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고택 보고 수덕사에서 1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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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고택 보고 수덕사에서 1박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0.07.2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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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에서 변화무쌍한 추사체 음미하며 대학자에 대해 생각
수덕여관 스토리 쓸쓸, 서산마애삼존불에서 ‘백제의 미소’ 발견
추사 고택
추사 고택

 

이 곳에 가보니 좋더라
충남 예산~서산

지난해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의 저서 ‘추사 김정희’를 읽었다.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추사(1786~1856)의 인간적인 모습과 예술세계를 한 눈에 보여준다. 방대한 자료 조사 끝에 나온 역사적 사실과 280여 점의 진기한 추사 작품을 눈으로 읽고 볼 수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에서는 ‘유홍준의 입담으로 되살려낸 조선 제일의 천재 추사 김정희’라고 평했다. 그렇다. 유 교수의 입담이 한 몫 한다. 이 책을 통해 추사가 금석고증학, 경학, 불교, 회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조선후기 동아시아 대표 석학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추사는 서예가라는 호칭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당대의 사상가이며 실학자, 예술가였다. 중국 청대의 대학자 옹방강 등과 교류한 국제학자였다.
 

추사 고택 전체가 박물관

추사 고택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고택은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고 추사박물관은 경기도 과천시, 그리고 제주도에는 제주추사관이 있다. 이 고택은 추사가 8세까지 살았던 곳이다. 추사 고택을 보기 위해 떠난 길이라 예산 수덕사와 서산의 해미읍성, 서산마애삼존불을 돌아보는 1박2일 코스로 잡았다. 숙박업소는 많고 많지만 특별한 체험을 하기 위해 수덕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기로 한다. 템플스테이는 사찰에서 머물며 휴식, 독서, 명상, 주변 관광 등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체험형과 휴식형을 선택할 수 있다. 휴식형을 택하면 온전한 자기시간을 보낸다.

충북도청 앞에서 추사고택까지는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국토의 중심 충북에서는 전국 어디나 2시간대, 길어야 3시간이면 갈 수 있다는 게 맞는 말이다. 그 곳으로 달려가니 한 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여러 채의 가옥과 말끔하게 정비된 잔디, 묘, 기념관 등이 들어서 있다. 과연 당대의 세도가 집 답다.

고택은 추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이 지은 것으로 전해졌다. 53칸집 규모의 양반 대갓집이다. 김한신은 조선 영조의 사위, 즉 부마였다. 부인이 화순옹주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영조가 특별히 예뻐한 딸과 사위를 위해 이 집을 지어 하사했던 것. 고택은 솟을대문의 문간채, ㄱ자형의 사랑채, ㅁ자형의 안채와 사당으로 이뤄져 있다. 한동안 방치됐던 이 고택은 1970년 예산시가 복원했으나 규모는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한다.

근처에는 김한신과 화순옹주의 합장묘, 화순옹주 열녀문, 추사 일대기를 볼 수 있는 기념관이 있다. 운좋게 기념관과 고택 마당에서 하는 전시회나 문화예술 행사라도 만나면 덤으로 즐길 수 있다. 지금 여기서는 8월 31일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특강, 시낭송, 퓨전가요 공연 등을 하고 있다.

고택에 가면 기둥마다 붙어있는 주련을 볼 수 있다. 주련(柱聯)은 기둥이나 벽 등에 세로로 써붙인 글씨를 말한다. 한자와 음, 훈이 적혀 있으니 읽어보는 게 좋다. 고택을 한 바퀴 돌면서 그 유명한 ‘세한도’를 비롯해 ‘죽로다실’ 등 변화무쌍한 추사체를 음미한다. 김한신이 38세의 젊은 나이로 죽자 화순옹주는 10여일 곡기를 끊고 따라갔다 한다. 정조가 내렸다는 열녀문을 보고 수덕사로 간다. 인근의 덕산온천, 한국고건축박물관, 예당저수지 등도 볼 만하다.

수덕여관
수덕여관

 

수덕사 그리고 해미읍성

예산군 덕산면에 위치한 덕숭산 수덕사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백제시대 6세기 무렵에 지었다고 한다. 특히 백제시대 건축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대웅전이 유명하다. 수덕사를 천천히 돌아본다. 낮 동안 사찰을 찾았던 관광객들이 가고 없어 고즈넉하다. 대웅전 앞에서 서쪽 저녁 노을을 바라보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수덕사에서 바라 본 저녁 노을
수덕사에서 바라 본 저녁 노을

 

수덕사 입구에는 수덕여관이 있다. 2001년까지 식당을 겸한 여관을 운영했던 박귀희 여사와 고암 이응로 화백,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화가 나혜석과 김일엽 스님에 얽힌 스토리는 수덕사를 와보고 싶게 만든다. 지금은 모두 세상을 떠나고 기념관이 된 수덕여관과 이응로 화백의 암각화만이 남아있다. 박귀희 여사가 떠난 후 수덕사가 여관을 인수해 기념관으로 조성했다.

한국 비구니계의 거목인 김일엽 스님에 관한 얘기는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노래 전편에 절절이 흐른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스님이 됐다는 얘기다. 스님의 친구인 나혜석 또한 사랑에 실패하고 친구를 찾아와 수덕여관에 5년 동안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굳게 잠긴 수덕여관의 모습이 퍽 쓸쓸하다.

다음 날 서산시로 간다. 서산마애삼존불, 개심사, 해미읍성을 돌아보기로 한다. 마애삼존불은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단단한 화강암에 새겨진 불상이지만 온화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침이 마르도록 아름답다고 추천해 꼭 보고 싶었다. 6~7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우리나라 마애불 중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유 교수는 이 책에서 “마애불의 미소는 조석으로 다르고 계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아침에 보이는 미소는 밝은 가운데 평화롭고, 저녁에 보이는 미소는 은은한 가운데 자비롭다.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미소는 가을 해가 서산을 넘어간 어둔 녘에 보이는 잔잔한 모습”이라는 마애삼존불 관리인 정장옥씨의 ‘마애불 미소론’을 소개했다.

해미읍성은 서산시 해미면에 있다. 일단 웅장한 규모에 놀란다. 해미읍성은 조선 성종 22년 1491년에 완성된 석성이다. 둘레는 약 1.8km, 높이 5m, 총면적 196,381m² 6만여 평의 거대한 성으로 동·남·서 세 문루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슬픈 역사가 있다. 천주교 박해 당시 관아가 있던 해미읍성으로 충청도 각 지역에서 수많은 신자들이 잡혀와 고문받고 죽음을 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866년 박해 때에는 1000여 명이 이 곳에서 처형됐다고 한다. 성 안으로 들어가면 곳곳에 흔적이 있다.

이 곳은 천주교도들의 순교 성지로도 유명하다. 해미읍성을 걸으며 청주읍성이 파괴되지 않았다면 청주시도 이런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아쉽기만 하다.

해미읍성
해미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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