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군 ‘자린고비 청빈마을’ 사업 명칭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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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군 ‘자린고비 청빈마을’ 사업 명칭 바꿔야
  • 김천수 기자
  • 승인 2020.11.19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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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극면 능안마을에 조성…조륵과 연계하되 ‘양촌 선생’ 중심돼야
충북 음성군 방축리 능안마을에 소재한 권근 삼대묘 아래의 사당 전경. /사진=충청북도 공식 블로그.

[충청리뷰_김천수 기자] 충북 음성군이 국비와 도비를 지원받아 충청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 일환으로 추진하는 ‘자린고비 청빈마을’ 조성사업 기본계획수립 절차에 착수했다. 그러나 충북도의 ‘자린고비 조륵 종합콘텐츠 개발계획’이라는 당초 용역명칭과 부합되기 어려운 위치에 조성하게 돼 명칭변경이 시급한 문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음성군은 지난 11일 ‘충청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자린고비 청빈마을) 기본계획수립 용역’ 입찰공고를 실시했다. 다음달 2일 개찰 예정으로 기초금액은 1억5000만원이다. 용역사업자가 선정되면 6개월 동안 과업지시서에 따른 기본계획서를 마련해 제출해야 한다.

군이 지난 8월 음성군의회에 보고한 내용과 과업지시서 등에 따르면 ‘자린고비 청빈마을’은 실시설계가 마련되는 내년부터 2025년까지 5년 동안 생극면 방축리 능안 마을 권근 삼대묘 일원에 조성된다. 해당 사업부지는 4만5210㎡ 면적이며, 총사업비는 139억1000원(국비 54억5500만원, 도비 10억9100만원, 군비 73억6400만원)이 소요된다.

군은 ‘자린고비 청빈마을’을 조성해 청빈낙도를 실천한 조륵 선생의 자인고비(慈仁考碑) 정신과 조선전기 대학자 권근 선생의 학문적 업적을 기린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청소년들의 경제교육체험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할 방침이다. 이곳에는 청빈영상체험실, 자린고비마당, 자인정, 안빈낙도 정원 및 산책로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군은 가족단위 관광객 유치가 가능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당 사업은 지난 2016년 문체부의 충청유교문화권 광역관광개발계획에 반영되고, 4년만인 지난 8월 사업계획 변경 최종 승인을 받은 상태다.

대학자 ‘권근’ 재발견 중요

그렇지만 당초 조륵선생에 맞춰진 사업 명칭과 사업 장소가 들어맞지 않아 문체부 등과 협의를 거쳐 변경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륵선생 생가는 금왕읍 삼봉리 마을에 있지만, 권근 삼대묘와 사당 등이 있는 사업부지와는 직선거리로 13㎞ 떨어져 있다. 차량으로 15분 이상 소요되는 거리다. 군 관계자는 “생가 매입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사업명칭 변경이 불가하다는 게 문체부의 입장”이라고 전했다.

특히 개인이 소유한 조륵 생가는 종중이 사들이지 못한 상황에서 신축 주택이 들어선 상황이다. 생가마을 인근에 ‘자린고비 유래비’가 세워져 있지만, 특별히 관람할 시설이나 자연환경도 없다. 다만 근검절약과 남을 위해 재산을 쾌척하는 삶을 산 조륵선생에 대한 설화는 대단히 많다.

앞서 음성군은 자린고비 유래비를 세우고 1998년부터 ‘자린고비상’을 마련하고, 근검절약하는 자린고비 정신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군민 4명을 선정해 시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린고비상은 군수가 바뀌게 되고 소비가 미덕인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서인지 10년도 되지않아 슬그머니 사라졌다.

조륵을 중심으로 계획된 ‘자린고비 청빈마을’ 조성사업이 난관에 봉착한 듯 보이지만 전화위복의 계기로 보인다. 음성군은 그동안 방축리에 소재한 권근 삼대묘에 관심을 두지 못했다. 단지 안동권씨 종중 묘원으로 여긴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고려말과 조선초 대학자이며 문신인 권근의 업적을 보면 그의 능과 사당 등이 있는 생극면 방축리 능안마을은 유교문화권 광역관광개발 사업의 최적 대상지다. 이곳은 그의 호인 양촌(陽村)을 붙여 종중에선 양촌삼대묘로 부른다.

