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식과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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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식과 시대정신
  • 이재표 기자
  • 승인 2006.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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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표 정치부 차장
   
7월3일 정우택 충청북도지사의 등장은 화려했다. 도청 앞마당에 견고한 햇볕가리개를 설치하고 한국방송의 김병찬 아나운서가 매끄러운 목소리와 어투로 행사를 진행했다. 하늘에는 애드벌룬에 매달린 대형 현수막이 나부껴 경축 분위기를 돋웠다.

이날 취임식은 HCN 충북방송과 충북지식산업진흥원을 통해 각각 TV와 인터넷으로 생중계 됐는데, 확인 결과 HCN은 도 단위의 광역케이블로 통합된 것에 대한 상징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무료로 중계를 했고 도 출연기관인 지식산업진흥원은 수백만원의 경비를 들여 인터넷 생중계를 실시했다.

그러나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여론은 들끓었다. ‘4000만원이 넘는 취임식 비용이 들었다’며 100만원으로 검소한 취임식을 치른 인근 충남도와 비교가 돼 전국적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인터넷에는 월드컵 주심이 정 지사에게 레드카드를 내미는 패러디가 등장했고 실제로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정우택 지사가 인기검색어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신문들은 ‘뻑적지근’, ‘호화판’ 같은 단어를 집어넣어 취임식 기사의 제목을 뽑았다.
그러나 햇볕가리개만 설치하지 않았더라도 ‘호화판’이라는 비난은 면했을 것이라는 동정여론도 고개를 들었다. 오히려 ‘앞으로 큰 일을 할(해야할) 사람’ 앞에 취임식의 규모를 놓고 왈가왈부 하는 것 자체가 ‘옹졸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어느 수준부터가 호화판 취임식이 되는지 기준은 없다. 그러나 정 지사의 취임식이 적어도 우리 사회와 인심을 지배하는 ‘시대정신’에 어긋난 것은 분명하다.

이완구 충남지사가 100만원 짜리 취임식을 치렀고, 한용택 옥천군수는 화환 대신 쌀 200여 포대를 받아 장애인, 노인복지시설에 기증했다. 이향래 보은군수는 농민들로부터 삽과 곡괭이를 선물로 받았다.

3선의 김진선 강원도지사는 회의실에서 취임식을 가진 뒤 중소기업 대표 30명과 간담회를 가졌고, 전형준 전남 화순군수는 임기중 급여 전액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전국 대부분의 자치단체가 이렇듯 광장 보다는 실내를 택해 조촐한 취임식을 치렀고, 이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자치단체장의 상(像)이 화려함이나 세련됨 보다는 검소함과 소박함임을 드러낸 것이다.

취임식에 들어간 비용을 놓고 ‘많다 적다’ 시비를 걸자는 것이 아니라 조촐한 취임식을 치른 단체장들이 민심을 제대로 읽었다는 얘기다. 역으로 말해 정우택 지사는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셈이다. 정 지사를 보좌하는 사람들도 시대착오적인 의식수준을 드러냈다.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민초들은 등을 돌린다. 하지만 한국의 정서는 시작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다. 역대 정권이든 지방정부든 출범 초기에는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처음에는 웬만한 실수에 대해서 눈감아주고 만회의 기회를 준다. 그러나 실수의 반복이나 오만함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탄핵역풍 뒤의 17대 총선과 5.31 지방선거를 통해 우리는 민심을 읽지 못했을 때 가차없이 칼날을 내려치는 ‘무서운 민심’의 위력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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