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만행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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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만행 길에서
  • 충북인뉴스
  • 승인 2006.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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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진 관음사 주지
   
보팔(Bhopal)에서 부사발(Bhusaval)가는 2등 칸 열차. 새벽 1시 30분에 승차하여 침대칸에서 새우잠을 자고 일어났다. 밤 10시 30분 열차인데 3시간 연착한 기차이다. 한국이었다면 항의를 한다, 환불을 한다면서 난리였을 텐데 현지인들은 느긋하게 기다린다. 차를 마시기고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이불을 깔고 잠을 자기고 하고…우리처럼 인상을 쓰거나 욕을 하는 사람이 없다.

현재의 상황이나 조건을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 삶에서도 퍽이나 필요하다. 조바심을 내고, 마음을 졸인다고 바뀔 상황이 아니면 그 자체를 수용하는 자세도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열차를 기다리고, 버스를 타고, 흥정을 하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 모두가 만행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삶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다. 한번은 바라나시(Varanasi)로 가면서 경험한 일인데, 열차가 진행하는 반대방향으로 앉았다.

물론 그 동안 길들여진 내 인식으로는 거꾸로 간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 사람들은 사람이 거꾸로 앉았다고 말한다. 삶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삶의 방식이나 태도도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자신에게 길들여진 삶의 기준이 인도에서는 송두리째 뒤집어진다는 사실이다.

터덜터덜한 버스, 병든 개들, 배설물과 쓰레기들, 매연과 거지들, 개와 소가 얽혀 있는 풍경들을 만나면서 인도에서는 바쁘게, 정확하게 살던 우리의 생활습관을 점검해보게 한다. 어찌 보면 우리 손목에 채워진 시계 침을 아주 느리게 되돌려 놓아야 한다. 그래야 인도의 질서에 자연스럽게 순응한다. 그래서 인도사람들은 좀처럼 짜증을 내지 않는다.

이런 일도 있었다.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아그라(Agra)역에 내렸는데 거지가 줄곧 따라왔다. 성가시어 10루피를 주었더니 잠시 후 나를 쫓아 와서, 돈이 더럽고 구겨졌다며 새 돈으로 바꾸어 달라고 했다. 거지 또한 언제나 자기중심이다. 거지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적선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니, 오히려 자신들에게 감사해야 된다는 식이다.

인도에 오면, 수행의 본질을 생각하게 된다. 불편하다, 더럽다, 시끄럽다, 이런 현상을 분별하는 것은 ‘아상’이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비본질적 요소들에 너무 길들여져 있었던 내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다. 수행이란, 대상을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분별이전으로 돌아가는 연습이 아닐까.

며칠 전에는 사막에서 아침을 맞이해 본 적이 있다. 지평선 너머에서 떠오르는 사막의 일출은 장관이다.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된 듯한 착각이 인다. 그리고 사막에서 바라보는 별빛은 맑고 고요하다. 삶의 역사를 그 자리에서 물어보게 되는데, 인생은 결코 시시한 것이 아니 다는 것을 깨달았다. 떠오르는 태양처럼 날마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어쨌거나 잠에서 깨어나 보니, 창문틈새로 들어오는 서늘한 새벽기운이 여행객을 움츠리게 한다. 주위를 돌아보니 시체처럼 이불하나만 간신히 덮고 잠을 자는 사람들, 침대칸을 구하지 못해 밤새 서 있거나 문 쪽에서 얼굴에 모포를 두르고 새벽냉기를 이겨내며 앉아 있는 사람들…. 그래도 의자 같은 침대칸 하나 의지하고 누워 있는 내 자신이 다행스럽다고 위로해야 하나. 행복의 기준이 도대체 무엇일까? 그렇다고 삶에 지쳐버린 표정은 아니다. 한결같이 표정은 밝고 환하다. 아무래도 인도에서의 행복의 기준은 ‘오늘하루’ 같다.

아침이 밝아 오고 역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짜이! 짜이!’하는 소리가 들린다. 남자들이 외치는 그 소리가 마치 이중창처럼 귀에 익숙하다. 그리고 기차에서 내리면 이내 많은 인파와 소음 속으로 떠밀려간다. 개 짖는 소리, 흥정하는 소리, 거지가 읍소하는 소리, 자동차와 릭샤꾼들의 경적 소리, 신호등이나 중앙선 없는 거리, 흙먼지 날리는 도심에 넘쳐나는 사람들…. 이런 풍경이 인도의 시작이며 끝이다. 이 왜에 인도를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런데 인도의 매력은 어디에 있어서 나를 이곳에 오게 했는가. 아마도 이런 것들을 통해 삶의 근원과 인생의 의미를 생동감 있게 살펴볼 수 있는 이유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람들 속을 향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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