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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립도서관 어떻게 직지를 소장하게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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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립도서관 어떻게 직지를 소장하게 됐나
  • 충청리뷰
  • 승인 2020.07.1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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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시가 가져가 경매장에서 처분, 수집가 앙리 베베르 사후 기증

 

직지는 어디에 소장되어 있을까 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프랑스 국립박물관 또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그러면 필자는 직지는 책이니까 책을 보관하고 있는 곳은 도서관이라고 알려 주면 쉽게 이해하고 기억하게 된다. 직지는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1377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한 직지를 어떻게 소장하게 되었을까?

경매장에 나온 직지, 앙리 베베르가 구입
직지는 19세기 말에 주한프랑스공사였던 꼴랭 드 플랑시가 조선에 근무하면서 수집하여 프랑스로 가져가 1900년에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때 한국관에 전시하였다. 그리고 다음해 모리스 꾸랑은 박람회가 끝나고 조선서지 부록편을 출판하였는데, 3738번에 직지를 소개하였다. 이것이 직지에 대한 첫 번째 연구였다.

플랑시는 외교관을 은퇴하고, 1911년 3월 27일부터 4일에 걸쳐 본인이 소장하고 있던 자료 883종을 두르오경매장에서 경매로 처분하였다. 한국 자료가 무려 700여 종에 이른다. 711번부터 787번까지는 한국 고서였는데, 모두 조선서지 보유판에 수록되어 있는 것들이었다. 그 외에도 판화, 지도, 초상화와 향로, 식기, 칠기, 자개, 보석, 부채, 병풍, 비단, 가구 등 다양하였으며 동전 2,500개도 포함되어 있었다.

경매할 때 물품들은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일련번호를 견출지에 써서 부착하였다. 직지는 고서 가운데 제일 앞선 711번이었다. 현재도 직지에는 711의 견출지가 책 표지 상단에 붙어 있다. 플랑시는 경매할 때 카탈로그를 만들었는데, 서문에 “구텐베르크가 유럽에 그의 경이로운 발명을 주기 훨씬 전에 한국이 금속 인쇄술을 알고 있었다”고 홍보하였다.

앙리 베베르와 부인
앙리 베베르와 부인

 

특히 711번 직지는 “백운 승려에 의해 수집된 조사들의 법어로 1377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이라고 상세히 소개하였다. 경매품 가운데 대부분의 책들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구입하였으나, 직지는 앙리 베베르가 180프랑에 구입하였다. 이 외에도 베베르는 11종을 더 구입하고 총 2,618프랑을 사용했다. 직지의 간지 중간 부분에는 베베르의 장서표가 붙어 있다. 파란색 펜글씨로 1911~1943이라고 적혀 있다. 이것으로 보아 베베르가 직지를 소장하고 있었던 기간은 1911년부터 1943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앙리 베베르는 프랑스 메츠의 보석상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보석회사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예술품 수집가로서 유럽, 아시아, 그리고 이슬람 예술품들을 많이 수집하였다. 보석상, 예술품 수집가, 작가로서 20세기 예술사에 많은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1940년에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하게 되자 자신의 소장품들을 지하실에 보관하고 출입구를 봉쇄하였다. 그리고 그 위를 카펫으로 덮고 미국으로 망명한다. 베베르의 집은 독일군이 사무실로 사용할 정도로 큰 저택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와 보니 다행히도 지하 창고에 보관하였던 소장품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를 프랑스 국립도서관장이 세 번씩이나 찾아와 기증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베베르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기증해 줄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하지만 사람은 한번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 법, 그는 1943년에 병으로 미국에서 세상을 뜨면서 직지와 육조법보단경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긴다. 베베르가 사망하고, 그가 소장했던 자료들은 상속자에 의해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판매되어 귀중한 컬렉션이 되었다.

자칫했으면 직지 미국에 있었을 것
직지는 베베르의 유언에 따라 상속자인 마탱이 1950년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하였다. 이에 도서관에서는 1952년 11월 22일에 한국 책 109번(COREEN 109)으로 등록하였다. 직지의 기증번호는 9832번이다. 육조법보단경도 함께 기증되어 직지에 이어 한국 책 110번으로 등록하였으며, 기증번호는 9833번이다. 만약 프랑스 국립도서관장의 간절한 기증 요청과 베베르의 결단이 없었다면 아마도 오늘날 우리는 직지를 만나보기 위해 미국으로 가야 했을 것이다.

앙리 베베르의 저택
앙리 베베르의 저택

 

플랑시는 직지를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 아주 중요한 책으로 전시하였다. 꾸랑의 조선서지 부록편에도 자세히 소개되었다. 특히 경매 당시 제작한 카탈로그에도 직지의 가치를 매우 중요하게 언급하였는데,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구입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직지 표지에 있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도서번호(한국 책 109)
직지에 붙여 있는 경매시 일련번호(711번)
직지에 붙여 있는 경매시 일련번호(711번)

 

당시 플랑시는 한국 고서 80여종을 경매하였다. 그 중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는 약 45종을 구입하면서 1,544프랑을 지불했다. 가장 비싼 것은 오경백편으로 135프랑에 구입하였으며, 가장 싼 것은 척사륜음으로 3프랑에 구입하였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경매 입찰자들이 직지를 구입하지 않은 이유는 직지의 가치를 몰랐거나, 아니면 꾸랑이 조선서지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한국에서 금속활자의 발명이 태종의 명에 의해 1403년에 주자소를 만들고 계미자를 주조하여 금속활자 인쇄를 시작한 것으로 보고, 1377년에 금속활자로 인쇄했다는 기록을 무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지 않았다면 비싼 가격을 주고서라도 당연히 직지를 구입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직지를 “1377년 한국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한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이제라도 직지의 진정한 가치를 정확히 알았으니 다행한 일이 아닌가

/ 황정하 사)세계직지문화협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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