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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 실학정신 소로리에서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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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 실학정신 소로리에서 구현”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0.07.29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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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설쓰고 농사짓는 임원경제사회적협동조합 이명훈 부이사장
서유구 선생의 ‘임원경제지’토대로 토종 작물 농사 지어
올해 ‘토종학교’ 개설…강의 듣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다

[충청리뷰_박소영 기자] 조선시대 실학자 서유구는 백과사전 형태의 임원경제지를 저술했다. 16권 분량의 방대한 기록을 담은 18세기의 책을 200년 후에 그대로 실천하기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임원경제연구소에서는 해마다 서유구 선생의 책을 시리즈로 집필하고 있으며 또 3년 전 연구소 사람들이 주축이 돼 임원경제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토종종자를 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옥산 소로1리엔 특별한 밭과 논이 있다. 200년 전 실학정신을 실천하고자 협동조합을 만들고 전통방식 그대로 농사를 짓는 이들이 있다. 이명훈 씨는 소설가이자 농부를 자처한다. /사진=육성준 기자
옥산 소로1리엔 특별한 밭과 논이 있다. 200년 전 실학정신을 실천하고자 협동조합을 만들고 전통방식 그대로 농사를 짓는 이들이 있다. 이명훈 씨는 소설가이자 농부를 자처한다. /사진=육성준 기자

임원경제사회적협동조합의 부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명훈 씨(60)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0년 간 서울에서 생활하다 이 일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위해 지난해 고향으로 내려왔다. “노년에는 고향에서 살고 싶었다. 의미 있는 일을 찾다가 임원경제연구소를 알게 됐고 협동조합까지 꾸리게 됐다.”

작가를 꿈꿨던 이 씨는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엉뚱하게도 증권맨으로 12년간 일했다. 이후 대안학교 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한 그는 늘 작가의 꿈을 놓지 않았다. 증권맨으로 일한 것도 빨리 돈을 벌어 작가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다시 찾은 고향에서 그는 흙을 매일 만지고 산다. “요즘이 제일 좋은 것 같다. 자연의 순리대로 농사를 지으면서 자기 성찰을 하게 된다. 200년 전 가르침을 실천한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협동조합은 옥산 소로1길 주변 땅을 임차해 서유구 선생의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평소 토종종자 운동을 펼쳐온 논살림사회적협동조합, 전국씨앗도서관협의회 등과 손을 맞잡았다. 옥산 소로1길에 터를 잡은 것은 약 17000년 전 고대벼인 소로리볍씨의 기원을 쫓아서다. 올해만 소로1길 인근에 논 15000, 1400평을 임차해 전통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소로리 볍씨마을에서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친환경 농사를 짓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소로1리 이장이 많이 도와준다. 이곳에서 마을공동체운동을 해보고 싶다.”

올해는 소로리 토종학교를 개설했다. 5월부터 11월까지 25회 강의가 진행된다. 토종을 기반으로 한 유기농업의 이론과 실제를 배울 수 있는 수업이다. 전국에서 이러한 활동을 해온 이들이 기꺼이 강사로 나섰다. 전국에서 약 30여명이 수강중이다. 직접 농사를 짓고 수확물도 가져간다. 참가비는 1인당 80만원이다.

전국에서 토종종자를 지켜내는 것은 아직까지 개인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자본주의의 셈법으로 보면 토종종자 사업은 이문이 남지 않는 일이다. “주말농장을 해본 경험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어본 적은 없었다. 토종종자를 보급하는 일이 개인에게 맡겨져 있다 보니 각각 활동을 열심히 해도 구심점이 없었다. 토종학교를 연 것은 외연을 좀 더 확장하고 싶었다. 일종의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다.”

 

사라지는 토종종자

 

토종종자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다국적 기업의 외래종자가 우리 논과 밭을 점령한 지 오래다. 토종농업은 씨를 심어 한 해 수확을 한 뒤 다음해 다시 알갱이를 땅에 묻으면 되지만 다국적 기업이 파는 종자는 한 해 한 해 새로 구입해야 한다. 생산성과 효율성 측면에선 외래 종자를 심는 게 유리하다.

토종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면 땅 자체가 건강해진다. 자연의 순환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비료를 쓰지 않고 자연 퇴비로만 농사를 짓는다. 그러다보니 논 생물도 같이 살아가게 된다. 우렁이, 세뱅이가 논에서 산다.”

토종학교에서 공동경작하는 토종작물 중 하나인 옥수수.
토종학교에서 공동경작하는 토종작물 중 하나인 옥수수.

토종종자는 각각 지역과 마을의 이름을 갖고 있기도 하다. “강원도 평창 지역의 상추 씨앗을 받아 심었다. 평창의 너부내 상추가 청주에 처음 상륙한 셈이다.” 토종 작물의 이름도 참 정겹다. 흰당근 꽃, 토종 호박, 맷돌호박, 동아박, 외대 해바라기, 단수수, 자주감자, 참박, 찰옥수수, 흰메옥수수, 애동호박, 먹골참외, 음성재래고추, 흑수박 등등.

토종을 지켜내기 위해 모인 이들이 가꾸는 밭과 논에선 매일 매일 햇살과 물을 머금고 작물이 자란다. 마치 작은 밭은 토종작물 백화점이자 정원 같다. 논에 심는 벼의 종류도 다양하다. 올해는 충북흑미, 녹토미, 북흑조, 돼지찰벼, 보리벼, 백경조, 붉은메를 심었다. 추수 때 밭에는 적, , , , 백색의 벼가 익어간다.

흙을 만지는 일은 곧 문장을 가꾸는 일과도 닮았다. 이제 이 씨의 본업은 소설가다. 소설을 마음껏 쓰기 위해 긴 시간을 돌아왔다. 그는 2003년 문학사상사에서 <꼭두의 사랑>를 펴낸 뒤 세상일에 치여 두 번째 책을 내기까진 15년이 걸렸다. 2018년에 수필 <수저를 떨어뜨려봐>를 펴냈다. 초고를 써 놓은 원고가 수십 편이다. 지금은 역사소설 탈고를 마치고 출판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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