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솜방망이 처벌을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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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솜방망이 처벌을 봐야 하나
  • 충청리뷰
  • 승인 2020.09.2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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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상 청주대 법학과 교수
조한상 청주대 법학과 교수

 

세계 최대의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를 운영한 손정우는 18개월의 징역을 확정받아 형기를 마쳤다. 달걀 18개를 훔친 절도범에게 부과되는 형량과 같은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손 씨가 운영한 사이트에서 동영상 1개를 내려받은 사람이 징역 5년 10개월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미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을 거부한 우리 법원을 비판하는 광고가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내걸렸다고 하니 이 쯤되면 국제적 망신이다. 그리고 2008년에 8세 여아를 강간 폭행한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조두순이 어느새 출소를 앞두고 있다. 12년이라는 형량도 문제였지만, 범인의 나이가 많고 술을 먹은 상태가 참작되어 형기를 줄였다는 양형 사유는 더 큰 논란을 일으켰다.

형법은 어떤 범죄를 저지르면 어느 정도 형벌로 처벌하는지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며, 단지 ‘몇 년 이상, 몇 년 이하’ 같이 느슨하게 규정한다. 예컨대 형법 제250조는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최종 판단은 법관에게 맡겨져 있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사형에 처할 수도 있고, 5년 징역에 처할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생사여탈권을 가진 것이다. 법관에 따라 양형 편차가 크면 법관의 성향이나 감정 등에 따라 형벌이 달라지는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 이 문제를 막기 위해 표준화된 양형기준이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이 양형기준이라는 것이 수학 공식처럼 되어 있어서 가중사유와 감경 사유를 집어넣으면 그 결과가 거의 자동적으로 나오도록 만들어져 있다. 뉘우치고 있다거나, 합의했다거나, 심지어 결혼해서 애가 있거나 이런 사유가 있으면 그에 따라 계산된 감경된 형벌이 나오는 것이다. 여기에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이름의 사법부 불신까지 더해지고, 무기징역은 20년, 유기징역은 형기의 3분의 1을 지나면 가능한 가석방 문제까지 합해져서,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국민적 공분은 높아만 가고 있다.

어찌 되었든 양형기준도 형법의 틀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니 솜방망이 처벌이 발생하는 주된 원인은 형법에 있다고 하겠다. 우리 형법이 만들어진 것이 1953년, 즉 6.25 직후다. 그 뒤로 세상은 엄청나게 바뀌었지만, 형법은 크게 바뀌지 않았으며 특히 형량 부분이 그렇다.

주목해 볼 것은 기대수명의 연장과 인플레이션이다. 1960년 우리나라 기대수명이 53세였지만, 2016년 82세로 늘었다. 한 마디로 세월의 무게가 달라진 것이다. 예전에 10년 징역이면 인생의 5분의 1이었지만, 지금은 8분의 1에 불과한 것이다. 벌금의 경우에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60년대와 비교하면 거의 100배의 차이가 날 것이다. 세상의 변화를 법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형량이 그대로 유지되는 만큼 형벌이 점점 더 솜방망이가 되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19세기 독일의 저명한 법철학자 루돌프 폰 예링은 법률과 사법이 무지하거나 악의적이거나 무기력할 경우 국민은 법률과 사법이 거절한 것을 자력구제(自力救濟)에 의하여 획득하고자 한다고 했다. 최근 또 다른 논란을 불러온 디지털 교도소는 현재의 형사법 체계가 낳은 반근대적이고 퇴행적인 현상이다. 세상의 불공정을 한탄하고 담당 판사를 험담하는 것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막을 수 없다. 입법자와 사법부의 불성실과 불공정에 경종을 울리고, 그것을 바로잡는 구조적이고 거시적인 작업이 하루빨리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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