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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우륵 노닐던 탄금대와 사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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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우륵 노닐던 탄금대와 사휴정
  • 충청리뷰
  • 승인 2020.06.2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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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우륵이 신라에 투항한 후 만년 보내 유적 많아

 

우륵은 가야 사람으로 우리나라의 3대 악성 중 한 분이다. 거문고의 명인 고구려의 왕산악, 악서의 편찬과 아악의 정비를 통해 조선 예악 구현에 큰 업적을 이룬 박연과 더불어 음악의 성인으로 일컬어진다.
이 가운데 우륵 선생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확인되는 곳은 경북 고령과 충주를 중심으로 한 충북의 북부지역이다. 대가야의 중심지였던 고령지방에는 우륵이 가실왕과 함께 12현금(絃琴:가야금)을 만들고 연주용으로 12곡을 지었다고 하는 활동무대였던 만큼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그 흔적으로는 우륵박물관을 비롯하여 우륵기념탑, 영정각 등이 있고, 가야금 소리가 울렸다는 정정골이 현존한다.

제천 청풍도 우륵과 인연 있어
충북의 북부지역에서 우륵의 흔적이 비교적 많이 남아있어 주목을 받는 곳은 충주와 제천이다. 충주지역은 가야의 예인 우륵이 신라에 투항한 후, 만년을 보낸 인연의 땅이라 하여 관련 유적이 많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우륵이 신라에 투항한 후 제자 이문(泥文)과 함께 낭성(娘城) 하림궁(河臨宮)을 찾은 진흥왕 앞에서 새 곡을 지어 연주하였다고 한다.

우륵과 진흥왕이 탄금대에서 만나는 장면을 그린 중원문화역사인물기록화
우륵과 진흥왕이 탄금대에서 만나는 장면을 그린 중원문화역사인물기록화

 

우륵의 음악에 감동한 진흥왕의 배려로 이곳에 눌러 살며, 대내마 계고(階古)와 법지(法知), 그리고 대사 만덕(萬德) 등 세 사람을 제자로 삼아 각각 가야금·노래·춤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때 우륵의 나이는 분명치 않으나, 진흥왕은 왕위에 재위한지 12년이 되는 해이다. 진흥왕은 7세에 왕이 되었으니 19세였고, 서기 551년의 일이다.

그래서 충주에는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였다는 탄금대와 탄금대토성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진흥왕이 머물렀다는 하림궁이라는 것이다. 탄금대가 한강에 접하고 있는 만큼 물 가까이 있었기에 왕이 순행하여 우륵의 음악을 접했던 곳이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가야금을 탄주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청금대와 금휴포 등도 가얏고와 관련된 지명이다. 이에 충주에서는 매년 우륵문화제를 거행하는데 벌써 50회가 넘었고, 대통령상에 빛나는 전국가야금 경연대회도 개최하고 있다.

또 제천지역에서도 최근 우륵과 관련된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제천의 자랑 의림지를 우륵선생이 축조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속에 남아있던 우륵정(于勒亭)을 복원하였고, 우륵대, 연암, 우륵의 우물 등을 정비하였다. 여기에 청풍문화재단지 내에 있는 물태리 산성에는 ‘우륵탄강지지(于勒誕降之址)’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이것은 우륵이 제천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에 근거를 둔 것이다. 우륵은 성열현(省熱縣) 출신이라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성열현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여 비슷한 지명을 찾았다. 청풍의 옛 이름인 사열이현(沙熱伊縣)임에 주목하여, 성열현과 사열이현이 같은 곳이라 비정한 것이다. 이렇게 해석한 이가 바로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를 쓴 단재 신채호와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를 쓴 다산 정약용 선생이기에 주목된다.

의림지에 복원된우륵정
의림지에 복원된우륵정

 

이러한 논리는 우륵이 태어난 곳과 활동한 지역이 가야의 영역이어야 하는 것인데, 청풍은 가야의 영역이 아니었기에 그동안 주목받지 못하였다. 출생지와 활동지가 달라도 문제가 없다면 제천 청풍이 우륵이 태어난 고장이 되는 일은 매력적인 일일 것이다. 청풍에서는 ‘우륵계(于勒契)’가 구성되어 활동했다는 계문서가 발견되어 주목받기도 하였다. 이를 구체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제천의 내제문화연구회에서는 『임나왜곡사(任那歪曲史)』 1~4권을 발간하고, 청풍 성열현인 우륵을 입증하기 위해 크게 노력하고 있다.

지금은 비록 충주댐에 의해 수몰되긴 하였지만 우륵의 탄생지가 제천 청풍이고, 만년을 보낸 장소가 충주라면 충북의 북부지역에 또 다른 문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탄금호에 유람선이 뜨면
다행히 최근 충주에서는 예성문화연구회원들에 의해 우륵 선생이 노닐었다는 사휴정(四休亭)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조선환여승람》에 사휴정에 대해 “옛적에 우륵 악사가 이 네 곳에서 쉬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라 기록하였는데, 이곳이 어딘지를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물론 사휴정이 특정한 한 곳만을 가리키는지, 4곳에 있던 정자 모두를 칭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오히려 정자가 아닌 명소를 말하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지만 나름 그 위치와 이름을 살펴본 것이다.

경북 고령에 있는우륵기념탑
경북 고령에 있는우륵기념탑

 

다산 정약용의 시에도 사휴정이 언급되고 있다. 다산의 사휴정(四休亭)은 형(약현, 약전)과 형수가 살았고, 아버지와 조상들의 묘소가 있던 금가면 하담을 지적하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조선환여승람》에는 정확하게 사휴정을 “가금면 누암이 1휴이며, 금가면 옥강정이 2휴이고, 하소가 3휴이며, 엄정면 목계를 4휴라 한다. 모두 산을 등지고, 강에 임하여 경치가 빼어나므로 빈번히 올라가 본다”라고 하였다.

조사결과 누암에는 청금정(聽琴亭), 금가에는 옥강정(玉江亭), 하소 사휴봉 위에 지금도 남아있는 모현정(慕賢亭), 목계의 창랑정(滄浪亭) 등 4곳의 정자를 말하는 것이고, 우륵이 노닐던 풍광 좋은 절경을 지칭하는 것이라 확인하였다.

탄금호에 유람선을 띄워 관광자원화 하려는 노력에 사휴정의 존재는 그 복원을 통하여 또 다른 가능성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한강을 유람하며 사휴정을 바라보기도 하고, 잠시 그곳에 올라 따듯한 차 한 잔 나누며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악성 우륵이 되는 꿈을 꾸고 싶다.

/ 길경택 사단법인 예성문화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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