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0개 무대를 만든 남자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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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0개 무대를 만든 남자의 기록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1.01.07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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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미술 30년 역사 책으로 엮는 민병구 씨
민병구 무대미술가.
민병구 무대미술가.

지금까지 약 2800개의 무대를 만들었어요. 순회무대까지 치면 약 3800개 정도일겁니다.”

무대미술가 민병구(56)씨는 담담히 말했다. 그는 이번에 10년 동안 준비한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1988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무대미술 작품 중에서 약 150개를 추렸다. 작품 사진과 도면, 스케치 등을 꼼꼼히 책에 실었다.

책 한 권당 350페이지가 넘는다. 그는 두 권의 책을 발간했다. “무대 미술을 한지는 약 30년됐어요. 뮤지컬, 오페라, 연극, 무용, 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무대를 만들었죠. 다 담을 수 없어서 많이 추렸는데도 책이 두꺼워졌네요.”

무대미술 관련 책은 우리나라에서 4번째다. 무대미술은 작품에 어울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작업이다.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미적인 감각뿐만 아니라 고된 노동이 수반된다. 잠을 쪼개가면서 그는 성실하게 지난 30년 세월을 달려왔다.

“KBS방송국에서 무대 제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무대 미술을 처음 접했죠. 이후에 손관호 선생님을 사사하면서 본격적으로 이 일을 시작했죠. 엉뚱하게도 일본의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를 보면서 눈이 떠진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이지만 다채롭게 색깔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문화적 충격을 받았죠.”

그는 만화 톰과 제리를 즐겨본다. 고된 노동 끝에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은 그에겐 달콤한 휴식이다.

따로 미술을 전공하지는 않았어요. 그럴 형편도 못 됐고요.” 민 씨는 미술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손재주가 뛰어나다. 조각부터 회화까지. 작품 세계가 다양하다. 또 개인전도 이미 몇 차례 연 바 있다. 민 씨는 부엉이를 주제로 한 전시를 서울에서 올 7월에 열 계획이다.

30년 무대미술을 정리하면서 지난 세월을 돌아본 민 씨는 책 서평을 여러분이 써주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버지처럼 모셨던 이창구 교수님의 글이에요. 책 나온 후 산소에 가서 한참을 울다 왔어요. 교수님이 생전에 쓰신 마지막 글이 제 책의 서평이었죠. 그래서 일부러 라는 말을 글에 붙이지 않았어요.”

그는 어쩌면 맨몸으로 무대미술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구축했을지 모른다. 언제나 페인트가 묻은 청바지를 입은 오늘도 호탕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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