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보된 정책, 결국 출판 생태계 파괴” 주장도
21대 첫 국회 국정감사에서 도종환 의원(청주시 흥덕구‧더불어민주)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도서정가제 폐지’움직임에 대해 질타했다. 도 의원은 “책은 상품이면서 문화활동을 위한 공공재이다. 책은 저렴한 가격이 아니라 적정한 가격에 공급돼야 한다. 그래야만 출판사가 다시 좋은 책을 만들어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도서정가제라는 안전장치가 사라진다면 1994년 5600개에서 2300개로 사라진 동네책방이 역사의 한 페이지로만 존재할 것이다. 몇몇 자본력 있는 대형서점만 살아남는다면 다양한 책들이 사라지고 독자들도 떠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불법이 난무한데
도서정가제 폐지는 도서출판계의 뜨거운 감자다. 도서정가제는 2014년 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 27조의 2에 따라 3년마다 타당성 조사를 하게 돼 있다. 이에 따라 폐지, 완화, 유지 등의 조치를 내리게 된다.
이를 위해 문체부는 지난 1년 여 동안 출판업계, 서점업계, 온라인 서점, 작가협회 등 도서산업과 관련된 16개 단체 이해당사자들과 회의를 진행했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도서정가제를 현행 ‘유지’하는 것이었다. 다면 현재 온라인 서점이 벌이고 있는 무료배송 서비스에 대해서는 재검토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문체부는 이 같은 내용을 공표하지 않고 새로운 안을 제시했다. 과거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기 전으로 ‘후퇴’하는 안이었다. △출판연도 3년 이내 책은 도서정가제 폐지 △웹소설, 웹툰 등은 현재 30%할인율 제한을 무제한으로 상향 △책 관련 행사(독서대전 등) 때 할인율 제한 폐기 등이다.
지난해 ‘도서정가제 폐지’를 요청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와 20만 넘게 국민들이 응답했기 때문에 문체부는 ‘소비자 후생’을 이유로 이 같은 카드를 내민 것이다.
이에 대해 출판업계를 비롯한 서점업계, 작가협회 등이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의 동네서점들은 사실상 도서정가제 폐지와 다를 바 없는 문체부의 이 같은 안에 대해 반발하는 1인 시위, 청와대에 편지 쓰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얼마 전 이들은 도서정가제 폐지 반대 플래카드를 든 전국의 책방 주인들의 사진을 모아 일간지에 반대 광고를 내기도 했다.
임준순 청주시 서점조합장도 얼마 전 국회 앞에서 도서정가제 폐지 반대 1인 시위에 나섰다. 그는 “이미 협상테이블에서 서로의 이해관계를 다투며 합의안을 도출했는데 이를 번복하는 안을 문체부가 일방적으로 제시한 것이 이해가 안 된다. 이렇게 되면 동네 서점은 더 이상 운영하기가 힘들다. 코로나19로 동네서점이 벌였던 작가초청 행사나 독서토론 등도 불가능해 서점들이 문을 닫고 있다. 도서정가제 마저 폐지된다면 동네서점은 설 자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기울어진 운동장
도종환 의원뿐만 아니라 한강 작가도 “도서정가제 폐지는 곧 문학생태계의 파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한강 작가는 지난 6일 한국출판인회의와 한국작가회의가 함께 마련한 행사장에서 “도서정가제가 개악될 경우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잃게 될 텐데, 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작은 사람들일 것이다. 출발선에 선 창작자들, 작은 플랫폼을 가진 사람들, 자본과 상업성을 넘어 고민을 모색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도서정가제가 사라진다면 태어날 수 있었던 수많은 책들의 죽음을 겪게 될 것이다. 독자가 될 어린 세대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최근 문체부는 “의견을 적극 검토해 답을 내리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최근 동네서점 열풍이 불면서 전국에 700여개의 신생서점이 생겨 새로운 문화공간의 역할을 감당했지만 도서정가제가 폐지된다면 점점 더 생존이 어렵게 된다.
임 조합장은 “현재 도서정가제도 불완전하다. 대형 온라인 서점은 10%할인에 5%추가적립을 해준다. 뿐만 아니라 ‘제3자 할인’이라고 해서 카드회사들이 이벤트로 30%가까이 할인을 해줘도 현행법에선 문제가 안 된다. 동네서점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는 단가는 온라인 서점과 차이가 있다. 또 마케팅이나 대형 자본의 힘에 밀릴 수밖에 없다. 동네서점은 5%적립 정도밖에 해줄 수가 없다. 적어도 출판사가 서점에 책을 공급할 때 동네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이나 단가를 같게 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프랑스의 경우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도서정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책을 구매할 경우 오히려 5%할인해주고 있다. ‘반 아마존 법’의 일환으로 이른바 대자본이 네트워크와 권력을 가지고 독점하는 것에 반기를 든 것이다.
오프라인 서점들은 매장을 유지하는 데 돈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 우리나라의 책 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현재의 도서정가제 또한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너무 많다. 임 조합장은 “한쪽에서 동네서점을 살려야 한다면서 또 한쪽에선 생존할 수 없는 정책을 펴고 있다. 너무 모순적이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