신을 닮은 캐릭터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응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몇 해 전 청주 안덕벌 마을미술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꽃을 든 남자의 모습을 조형물로 만들어 안덕벌에 설치했다. 그는 “안덕벌에 가슴아픈 사연을 가진 이들이 많다. 남편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었다. 이곳에 살던 여인들에게 꽃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형물 ‘힘센 척하는 놈’은 2015년에 제작했다. 5년 만에 진천으로 이사를 온 셈이다. 작가는 페인팅작업으로 정성스럽게 새옷을 입혔다.

김 작가는 “어려운 시기 모두가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팬티에 모란모양을 그린 것도, 글러브를 파란색으로 칠한 것도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일반 시민들이 작품을 보고 좋아해준다고 하니 정말 감사하다. 앞으로도 지역에서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금보성아트센터로부터 ‘2019년 올해의 창작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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