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 먹은 들풀이 주는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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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 먹은 들풀이 주는 에너지
  • 충북인뉴스
  • 승인 2006.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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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 아 (도예작가)
   
‘난 참 비가 좋다.’
언제부터인가 처음 이곳(시골)으로 이사 온 후부터 나는 느리게 돌아가는 시간 속에서 산책을 즐겼고, 이 산, 저 들판, 논뚝으로 걸어 다니면서 내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들풀이었다. 그건 처음 보는 6월의 푸름이었고 아주 작고 여린 들풀은 마냥 예쁘고 아름답게만 보였다.

이곳 사람들은 풀이 많아진다고 약을 뿌리라 하고 뽑아 버리라고도 했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풍성해 보이는 들풀이 참 좋았다. 때로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을 어른들의 성화에 못이겨 뽑아 버리기도 했지만, 들풀은 역시 사람 맘대로 안되나 보다. 이 풀들은 뽑아도, 뽑아도 다시 나타나 온 마당을 가득 채웠다.

특히 비만 오면 다시 솟아나는 것을 보면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또한 내가 도시에서 살면서 느끼지 못했던 것 중에 하나는 바로 비다.

도시에서 생활했을 때의 비는 그저 생활의 불편함을 주는 존재, 다소 번거롭고 나의 활동을 방해하는 거추장스러운 것쯤으로 생각했다. 비는 교통체증을 야기시키고, 옷을 젖게 만들고 , 결과적으로 나의 활동 범위를 축소시켰다. 지금보니 난 비에 대한 안좋은 이미지가 강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생활은 비를 종종 맞았고 옷이 젖어도 그냥 맞았고, 신나게 걸어 다녔다. 그런 비와 들풀로 인해 나의 감성도 충분히 젖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느리게 돌아가는 이곳의 생활에서 비는 나의 감성을 깨우는 중요한 매개체였던 셈이다.
나는 작업실 마당에서 봄부터 겨울까지 들풀들이 쉼없이 솟아나는 것을 보았다. 그 풀들을 보면서 어떻게 끊임없이 땅에서 올라올까 의구심을 갖기도 했다.

그 여린 잎들이 땅을 헤집고 나오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밤 새 비가 오고 난 후엔 어김없이 한 뼘은 족히 돋아난 들풀을 보면서 나는 나를 압도하는 강한 에너지를 느꼈다. 빗물에 젖어있는 들풀도 아름다웠지만, 그 이름모를 들풀 이파리에 가득찬 생기가 보았다.

그건 에너지였다.
그리고 난 도자기에 들풀을 그려 넣기를 시작했다.
그 강한 에너지를 비와 들풀로 담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항아리 앞에 분을 바르고 손가락으로 들풀과 빗물을 그려 넣으면 금 새 항아리는 들풀이 만발한 ‘들풀 항아리’로 변한다.

그 빗물이 가득한 들풀의 그림이 나의 분청 항아리 앞에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 마치 자연의 에너지가 내 항아리 속으로 녹아져 들어오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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