유교문화의 선각자 권근 선생과 그의 아들 권제, 손자 권람이 함께 묻혀 있다. 양촌삼대묘는 왕명에 의해 조선왕릉규모로 자리잡고, 유일하게 노비와 충견묘까지 있다. 양촌 선생은 1352년(공민왕1년)에 출생해 1409년(태종9년)까지 살았다. 그의 대표 작품집은 40권에 이르는 양촌집이다. 중추원사, 정당문학, 대사헌 등의 관직도 지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발간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는 양촌에 대한 설명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문장은 물론 성리학 분야의 연구도 깊고 교유 인맥도 넓다.

이 자료에 따르면 유학의 다른 명칭인 성리학이 조선의 개창을 합리화하는 토대가 되면서부터 조선시대 사상의 중심부로 부상했다. 조선 초 성리학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역성혁명의 주체인 정도전과 권근의 활동이다.

권근은 불교에 대한 비판 보다는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여 ‘입학도설(入學圖說)’,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 등을 저술했다. 그의 오경천견록은 오경(五經)에 주해를 단 것으로 중국 오징(吳澄)의 ‘주역찬언(周易纂言)’, 진호(陳澔)의 ‘예기집설(禮記集說)’ 등의 약점을 보완·극복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는 체용관(體用觀)을 적용해 오경 전체를 유기적인 관계로 파악했다.

유교문화 중심터 역할 충분

권근의 성리학적 식견은 그의 창의적 저술인 ‘입학도설’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이것은 중용·대학으로부터 출발하는 초학자를 위한 성리학 입문서로서 성리학의 중심 사상을 뽑아 작도(作圖)하고 개략적으로 해설하고 있다. 그림(圖)의 위치 배열과 해설(說)에서 그의 성리학적 견해를 볼 수 있다. 권근은 이 책의 맨 앞에 있는 천인심성합일지도(天人心性合一之圖)에서 인간(人)·심·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천인합일이라는 유학적 이상을 심성의 수양을 통하여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은 형질적 기와 본래적 이를 함께 갖추고 있으므로 이로써 동물적 욕망을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권근의 이기심성(理氣心性)론은 군주 및 지배층의 덕치(德治)·예치(禮治)·인정(仁政)·왕도(王道)를 실천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밝혀주었을 뿐만 아니라 16세기 후반 이황·이이 등 일군의 학자들에 의하여 연구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이황과 이이에 영향을 크게 주었기에 조선시대 유학이나 유교를 연구함에 있어 양촌선생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는 많은 학문적 업적은 양촌집 외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따라서 그에 대한 연구물도 많다. 현대에도 문인으로서도 평가를 받고 있다. 조동일은 한국문학통사에서 ‘조선 건국사업에 참여하여 사상을 정립하고 문학하는 기풍을 바로잡는데 기여했다’고 평했다.

음성군과 충주시 일원에는 서원이 꽤 있다. 음성의 지천서원과 운곡서원, 충주 팔봉서원 등이 있다. 이곳도 권근의 유학 후예들과 연관된 곳이다. 유교문화권 관광사업 콘텐츠에 포함돼 설명돼야 한다. 조륵선생은 그의 선행으로 벼슬길에 오를 기회도 있었지만 마다했다고 한다. 조륵은 양촌선생 보다 250년, 이황과 이이는 150년 정도 후대의 인물이다.

음성군의 구상대로 유교문화권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이번 사업을 합당한 명칭으로 변경 추진해야 한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다면 시간과 예산 낭비로 이어지고 책임질 일도 벌어질 수 있다. 용역단계에서 모두가 지혜를 모아 사업의 미세조정을 통한 사업명칭 변경 계획을 마련해 문체부를 설득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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