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바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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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바리 이야기
  • 한덕현
  • 승인 2020.09.1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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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나이 든 사람들은 자식이 군대를 간다고 하면 아직도 이런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군대갔다 오면 사람되어 나온다’는 이른바 ‘군바리 개조론’이다. 지금의 군문화는 과거와는 비교도 안되지만 그래도 가족 및 사회와 떨어져 오랫동안 규율잡힌 단체생활을 해야하는 군복무의 성격상 누구라도 일단 군대에 가면 스스로가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부모들이 바라는 건 뻔(?)하다. 자식이 좀 더 사회성을 갖추고, 또 가정과 가족의 소중함을 깨우치며, 힘든 훈련등을 통해 독립성을 키웠으면 하는 것이다. 꼭 비행이나 불량은 아니더라도 자식이 다소간 사회부적응일 경우엔 부모들의 기대감은 더 간절했다. 힘든 군생활을 통해 반듯한 사람이 되어 사회에 복귀하기를 염원했고 실제로 이런 효과를 거둔 사례가 주변에 많았다.

나 역시 범부(凡夫)들의 이같은 DNA를 고스란히 드러낸 적이 있다. 아들의 성격이 내성적인데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컴퓨터게임에 몰두하는 것이 걱정스러워 어느 시점부턴 군입대를 내심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솔직히 말하면 학수고대 였다. 부모로서 자식교육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역할을 알량하게도 군대에 맡기려 했던 것이다.

한데 예상이 빗나갔다. 아들은 체중을 이유로 재검 등을 거치더니 최종적으로 보충역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 때의 실망감이 어찌나 컸던지 3일 내내 술로써 마음을 다스렸다. 아들이 단기 훈련을 위해 증평 군부대에 입소하던 날, 차에 태워 부대 정문까지 데려다 줬지만 아이는 문밖에 서서 시선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는 부모에게 눈 한번 돌리지 않고 부대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서운함 보다는 훈련에 잘 적응할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훈련을 마치고 퇴소하던 날, 흔한 말로 구릿빛 얼굴의 씩씩한 모습으로 짜잔~! 하고 나타날 아들을 기대하며 일찌감치 부대 앞으로 나가 다른 부모들과 섞여 기다렸지만 끝내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군부대 홈페이지의 훈련병 소식란을 통해 미리 알렸는데도 이를 전해듣지 못했는지 뒤늦게 통화가 된 아들은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 때의 허탈, 공허감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아들은 집에 오자마자 동네 마트에 들러 음료수와 과자등을 잔뜩 샀다. 군대에 갔다온 사람들은 그 이유를 잘 안다. 군에 가면 사람되어 나온다는 말은 이처럼 소소한 행동의 변화와도 연관된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 늘 옆에 있어 쉽게 생각했던 것,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누릴 수 있었던 것 등 소위 일상의 모든 것들이 군생활, 특히 훈련소에선 그토록 소중하고 간절하게 느껴진다. 생각이 달라지니 사람도 달라지고 삶에 대한 자세도 변하게 된다. 비록 그 것이 제대 후에 얼마나 유지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의 심정은 똑같다. 이처럼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고 안타깝기도 하면서 늘 조바심이 난다. 국가의 부름으로 곱게 키운 자식과 생이별하는 꼴이니 이 것이야말로 부모가 되어보지 않고선 경험하지 못한다. 한 때 모 방송프로그램에서 군에 간 자식과 무모의 만남을 예고없이 연출해 보는 이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한다.

추미애 아들 문제가 연일 정국을 달구고 있다.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이나 논란만 봐도 추미애 아들은 사실여부를 떠나 부모를 잘 만난 덕에 선처나 특혜를 받은 건 부인할 수가 없다. 일반 사병들이 아프다고 해서 휴가에서 미복귀하고 또 유선상으로 병가를 연장신청했다면 추미애 아들처럼 처리될 리가 없다. 대한민국 군대 관행이 그렇지가 않고 이는 상식이다. 이를 변명하고 합리화하다보니까 양측간 공방만 시끄러워지고 있다.

