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밥이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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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밥이 하늘이다
  • 권혁상 기자
  • 승인 2006.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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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혁 상 충북인뉴스 편집장

밥이 하늘입니다./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먹는 것 /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갈라먹는 것 / 밥이 하늘입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 밥이 하늘입니다. 아아, 밥은 모두 서로 나눠먹는 것>

지난 70년대 국내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던 시인 김지하는 옥중에서 장시 <장일담>을 집필한다. 그 옥중시의 한 대목이 ‘밥이 하늘이다’라는 제목으로 알려지게 됐다. 밥이 하늘만큼 소중하다는 것이고 그러니 서로 나눠 먹는 것이 ‘하늘의 뜻’이란 얘기다.

지난 5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열린우리당은 정동영 의장의 사퇴와 함께 김근태 의원이 비대위 의장을 맡게됐다. 집권여당이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김 의장의 첫 일성은 ‘밥이 하늘이다’였다. 국민이 하늘인 것처럼 국민에게는 밥이 하늘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좀 넓혀서 말하면 경제라는 것이 모든 것의 토대라는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앞에 인용한 김지하의 시는 밥을 나누는 대상으로 관조했고, 후자인 김근태 의장은 밥상을 차리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감성론이든 현실론이든 ‘먹고사는’ 밥은 삶의 기본조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청주 한 복판에서 ‘밥’을 되찾기 위한 1년 8개월간의 거리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노조 조합원 100여명은 지역 최장수 ‘집회꾼’이 되버렸다.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던 당초의 꿈은 이미 접었고, 제 자리 원직복귀마저 거부당하고 있다. 노동부의 실업급여는 벌써 끊겼고 민주노총에서 지원하는 월 40만원의 생계보조금으로 1년간을 버티고 있다.

주간 집회에 참석하고 야간 대리운전을 부업삼았던 한 조합원은 교통사고가 발생해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다. 가까스로 전세비를 빼서 합의금을 내주고 풀려났지만 하루아침에 월세방 신세가 되버렸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법원에서는 아파트를 소유한 5명의 하청노조원에게 재산 가압류 통보서를 보냈다. 한해 2조원의 이익을 남겼다는 대기업 하이닉스가 하청노조원에게 32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장기간 분규에 지쳐 부부가 이혼하기도 했고, 우울증에 빠진 아내를 어쩌지 못해 눈물짓는 남편이 생겨났다. 부모형제의 재취업 성화에 못이겨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낸 조합원은 ‘하이닉스 하청회사’ 근무 전력이 드러나 퇴짜를 맞기도 했다. 과연, 이런 적나나한 삶의 모습들이 정치적 투쟁인가. 아니면 밥을 얻기 위한 생존권 투쟁인가.

하이닉스는 올해 2분기에도 해외법인을 포함해 1조6700억원의 매출을 기록, 영업이익은 3870억원을 기록해 1분기의 3600억원에 비해 약 8% 증가했다. 이대로가면 올해도 1조5000억원 정도의 영업이익이 예상된다. 그래서 올 하반기에 약 700명 규모의 생산직 사원을 채용하겠다고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하지만 범도민중재위와 만난 하이닉스 경영진은 하청노조의 고용문제에 대해 ‘절대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개인당 1500~2000만원의 위로금으로 해결하자고 한다. 노동부의 불법 파견근무 판정을 받아 검찰의 기소여부를 코앞에 둔 회사가 도대체 무슨 ‘배짱’인지 이해할 수 없다. 백성의 하늘인 ‘밥’을 무시하는 것인지, 충청도의 과묵한 양반기질을 무시하는 것인지, 그 속을 모르겠다. ‘밥’을 나눠먹을 생각이 없다면 한 식탁에 앉을 수 없다. 이러다 누군가 밥상을 뒤집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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