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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랑은 안전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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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랑은 안전합니까?
  • 충청리뷰
  • 승인 2020.09.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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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르트에서 불안한 사랑의 맹세를 보다

 

호엔 잘츠부르크 요새에서 내려와 점심 식사를 했다. 그러나 식당이 너무 붐벼 햄버거로 대충 요기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뭔가 허전했다. 다행히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주 유명한 카페가 있다고 해서 한번 들러보기로 했다. 자허토르테(초콜릿 스펀지케이크에 살구 잼을 넣어 만든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케이크)의 원조로 알려져 있는 카페 ‘자허(Sacher)’였다.

카페 ‘자허’에 가기 위해서는 ‘미카르트’라는 다리를 건너야 했다. 잘츠부르크는 잘차흐 강을 중심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는데, 이 두 시가지를 연결하는 다리가 바로 미카르트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호엔 잘츠부르크 요새는 구시가지에 있었고, 카페 ‘자허’는 신시가지에 있었다. 다리에 진입할 무렵부터 또다시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악천후였다.

미카르트 다리
미카르트 다리

 

그런데 거기서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과 마주했다. 다리 난간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각양각색의 자물쇠였다. 사전 지식이 없던 나로서는 뜻밖이었다. 사랑의 자물쇠는 사실 이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남산에도 있고, 중국 장가계에도 있다. 그 밖에도 로마의 밀비오 다리, 파리의 퐁데자르, 뉴욕의 브루클린, 모스크바의 루즈코프 등에도 있다고 한다. (다리의 안전 문제로 이미 철거되거나 철거의 위기에 처해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 사람들은 왜 사랑을 하면 이렇게 자물쇠를 채워 놓으려고 하는 것일까? 문득 사랑은 헤어짐을 전제로 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알면서도 본인만은 피하고 싶은 이기적 간절함이 이렇게 자물쇠를 채워 놓은 것은 아닐까?

잘차흐 강
잘차흐 강
자허토르테(가운데)
자허토르테(가운데)

 

사랑을 하면 서로에게 묻는다.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고 또 묻는다.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고. 그러고는 어떻게 해서든지 확답을 받아 그것을 영원한 증표로 남기고자 한다. 그 증표 중의 하나가 바로 사랑의 자물쇠이다. 제발 우리 사랑만은 영원하라고 맹세에 맹세를 거듭한 끝에 그 맹세를 묶어 철거덕, 자물쇠를 채워 버린다. 그리고 열쇠를 버린다. 이제부터는 그 누구도 열지 못하리라. 아예 강물 속에 던져 버린다. 다리 난간에 사랑의 자물쇠가 많이 걸리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눈보라가 점점 거세진다. 사랑의 자물쇠에도 눈발이 쌓인다. 어느 사랑인가 또 아프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러나 열쇠를 감춘 잘차흐 강은 그저 모르쇠로 흘러갈 뿐, 아무런 기척이 없다.

그래도 카페 ‘자허’의 자허토르테는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사랑의 자물쇠

-미카르트 다리

자신의 예감이 적중하자
그는 오히려 편안해졌다
더 이상 사탕수수를 베지 않아도
밤새 별들의 눈을 닦지 않아도
되었다

처음엔 그도 두려웠다
문득 마주한 달콤함과 반짝임
달아날까봐
겹겹 울타리를 둘러치고
큼지막한 자물쇠도 꽉꽉
채워놓았다 영원히
그 누구도 열지 못하리라
열쇠도 강물에 던져버렸다

울타리 밖으로 반달곰이 지나갔다
입술이 퉁퉁 부어 있었다
꽃사슴도 기웃거렸다
검게 그을린 가슴의 꽃을 애써 감췄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왔는지
절룩거리는 늑대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자물쇠를 매만졌다
왜 아니랴, 모두는 늘 자기만은 예외일 거라는
아주 편리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

이젠 종종 술집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열쇠를 버렸으니 끝내 꺼낼 수 없는 그것이
담담한 화석이 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때쯤, 술 한 잔 권하며 귀엣말할지도 모르겠다
이 화석 참 아름답지 않아요?

/장문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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