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수의 메아리] 윤정희, 그리고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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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수의 메아리] 윤정희, 그리고 나의 어머니
  • 김천수 기자
  • 승인 2021.02.1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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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수 취재국장
김천수 취재국장

그끄러께 4월초 어느 봄날. 서울 삼청동 칼국수 집에서 우연히 동료 기자들과 함께 배우 윤정희와 피아니스트 백건우 커플을 보게 됐다. 비슷한 시간에 칼국수를 먹고 나온 우리 일행은 국민 잉꼬부부 윤·백 커플에게 기념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길가에 서서 미소와 함께 기꺼이 사진찍기에 응한 커플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70대의 아름다운 한 쌍의 원앙이었다.

그런데 일년 반 가량이 지난 이듬해 가을, 백건우씨와 딸 진희씨가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윤정희씨가 10년 전쯤부터 알츠하이머 병을 앓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현지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 중인 딸 진희씨는 국내 팬들이 사랑의 편지를 많이 써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윤씨는 현재 진희씨 옆집에서 간병인의 돌봄을 받으며 요양 중이다. 그는 요리하는 것을 잊었고, 딸을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다. 밥을 먹고는 바로 다시 밥 먹자고 하는 등 치매 증상을 보이고 있다. 남편이 연주 여행을 갔다는 말에는 “같이 가야한다”며 “빨리 택시를 불러달라”고도 한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주 연습을 해야 하는 부녀, 안정을 찾아야 하는 윤씨가 같은 집에서 생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한 것 같다.

윤정희는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 출연한 것이 마지막 작품이 됐다. 여기서 그는 치매 초기 환자인 ‘미자’역을 맡아 연기했다. 그의 본명은 손미자다. 그는 영화 같은 운명인가. 그런데 백건우씨가 10년전부터 치매를 앓았다고 밝혔으니 혹시 감독과 교감하에 영화에 출연한 건 아닐까하는 의문도 든다.

최근들어 윤정희 동생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윤씨가 백건우 및 딸로부터 방치된 채 홀로 투병 중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에 양 측간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속에 후견인 지정을 놓고 양 측간 법적 분쟁이 있었음이 알려졌다. 지난 11일 귀국한 백씨는 “윤정희는 하루하루 아주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다”며 “저희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을 남겼다.

필자 또한 치매를 앓는 80대 중반의 어머니와 시골집에서 살고 있다. 윤정희씨를 만날 즈음인 3년전부터 어머니 증세는 점점 심해지면서 지금은 부엌 일은 전혀 이루어낼 수 없다. 옷장 정리나 자신의 정상적인 복장 차림도 힘든 상황이다. 작은 것에 꽂히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밤에는 우울증으로 “빨리 가야되는데...” 하시면서 이불 속에서 울음을 참아내며 훌쩍인다. 자식에게 밥상을 차려주고 방 청소를 해준다고 시도하지만 늘 실패작이다. 나의 글방엔 자물쇠를 달아 놨다. 어머니는 내가 부재 시에 글방을 정리해 준다지만 정반대 상황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알려진 윤정희씨의 증세와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1년여 전부터 주간보호센터를 다니면서 우울증이 사라지고 표정이 밝아졌다.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하는 노래하기, 종이접기, 율동하기 등의 효과로 보인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매일 “학교 가야지”란 말과 함께 등교를 돕는다.

최근 윤정희씨가 베란다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확인됐다. 육체가 온전한 정도라면 유명 의식을 내려 놓고 이런 학교(?)에 다녀 볼 것을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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