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붕괴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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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붕괴시대
  • 한덕현
  • 승인 2020.09.0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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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이들과 옷깃 한번 스친 인연도 없지만 이젠 제발 언론에 등장하지 말았으면 하는 인물들이 있다. 진중권 김어준 조국 윤석열이다. 앞의 두 사람은 언론종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 언론발전에 순기능보다는 오히려 역기능을 더 초래할 것같은 심정에서, 뒤의 두 사람은 대한민국을 아끼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판단할 때 국가에 대한 미래지향적 기여보다는 퇴행적 분열과 파열을 낼 것같은 심정에서 그렇다. 물론 순전히 나만의 느낌임을 밝혀둔다.

진중권이 직접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SNS등에 단문 하나만 올려도 국내 유수의 언론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큰 제목을 달아 경쟁적으로 보도한다. 그 때마다 예의없이 실시간 검색어 상위를 차지한다. 자연인에 불과한 진중권의 실체가 과연 무엇이길래 언론이 이토록 오랫동안, 흔들리지 않게 대접하는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김어준은 어느덧 국가적 이슈와 정책에 있어 교통정리자가 된 느낌이다. 서로 옥신각신 다투다가도 그가 나서서 한 마디 하면 그것이 곧 ‘정답’으로 받아들여진다. ‘진중권 언론’ ‘김어준 언론’이라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조국 법무부장관, 윤석열 검찰총장 내정소식이 전해질 때 개인적으로는 ‘이게 아니다’ 싶어 관련 내용을 이 지면에도 소개했다. 이유는 이렇다. 둘 다 개혁을 전제로 일찌감치 주목받았지만 난 역으로 생각했다. 조국은 유명인의 한계, 이른바 이미 드러날 대로 드러나고 알려질 대로 알려진 인물이기에 막상 중책을 맡길 경우 추동력이 떨어질 수 있음을 우려했다. 경제용어에 흔히 등장하는 무슨 무슨 ‘체감의 법칙’을 떠올린 것이다.
윤석열에 대해선 그가 소신파이고 또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평소의 이미지를 의식했다. 어느 지도자이든 캐릭터가 강한 인물을 옆에 두려면 이 것 한 가지는 명심해야 탈이 없다. 성격이 강한만큼 주군에게는 잠재적 부하(負荷)가 될 수 있고 언젠가는 갈라선다는 것이다. 결과로만 친다면 조·윤 두 사람은 결국 이런 처지가 됐고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말에 레임덕을 겪는다면 가장 큰 패착은 두 사람의 중용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언론의 위기, 특히 레거시(legacy) 미디어의 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이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다. 전통 매체로 상징되던 신문과 지상파(TV), 잡지는 급속하게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고 여러 전문조사에선 영향력 역시 급속하게 떨어진다. 요즘엔 각종 소식과 정보, 특히 사건 사고 같은 뉴스는 SNS, 쇼셜미디어로 가장 먼저 접한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전세계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달받을 수 있으니 아직도 뉴스의 출력 과정이 다단계인 레거시 미디어는 이를 따라갈 수가 없다.

그래도 날로 진화하는 디지털 미디어에 대응해 전통 매체가 지금까지 끊임없이 비교우위를 인정받는 것은 ‘저널리즘’의 본질 추구라는 명분이었다. 뉴 미디어가 상호 소통과 전달에서 첨단의 기술을 적용, 대중들에게 폭발적으로 어필하고 있지만 반면에 컨텐츠에 대한 사실성과 책임성 결여라는 불신의 벽을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래도 레거시 언론은 진실추구를 핵심으로 하는 저널리즘의 신뢰를 잃지 않았다.

그런데 근자에는 바로 이런 저널리즘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언론의 위기가 아니라 저널리즘의 총체적인 붕괴가 우려되고 있고 이런 현상이 앞으로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현재를 기준할 때 우리나라 저널리즘을 위태롭게 하는 가장 큰 발단(?)은 진중권과 김어준, 조국, 윤석열이다. 앞의 두 사람은 전통적 개념의 저널리즘을 무너뜨리고 있고 후자 두 사람은 우리나라 언론을 저널리즘의 최고 악(惡)이라 할 수 있는 정파적 진영논리로 무장케 하는 결정적 단초가 됐다.

 

언론사(史)를 되돌아 보더라도 조국과 윤석열에 관한 보도만큼 언론이 노골적으로 정파성을 드러낸 적도 없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언론사의 운명은 철저하게 정권에 따라 달라진다. 언론의 일탈과 저널리즘의 파행이 오죽했으면 진중권 저널리즘, 김어준 저널리즘이라는 신조어가 생겼겠는가.

진부하지만 우리나라 언론활동에서 실로 오랫동안 가꿔지고 정착한 저널리즘의 본질을 상식선에서 열거하면 이렇다. 진실 보도, 사실추구, 사회통합, 권력감시, 정파로부터의 독립, 공공의 이익, 공론의 여론창출 등등... 이를 바탕으로 언론은 시민 즉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충성해야 하며 바로 이 것이 ‘국민의 알 권리’ 라는 저널리즘의 궁극적인 지향점을 충족시킨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지금, 언론은 한낱 말공장에 불과한 진중권 김어준을 마치 신주단지 모시듯 떠받치며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좇아다니는가 하면, 정파편향도 부족해 아예 자기 눈에 거슬리는 특정 인물을 죽이려고 뉴스 가공에까지 나서고 있잖은가. 그들이 세상의 모든 일에 감놔라 대추놔라 간섭하고 입만 뻥끗했다 하면 언론을 타는 게 과연 정상적인 나라에선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묻고 싶다.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는 이들이 밖에서, 겉으로만 바라보며 사람과 현상을 진단할 게 아니라 단 한 번만이라도 해당 직업이나 일에 뛰어들어 치열하게 살아보고 입을 열었으면 한다. 탈북인들이 방송에 출연해 마치 자기가 북한사회의 모든 걸 섭렵한 것처럼 마구 떠들어대는 장면을 연상시켜 불편하기 그지 없다. 내가 볼 땐 진중권은 실패한 이념가이고 김어준은 불편하기 그지없는 아집 맨일 뿐이다.

언론이 제 4부이니 하며 나름의 권위를 인정받던 호시절은 20여년전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말이 선언될 때 이미 끝났다. 그래도 ‘신문에 났더라’ ‘방송에서 봤다’로 상징되는 저널리즘에 대한 국민 신뢰감은 언론종사자들이 ‘기레기’로 매도되는 순간까지도 힘들게 지속되어 왔지만 더 이상은 아닌 것 같다. 언론은 이제 자사, 자기편을 위해서라면 시대의 이단아 전광훈도 추켜세우고 국민들에게 인식의 구토증을 일으키는 주옥순도 미화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저널리즘의 끝은 무엇이 될까? 이대로라면 생존을 위한 천박한 몸부림 밖에 없다. 시장과 정파경쟁에 휘둘리고, 상업주의에 매몰되며, 선정적 흥미위주의 뉴스에 승부를 거는, 그리하여 괴담수준의 정보까지도 사회의제로 둔갑시켜 국민들을 기망하는 무책임한 가짜 저널리즘. 지금 이 것들이 대책없이 꿈틀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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