 

할 말은 아니지만 잘 나가는 정치인과 기업인, 고위 공직자들에게 이 정도의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유명인사 자녀의 병역문제를 쟁점화하겠다면 말단 사병의 휴가가 아니라 합법을 가장한 병역기피부터 공론화하는 게 맞다. 정치인들과 그 자녀의 병역면제 이유를 보면 별 희한한 병명들이 다 동원된다. 가장 흔한 십자인대파열과 척추, 무릎관절 질환은 그래도 양반이다. 담마진, 견갑관절재발성탈구, 레그피레스씨병, 재생불량성빈혈, 공황성심신장애, 불안전성대관절 등은 일반인들로선 상상조차 잘 안된다.

결국 이번 사안은 이 나라의 공정성, 더 나아가 책임있는 공인의 도덕성 문제로 귀결된다. 검찰개혁을 주도해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는 사람이 막상 자신의 가정문제에 있어선 내로남불을 한 것에 대한 국민배신감은 클 수밖에 없다. 처음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국민에 사과했다면 파장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을 것이라는 예단은 이래서 나온다.

정작 우리가 궁금한 것은 왜 가진자들은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군대를 안가고, 왜 그들은 보통 사람들은 쉽게 듣도 보지도 못하는 희귀 질병을 갖고 있느냐는 점이다. 징병제의 나라에서 능력있는 부모 덕에 갖은 특권과 편법으로 군대의 문턱에도 안 가본 사람들이 국가의 지배층으로 군림하고 대접받는 게 이 나라 현실이고 지금 그들이 공정과 정의를 외치며 추미애를 몰아세우고 있다.

70년대 말에 군에 입대한 나로선 아주 실체적으로 대한민국의 고질병이라는 ‘병역특혜’를 목격할 수가 있었다. 경기 가평에서 6개월 훈련을 마치고 서울 인근 훈련단에 자대배치돼 3년간 조교 책임자로 복무하면서 당시 방위로 통하던 보충역 훈련을 주로 맡게 됐는데, 놀란 것은 훈련병 중에 유명정치인과 기업인, 고위공직자 자녀 그리고 연예인들이 특히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 시절 방위병은 대개 배움이나 신체적 조건의 미달자들에게 해당됐지만 군 입대를 기피하려는 특권층 자녀들의 면피용으로 많이 악용됐다. 이들은 입소하면서도 부대 정문 앞까지 고급 승용차를 타고 오거나 가족과 지인들을 대거 동반해 일종의 과시를 했는데 그게 특히 눈에 거슬렸다. 입소자들이 부대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그들에게 혼이 쏙 빠질 정도의 신체적 얼차려를 가하며 흑수저 병사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달래려 했지만 잠시 후 돌아오는 건 “그러지 말라”는 부대 상층부를 통한 입소자 가족들의 압박이었다.

병역특혜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 또한 친일을 청산하지 못하고 세습의 특권층을 양산한 우리의 낯부끄러운 유산일 뿐이다. 추미애 아들 논란은 이를 바로 잡는 계기가 되어야지 정쟁이나 진영싸움의 빌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일개 사병의 휴가를 놓고 전화를 했느냐 안했느냐가 과연 나라를 시끄럽게 할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묻고 싶다. 부모의 심정에선, 군대에 간 아들이 아프다면야 전화질이 아니라 총을 들고라도 전장에 나설 판이다.

코로나로 국민들이 대책없이 나자빠지는 비상시국에, 민생에 올인해도 부족할 정치인들이 이런 지엽적인 문제로 싸움만 벌이며 허송세월을 보낸다면.... 차라리 국회의사당에 다시 코로나가 덮치기를 바란다. 고작 며칠이었지만 그 땐 그래도 나라가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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