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를 묻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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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를 묻기 전에
  • 충청리뷰
  • 승인 2020.10.2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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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희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이남희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얼마 전 중고물품거래 앱에 갓난아기를 희망금액 20만원에 입양 보내겠다는 글이 올라와서 충격을 주었다. 미혼모 시설을 거쳐 아기를 낳은 지 사흘 된 산모가 입양절차를 상담하다 속이 상해 올린 것으로 밝혀졌다. 기사에 달린 댓글을 들여다보니 못된 엄마를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이 줄줄이 이어져 마음이 안 좋았다.

그래도 개중에는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도움을 줘야한다거나 산모의 건강을 걱정하는 내용도 좀 있었다. 다행히 관할 지자체의 수장이 잘 살피겠노라 약속을 했다. 정말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나서야한다는 말이 맞다. 산모를 온전하게 돌보는 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혼외출산율이 2017년 기준 1.9%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다. OECD 평균은 약 40%이고, 프랑스, 노르웨이 등 출생률이 한동안 떨어졌다가 회복된 국가들은 하나같이 혼외출산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정상가족’에 대한 애착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쉽지 않은 선택이다.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가족형태를 인정하고, 남녀 근로조건을 평등하게 하고, 주거비 부담을 줄이고, 일·생활 균형이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선진국형 대안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실 아이를 낳기도 어렵지만, 낳지 않기도 어렵다. 작년 4월 헌법재판소는 임신여성 당사자나 그의 동의를 얻어 시술한 의사를 형사 처벌하는 낙태죄 조항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1953년 제정된 형법 269조와 270조에 대해 처음으로 사실상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이다.

2012년 위헌소송에서는 ‘태아는 어머니와 별개의 생명체로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4:4 합헌 결정이 났다. 헌법불합치 판결의 후속 조치로 정부와 국회는 2020년 12월31일까지 개선 입법을 마련해야 한다. 시한이 촉박한 가운데 지난 10월 7일 법무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정부 개정안은 예상대로 법조계·의료계·여성계·종교계 중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했고, 반박 의견이 연일 나오고 있다. 개정안에서도 낙태죄가 존치된다는 점에서 “사문화되고 위헌성을 인정받은 낙태 처벌규정을 되살려낸 역사적 퇴행”이라는 비판을 받는 반면, 개정안이 ‘생명경시 풍조를 조장’한다는 주장도 여전히 강력하다. 국회에서는 권인숙, 박주민, 이은주 의원 등이 개별 입법안을 발의 중이다.

15-44세 여성 1만 명을 온라인 조사한 2018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인공임신중절률(1천 명당 임신중절 건수로 산정)은 2005년 약 30%에서 2017년 약5%로 꾸준히 줄어들었다. 인공임신중절 감소 원인으로 ①피임 실천율 증가 ②응급(사후)피임약 처방 건수 증가 ③ 만 15~44세 여성의 지속적 감소 등을 꼽았다.

응답자들이 원하는 정책 1순위는 ‘피임·임신·출산에 대한 남녀공동책임의식 강화(27.1%)’, ‘원하지 않는 임신을 예방하기 위한 성교육 및 피임교육(23.4%)’ 등이 나왔다. 생애 기간 중 임신을 경험한 여성 5명 중 1명은 인공임신중절을 겪었으며, 조사완료자의 75.4%가 낙태죄는 개정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낙태죄가 인공임신중절을 줄인다고 판단할만한 결과는 없었다.

논리적으로는 태아의 생명권, 임신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다. 태아 대 여성의 대립 구도를 넘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고, 임신중단을 하려는 여성을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 출산은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현 정부 초기에는 ‘낙태죄에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빠져있다’는 청와대의 답변이 나온 적도 있다. 우리 사회가 정말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한다면 가임 여성을 벌주기보다 아이 낳고 키우기 편안한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이남희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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